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던 지난 11일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포스트 황교안’이 누가 되더라도 법무부나 검찰에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검찰에 대한 총리 황교안의 장악력이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검찰 일각에선 새 법무장관이 누가 되더라도 검찰에 대한 ‘황교안의 장악력’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왼쪽은 황교안 총리 후보자. 이종현·박은숙 기자
이 같은 판단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우선 경제나 민생 문제에 있어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미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총리가 되더라도 황 후보자가 나서서 뭔가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 부총리는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대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공’이 아닌 대북관계나 외교에 관심을 갖자니 옛 통합진보당 해산에 가장 앞장선 데다, 주로 ‘간첩 잡는 공안사건 전문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총리 취임 이후 황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법무부 장관 때처럼 검찰을 챙기는 것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보면 검찰에 대한 황 후보자의 영향력 또한 지속되면서 이전 ‘실세 장관을 모셨던’ 검찰은 이제는 ‘실세 총리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재직시 전체적으로 주는 메시지는 ‘강한 통치권 유지’가 아니었느냐”고 반문하며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총리를 시킨 것도 그 때문이고, 특히 청와대가 황 후보자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면서 ‘정치개혁 적임자’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도 이런 제반 상황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황 후보자 취임 이후 정치개혁을 위한 고강도 사정이 예상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날로 깊어지고 있어 청와대와 여권 내에선 야권을 향한 고강도 정치개혁 사정을 해야만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또 그래야만 2017년 대통령선거 승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서초동과 여의도 정가에선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건설업계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한 야당 중진 의원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 의원의 친동생이 부동산 분양대행업체 비자금 조성 의혹에 연루돼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의원에게도 시선이 쏠리게 된 것이다.
검찰은 현재 이 업체에서 거액의 뭉칫돈이 해당 의원의 동생에게 흘러간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이 사건이 알려졌을 때 검찰은 야당 중진 의원 개입 여부와 관련,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라고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해당 의원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선 “현 시점에서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이야 야당 중진의원 한 사람이 타깃이지만, 황 후보자 취임 이후에는 사정 대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법조인은 “지난 3월부터 기업 사정을 계속 해온 탓에 또 다른 기업 수사를 하는 것에 검찰도 적지 않게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자연스럽게 수사 대상이 정치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H 그룹이나 D 그룹 등에 대한 수사 관련 루머가 계속 나오는데도 검찰이 이들 기업 수사에 정중동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로 풀이된다.
왼쪽부터 길태기 전 고검장, 곽상욱 감사위원
길 전 차관의 경우 검찰 내에서 ‘합리적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만, 청와대 등의 요구에 맞설 정도로 강단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곽 위원 역시 ‘좋은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게 검찰 내 중론인 만큼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차기 법무부 장관은 무엇을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검찰이나 법무부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지난 3년간 정권 차원에서 ‘검찰 길들이기’가 집요하게 진행된 만큼 그 프레임을 깨지 않으면 이제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총리실과도 핫라인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