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보수정권의 통일정책과 관련 “파괴와 배반의 8년”이라고 평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노무현 정부 이후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섰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지난 8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나.
“파괴와 배반의 8년이다. 보수진영에선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일컬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것은 다시 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파괴된 것은 다시 세우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평가는.
“깜짝 놀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통일부를 없애겠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통일 의지가 없었다. 아니, 평화 의지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이 뭐냐. 한마디로 ‘북한은 곧 내부 모순에 의해 무너지니, 그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아마도 본인의 임기 내에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좁은 소견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무너지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도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흡수하자는 것이었다. GDP(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남한은 북한의 40배 규모였으니, 경제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낙관한 듯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비핵·개방·3000(핵을 버리고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주겠다)’아닌가. 북한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다. 북한은 일관성 있게 핵과 경제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김정은 시대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남한은 북한에 ‘비핵’을 말하지만, 북한은 이를 두고 ‘그 문제는 워싱턴과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우리가 말하는 ‘개방’에 대해 ‘북한 체제를 안으로 부드럽게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인식하기 쉽다. 게다가 ‘3000’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제의다. 앞서의 두 가지 조건으로 따라온다면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에게 사탕을 주겠다는 식 아닌가.”
―가장 큰 패착은.
“모든 성공적인 대화와 협상은 결국 당사자들 간 역지사지와 ‘역지감지’가 중요하다. 즉 상대방의 입장을 머리와 가슴으로 느껴야한다. 이것 안 하면 대화는 반드시 실패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역지사지와 역지감지를 전혀 못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그러면서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지난 2000년 4월의 일이다.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두 달여 앞두고 청와대에 원로들을 불렀다. 그리고 원로들에게 ‘김정일과 만날 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시더라. 그때 내가 김 대통령께 ‘역지사지하시라’며 ‘그 쪽(북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시면 오해가 풀린다’고 말씀드렸다. 김 대통령은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신 것 같다. 그래서 ‘북의 느슨한 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이 유사하다’는 6·15 공동선언의 2항도 나온 것 아니겠나.”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어떻게 보나.
“나도 처음엔 기대했다. 특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높게 봤다. 신뢰는 상대방 입장에서 서봐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 말을 할 때, 난 ‘아! 됐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인수위 기간 동안 희망 섞인 평가와 주문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후 결정하는 일들을 보니, 신뢰와는 정반대로 가더라. 첫째로 정말 북한과 신뢰 프로세스를 작동시키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남북 간의 중요한 합의, 특히 남북 정상 간의 합의를 지키겠다고 선언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을 안 하더라.”
―앞서의 6·15 선언과 10·4 선언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 사회는 최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이 별로 없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는 종교적 경배의 대상, 즉 신적 존재다. 북한 사회는 종교 집단과 유사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 정상의 선언은 신성한 문건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그 신뢰를 조성시킬 수 있는 남북 정상 간의 합의 존중 의사를 진지하게 말한 적이 없다. 또 그 합의를 토대로 남북 간 실무적 협의도 제의한 적 없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서 핵, 인권 등을 거론하며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을 옥죄자고 하더라. 북한에서 볼 때, 신뢰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통일준비위원회’를 설치하며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나.
“아니, 그것이 (남북관계 악화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다. 이런 불신이 격화되는 즈음에 박근혜 정부는 뜬금없이 통일준비위원회를 단독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경제와 교육을 위한 위원회는 우리끼리 만들어도 상관없다. 허나 통일은 상대방이 있다. 통일준비위를 진정으로 해내려면 북에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는 남과 북이 민화협을 같이 출범시켰다. 하물며 민간 차원에서도 이를 같이 의논해서 했는데, 정부 당국자끼리는 더 그래야 하지 않나. 적어도 남북 공동위원장, 부위원장을 구성했어야 했다.”
―실제 통일준비위원회의 내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하는 일을 보니 통일준비위가 아니라 ‘반 통일준비위’ 같더라. 결정적 실수는 부위원장(전종욱)이 공식석상에서 ‘우리는 흡수통일을 준비한다’고 한 것이다. 북에선 이 말을 듣고 ‘저것이 남한의 속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을 언급하며 주목 받기도 했다.
“대체로 요즘 우리 청년들은 통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 다 취업과 결혼문제로 고민한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외치니, 일시적으로 꿈이 살아나는 것 같은 징후가 생겼다. 그런데 대박 이야기하고 1년이 지나도록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되고 있다. 통일에 대한 젊은이들의 허무주의적인 생각을 더 강화시키는 결과가 된 것 같다. 통일대박 하려면 평화대박이 나와야 한다. 그것은 앞서 10·4 공동선언에 대한 남북 간 실무 접촉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주로 경제적인 그리고 실용적인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고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왼쪽은 이홍구 의장. 사진제공=청와대
―그러한 실천을 위해선 우선 현재의 5·24 조치 해제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5·24 조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한 것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풀기가 좋다. 이것을 선제적으로 해제함으로써 남북 간의 막힌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동시에 금강산 관광도 해제해야 한다. 지금 강원도 고성에 가보면, 지역경제가 완전히 망가졌다. 5·24 조치를 통해 누가 손해를 봤나. 남쪽이 굉장히 손해 봤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큰 타격을 봤다.”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은.
