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도 예외는 아닌데 특히 간부들 가운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이들의 직업 특성상 기러기 아빠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스트레스 높은 직업을 조사할 때마다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아 남들보다 쉽게 건강을 해칠뿐더러 이 때문에 작은 실수를 해도 곧바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돈을 관리하는 직업이다 보니 여러 유혹에도 쉽게 노출된다.
지방은행 부지점장인 김 아무개 씨(49)도 ‘짧고 굵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보낸 경험이 있다. 지난 2013년 2월 두 딸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내며 시작된 기러기 아빠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 10년 자취경험을 살려 혼자서도 잘 지낼 것이라 예상했지만 착각일 뿐이었다. 텅 빈 집에 적응하지 못해 무기력증이 찾아왔고 생활 패턴마저 깨지면서 6개월 만에 우울증 진단을 받기까지 했다.
김 씨는 “기본적인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좌절감, 계속되는 업무 스트레스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처음엔 스스로 이겨내려 했으나 업무에 실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감정 컨트롤이 안 되자 날짜를 잘못 보는 등의 실수가 나왔다. 은행 특성상 이런 실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직접적으로 말은 못했지만 이런 나 때문에 직원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러다 죽겠다 싶어 결국 1년 4개월 만에 기러기 아빠 생활을 끝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기러기 아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대부분의 기러기 아빠들은 가장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40~50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홀로 생활을 할 경우 영양불균형, 잦은 음주, 스트레스, 성적 외로움 등으로 신체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이상이 오면서 우울증을 겪기 쉽다고 한다.
마음의 병이 심각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한다. 한창 기러기 아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2004년 국내 한 은행에서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4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와의 이혼, 외동딸의 유학으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그는 가족 해체에 따른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어 결국 죽음을 택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업계 관계자는 “주변에선 그를 완벽주의자로 불렀다.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속으로 혼자 앓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상태로 일은 철두철미하게 해야 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겠냐. 그때 사건을 보고 기러기 아빠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금융맨 기러기 아빠’이기에 조심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앞서 우리은행 횡령 사건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각종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 증권사 간부인 이 아무개 씨(52)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며 몇 번씩이나 ‘검은 유혹’을 떨쳐내야 했다. 자녀들이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급하게 목돈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수중에 가진 돈이 없을 땐 나쁜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아무리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매년 수천만 원씩 드는 유학을 몇 년 보내면 집도 팔고 차도 팔게 돼 있다. 아마 이쪽에서 일하는 장기 기러기 아빠들은 회사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모조리 받았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돈이 부족하면 회사 돈이 눈에 보인다. 급한 불만 끄고 다시 돈을 넣어두면 감쪽같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연히 기러기 아빠들끼리 모인 날 누군가가 ‘크게 사고치고 감옥가도 애들은 편히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하자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기러기 아빠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을 멀리 보내고 그 책임감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들도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러기 아빠의 일탈, 사건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회사 내에서 자신이 기러기 아빠임을 숨기려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기러기 아빠라는 이유로 무시 받는 일은 없다. 기러기 아빠라서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성격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