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취득의 목적을 ‘경영 참여’라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이 합병비율 등과 관련해 주주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제일모직과 합병하려 하니 ‘주주 이익 보호’ 차원에서라도 합병에 반대한다는 것이 엘리엇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삼성물산이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제일모직과 합병을 시도해 주주 이익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물산 경영에 참여해 주주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얘기다.
엘리엇의 궁극적인 목적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재계와 증권가는 다양한 해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헤지펀드의 속성상 결국 이익 추구·차익 실현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엘리엇의 이 같은 행보에 최대주주 지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대기업들은 향후 비슷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번 사태는 새삼 경영권을 둘러싼 외국계 펀드·주주와 국내 대기업 간 ‘전쟁’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경우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사례는 지난 2003년 SK그룹과 소버린의 경영권 다툼이다. 당시 소버린자산운용은 SK(주) 지분 14.99%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SK는 자사주 4.5%를 산업은행 등 금융권에 매각하며 소버린의 공격에 맞섰다. 소버린 역시 SK의 자사주 매각에 대해 의결권 침해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압박했다. 삼성물산과 엘리엇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정과 흡사하다. 재계와 증권가에서 삼성물산과 엘리엇, SK와 소버린의 사례를 오버랩시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엘리엇의 공세를 소버린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소버린은 당시 처음부터 투기자본 성격을 강하게 내비쳤기에 SK 쪽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하지만 엘리엇은 비록 헤지펀드긴 하지만 제기한 문제들이 타당하고 설득력을 얻고 있어 삼성물산으로서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대부분 사람이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못한 대목을 엘리엇이 공개적으로 지적했다”며 “후계승계를 위해 주주를 무시하고 시간에 쫓긴 삼성의 오만함과 조급함이 큰 저항에 부딪쳤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삼성물산 관계자는 “합병을 통해 주주가치를 더 높이겠다는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 같다”며 “헤지펀드 속성상 이익 추구가 분명할 텐데 엘리엇이 워낙 소송전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앞으로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홀딩AG(쉰들러)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도 유명하다. 다만 쉰들러는 헤지펀드가 아닌 주주로서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지분을 확대해 현대엘리베이터 측을 긴장시켰다.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그룹은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 금융사들과 파생상품을 계약하는가 하면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숨 가쁘게 움직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4월 이사회에서도 2645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쉰들러는 지난 9일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를 반대한다”며 현대엘리베이터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