“북한이 왜 핵개발을 하는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북한 스스로 핵보유국 중 유일하게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때, 미 공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아픈 경험이 있다. 북한은 미 공군의 위력을 잘 안다. 또 한미 군사훈련 시, 실제로 핵탄두를 장착한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것도 알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미국의 핵공격으로부터 우리 체제를 어떻게 방어하겠느냐’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다. 북한은 결국 이를 억지하기 위해선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핵개발 문제를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핵 억지력을 갖도록 충동하는 요인 중 중요한 것이 바로 한미 군사훈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무엇인가.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핵실험을 성공한 뒤 북한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헌법에 넣었다. 이를 두고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미국을 견제하는 핵보유국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굉장한 자긍심을 갖게 됐다. 왜 북한은 주민들에게 그러한 자긍심을 갖게 하겠는가. 뭔고 하니, ‘이제부터 우리는 총력을 기울여서 경제 개발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핵실험을 성공시킨 2013년 2월 이후 ‘경제·핵 병진노선’을 선포한 이유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2013년 핵개발 직후 ‘북한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성공했으니, 미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전통적인 군비를 민수경제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의 지난 3년간 경제 상황이 굉장히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그 증거로 농장과 기업의 변화를 들었다.
“제일 놀라운 것은 북한이 기존의 협동농장 체제를 자본주의식으로 고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본 10~30명 규모의 분조(협동농장의 단위)를 서너 개로 작게 쪼갰다. 거의 한 두 가족이 한 분조가 되는 셈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니 열심히 일하지 않겠나. 기존의 생산량보다 서너 배가 더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각 농민 가정마다 ‘10m×1m’ 규모의 텃밭을 허용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것은 다 본인들이 가져간다. 텃밭의 생산성이 기존 집단농장보다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에 식량난도 상당히 줄고 있다. 각 기업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평양만이 주요 특구였지만, 현재는 200개가 넘는 시·군·구 개발 지구를 설정해서 그곳의 인민위원회의 테두리 안에 맡겼다. 북한은 총력을 기울여서 핵개발도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경제 개발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급변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한반도의 위기를 빙자해 ‘신 냉전체제’로 급변하고 있다. 미국은 재정절벽 정책으로 인해 국방비를 매년 500조 원 규모 삭감해야 한다. 특히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경제대국 일본을 통해 국방을 아웃소싱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미-일 국방협력 가이드라인’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큰일 났다.”
―무엇 때문인가.
“지금 중국은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나라가 됐다. 중국과 척 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됐다. 특히 미국은 ‘사드’를 통해 우리를 본인들의 ‘MD시스템(미사일방어체제)’에 끌어들이고자 한다. 거기에 끌려 들어가면 중국과 척지게 된다. 진퇴양난이다. 이럴 때, 외교력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중립이 필요한 것인가.
“주도적인 외교력이 필요할 때다. 우리는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미동맹을 존중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 외교력을 통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반도국가인 우리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부딪힐 때 한쪽 편만 들어선 안 된다. 지난 120년의 비참한 역사는 두 세력 사이를 힘없이 오갔기 때문이다. 분단도 두 세력의 마찰 탓 아닌가. 이제 이 모순을 극복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해양과 대륙을 조화시키는 외교력을 키워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반둥회의 통해 본 박근혜정부 외교력의 민낯 중-일 손잡을 때 한국은 멀뚱멀뚱 박근혜 대통령 대신 반둥회의에 참석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 반둥회의는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처음 개최된 유서 깊은 국제회의다. 주로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표단이 파견돼 다각적 국제회의가 진행된다. 이른바 국제사회의 ‘을’들이 모인 협력 회의라 할 수 있다. 최근엔 이 반둥회의의 주축이었던 중국이 국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그 무게가 더해졌다. 한 전 부총리는 지난 4월 19일 해당 행사에 대통령 본인이 아닌 교육부 장관(황우여)을 보낸 것에 대해 격렬하게 질타했다. 그는 “당시 회의에서 우리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심지어 제1세계인 일본의 아베 총리는 직접 참석했다. 다른 참가국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관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며 “당시 아베는 미국 국빈 방문 직전에 시진핑을 만난 것이었다. 아주 전략적이었다. 우리는 그 중요성을 몰랐지만 일본은 외교가 있더라”라고 지적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