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영화는 유수의 세계적인 영화제 출품 및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67회 칸영화제(2014) 경쟁부문 출품을 시작으로 87회 아카데미시상식(2015)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선정 등 무려 14개 해외 영화제에 출품돼 여러 개의 상을 수상했다. 62회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2014) 유럽 영화 관객상, 86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4) 외국어 영화상, 그리고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29회 고야상(2015) 스페인어 영화상 등을 수상한 것. 자국인 스페인을 기점으로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 영화계에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자칫 이런 영화는 작품성만 강조된 어려운 영화로 오인될 수 있다. 그렇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웃기고 재밌으며 뭔가 생각할 거리도 안겨준다.
스페인어 원제는 <Relatos salvajes>, 영문 제목은 <Wild Tales>다. 2014년 영화로 러닝 타임은 122분이다. 스페인어 ‘Relatos salvajes’를 해석하면 ‘야생 이야기’다. ‘Wild Tales’ 역시 이를 영문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제목이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영문 제목에 한국어 설명이 추가된 제목이다. 말 그대로 이 영화는 ‘참을 수 없는 순간’을 참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야생 이야기’다. 인간이라면 사회적 규범과 관습, 그리고 이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런 노력은 결국 참을성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 참아내는 게 바로 그런 인간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 사회는 구성원인 인간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을 모두 배제한 채 야생적인 본능에만 충실하게 ‘참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면 어떻게 될까. 영화의 원제가 ‘야생 이야기’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사회성을 배제하고 야생적으로 돌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다. 말 그대로 웃긴다. 너무 황당해서 웃긴데 인간이 사회성을 버리고 야생성을 택하면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비록 그 상황에서 겨우 참아냈지만 참지 않았다면 이렇게 됐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은 복수에 대한 대리 만족감을 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이기도 하다. 마냥 웃기에는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가 속출한다. 본성에 충실해 야생적으로 맞붙은 두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에피소드에선 정말 피 말리는 대격돌이 벌어진다. 결국 싸우다 불타 죽은 두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 경찰은 껴안고 죽은 것으로 오인해 사건을 치정극으로 판단한다. 코믹한 상황이지만 사망사건인 만큼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결국 ‘야생 이야기’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냥 웃고 넘길 수는 없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코미디면서 스릴러인 까닭이다.
@ 줄거리
영화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은 6편의 단편 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연결성이 전혀 없는 6개의 에피소드는 모두 인간이 참을 수 없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를 그리고 있다.
‘웰컴 투 땅콩항공’이라 이름이 붙여진 첫 번째 에피소드는 짧지만 강렬하다. 참을 수 없는 순간을 그려낸 이야기라기 보단 한 남성의 무시무시한 복수극을 그려낸 이야기다. 순간적인 분노가 아닌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지는 복수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큰 흐름에선 다소 벗어나지만 임팩트는 가장 강렬하다. 관객에게 영화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프닝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원수는 식당에서’ 식당에서 우연히 손님으로 온 아버지의 원수를 마주친 웨이트리스의 이야기다. 역시 복수 이야기인데 이번 에피소드에선 복수의 순간의 통쾌함보다는 망설임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세 번째 ‘분노의 질주 18’과 네 번째 ‘합법주차 불법견인’ 에피소드는 일상 밀접형 스토리로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보복 운전을 그린 ‘분노의 질주18’과 견인 스트레스를 다룬 ‘합법주차 불법견인’은 스페인의 이야기지만 우리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우린 그런 순간의 스트레스를 참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절대 참지 않는다. 우리가 바로 그 순간 참지 않으면 이런 일까지 벌어질 수 있겠구나 라는 감정 이입이 가능한 에피소드다.
‘뺑소니의 최후’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뺑소니 사고를 낸 아들을 구하려는 부자와 이 과정에서 큰 돌을 뜯어내려는 정원사와 변호사, 그리고 검사의 모습이 매우 치졸하게 그려진다. 결정적인 약점으로 인해 무조건 참아야 하는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조건 최장자인 돈 많은 사람인 상황이다. 그가 참지 않으면 결국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까.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판사판 결혼식’. 너무나 행복한 결혼식을 치르는 신랑신부가 거짓과 의심으로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해 엄청난 파국을 불러 모으는 결혼식을 치르게 되는 과정을 다소 충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나마 결말은 해피엔딩인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오히려 해피엔딩이라는 부분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참을 수 없는 순간을 어쩔 수 없이 참아낸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싶다 클릭
사회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결국 본성을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얻는 게 훨씬 많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로 인해 참아야만 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으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매우 심하다. 이 영화는 사회성을 배제한 야생 이야기다. 참아야만 했던 나날들의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대리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5000 원
기본적으로 대리 만족이 가능한 영화라는 점에서 그 비용은 톡톡히 쳐줘야 한다. 특히 운전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보복운전의 욕구’와 ‘견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영화에서만 가능한, 그렇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주제가 아닌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남다른 영화다. 그래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유수의 영화제에 초대받은 게 아닌가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