부 PD의 얘기지만 ‘황제 권력’을 누렸던 PD, 그들이 더 이상 탤런트 선발권도 없고, 주연배우와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 채, 이미 작성된 시나리오까지 제작과정에서 스타의 변경 요구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청자들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스타가 PD를 지목하고, 탤런트로부터 지목받지 않으면 1년 내내 한 편의 드라마도 찍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다면 시청자들은 과연 믿기나 할까?’
<일요신문>에서 입수한 ‘스타권력화와 한국드라마의 미래’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 사례 수집안의 첫 부분에는 요즘 PD들의 위상이 얼마나 하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언급돼 있다.
중견남성 배우 B가 가수 출신 배우 S에게 연기에 대해 지적하자 S가 “내가 하고 싶어 하는데 왜 그래요. 냅둬요”라며 반박했다는 사례는 얼마 전 보도돼 충격을 주었던 내용. 이 밖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촬영장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배우 K와 Y는 중견배우 B가 잔소리를 자주 한다며 PD에게 아버지역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PD는 별 말없이 아버지 역을 L로 교체했는데, 이번엔 L이 카리스마가 없다며 또 다른 L을 지목하며 바꿔달라고 했다는 것.
이처럼 톱 배우들이 다른 배역의 캐스팅에 대해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일례로 현재 제작준비중인 한 대형드라마의 경우 주연으로 캐스팅된 B가 자신의 상대배역에 대해 “남자 배우 J와 여배우 J를 내가 캐스팅할 수 있다”며 제작진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또한 제작진이 이 배역에 남자배우 B나 J를 캐스팅하려하자 어이없게도 B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싫다”며 불가입장을 밝혔다고. 결국 제작진은 B와 J 모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한 중견배우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탤런트 전운씨가 별세했을 때 젊은 연기자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은주씨 장례식에는 주연급 배우가 거의 빠짐없이 조문하는 광경을 보면서 엄청난 비애를 느꼈다. 그들 중 연기력이 뒷받침해 줘서 주연배우 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미장원 스타’들 아닌가.”
물론 모든 젊은 배우들을 한꺼번에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중견 배우들이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연기경력과 자부심이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 방송관계자는 “모든 상황이 스타급 연기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대로 간다면 프로그램의 질적인 부분 등은 아예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스타배우들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 일정이 돌아가는 것도 큰 문제다. 한 카메라맨은 다음과 같은 목격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여성 주연배우 K씨가 중견남성 배우 B씨와 대화하는 장면. 서로 눈을 보며 대사를 해야 하는데, K는 바쁘다며 자신의 촬영분만 한꺼번에 촬영한 뒤 먼저 가겠다고 하자 황당한 B는 K를 불러 혼을 냈다고 한다. PD가 와서 말리자 K는 촬영장을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B는 허공을 보며 대사를 했고, 촬영이 끝난 뒤 PD가 걱정스러운 듯 B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형님, 다음에 형님 일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속은 후련했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말을 형님이 해줘서….”
극소수의 경우지만 다음과 같은 일도 벌어진다. 한 카메라맨의 증언이다. 최근 들어 몇몇 잘 나가는 스타들은 주말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촬영 분량을 반나절에 다 찍어버린다고 한다. 이 카메라맨은 “2회 분량을 반나절에 다 찍고 그들이 편당 2천만원씩 주당 5천만원에 가까운 개런티를 받아간다고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때려 치우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민다”고 털어놓았다.
한 인기드라마의 촬영장에서 만났던 스태프 또한 비슷한 얘기를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드라마의 시청률은 최고기록을 깰 정도로 높았지만 주연배우 A로 인해 촬영장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스태프는 “회당 2천만원 가까운 개런티를 받으면서 촬영장에서 김밥 한번 사지 않고 스태프들이 사온 간식을 A와 매니저, 코디네이터가 우르르 몰려와선 가져가 버린다”며 배우 A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 드라마 PD는 “배우들 스스로가 좀 더 성숙된 프로의식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