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왼쪽)가 지난 10일(현지 시간) 클린턴교도소 앞에서 탈옥수 검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담장 앞에 세운 탈옥수 사진은 데이비드 스웻과 리처드 맷 . AP/연합뉴스
지난 6월 5일 밤 10시 30분. ‘클린턴 교도소’에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취침 점호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교도소 안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평상시와 같이 점호를 마친 죄수들은 저마다 방으로 들어갔고, 곧 교도소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두 시간마다 교도관들이 순찰을 돌 때에도 별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5시 30분. 아침 점호가 시작된 후에야 교도관들은 뒤늦게 일이 터진 것을 알아챘다. 나란히 옆 감방에서 복역 중이던 죄수 두 명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각각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리처드 맷(48)과 데이비드 스웻(34)이었다. 감방을 살피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떻게 뚫었는지 침대 뒤편의 강철벽에 사람 하나가 들고 날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던 것. 추측컨대 이들은 이 구멍을 통해 빠져 나갔으며, 그 후 높이 9m가 넘는 좁은 통로를 기어 내려갔다.
미로처럼 얽힌 지름 60㎝의 하수관을 전동공구를 이용해 잘라가면서 터널을 따라 이동했던 탈옥수들은 마침내 교도소 인근 바깥의 맨홀을 통해 교도소 밖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잘라낸 하수관에는 교도관들을 비웃듯 ‘좋은 하루 되세요(Have a nice day)’라는 메시지와 함께 스마일 그림이 그려진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 여유도 부렸다.
탈옥수들은 감방 침대 뒤 강철벽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구멍(위)을 낸 뒤 벽면 뒤 좁은 통로(왼쪽 아래)를 통해 기어내려가 교도소 밖 맨홀을 통해 탈옥했다.
곧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들이 탈출한 지 이미 일곱 시간이 지났다는 점, 그리고 교도소가 캐나다 국경에서 불과 40㎞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빠른 검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에 영화 <쇼생크 탈출>과 흡사한 이번 탈옥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뉴욕주 인근 시민들은 잔뜩 불안에 떨고 있는 상태. 무엇보다도 탈옥수들이 모두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강력범인 데다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나서 자신들을 인질로 삼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반드시 탈주범들을 잡아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메시지를 되돌려 줄 것”이라며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각각 현상금 10만 달러(약 1억 원)를 걸고 탈옥수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만일 이들이 다시 잡힐 경우 평생을 독방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탈옥 사건에서 가장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이들이 어떻게 완벽하게 탈옥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사실 순찰을 도는 교도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불 속에 후드티 등 옷가지를 숨겨 놓은 점은 <쇼생크 탈출>을 비롯한 탈옥 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수법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운 점은 없다.
그보다는 강철 벽을 뚫는 동안 어떻게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더 놀랍다. 이에 쿠오모는 “옆방 죄수들은 분명히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들렸던 게 틀림없다”라면서 “분명히 동료 재소자들이 이들의 탈옥을 묵인해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일종의 암묵적인 동조 하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탈옥수들이 잘라낸 하수관에 교도관을 조롱하는 듯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또한 배수관을 잘라낼 때 사용한 전동공구를 어디서 구했는지도 의문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다각도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우선 교도소 내부 인물의 공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쿠오모는 “탈주범들이 혼자 장비를 마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교도소 내 누군가가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가장 의심을 받고 있는 인물은 교도소 직원인 조이스 미첼(51)이라는 여성이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산업훈련을 담당하고 있던 미첼이 맷의 유혹에 넘어가 탈옥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1997년 맷을 검거하는 데 일조했던 전직 형사인 데이비드 벤틀리는 “그는 여자를 유혹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 가는 곳마다 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라고 말했다. 꾸미면 잘생긴 얼굴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금세 유혹에 넘어가곤 했다는 것이다. 미첼 역시 그런 경우라고 추측하고 있는 경찰들은 맷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미첼이 전동 공구를 제공하고 탈옥을 도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현재 경찰 조사를 받은 미첼은 직위 해제된 상태다.
이밖에 교도소 개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상황으로 미뤄 짐작컨대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외부 용역업체 인부들이 전동공구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탈옥수들이 어떻게 미로 같은 교도소의 하수관 구조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다. 단지 캐나다나 혹은 맷이 많은 지인을 두고 있는 멕시코로 도주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을 뿐이다.
한편 여러 차례 강력 범죄를 저지른 바 있는 맷은 지난 1997년 직장 고용주였던 윌리엄 리커슨(76)을 살해한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당시 해고당한 것에 대한 복수심으로 리커슨의 집에 쳐들어갔던 맷은 한 시간 넘게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리커슨을 폭행했으며, 강력 테이프로 리커슨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자동차 트렁크에 실은 채 멀리 버팔로까지 가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전기톱으로 목과 팔다리를 자른 후 몸통을 나이아가라 강에 버리는 등 끔찍한 방법으로 시체를 유기했다.
당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멕시코로 도주했던 맷은 1998년 술집에서 싸움이 붙었던 미국인을 살해한 후 멕시코 경찰에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2007년까지 멕시코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그는 이듬해 미국으로 송환됐고, 리커슨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은 후 2008년부터 클린턴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었다.
이미 1986년 문서위조 혐의로 수감됐던 그는 당시에도 탈옥에 성공했다가 재검거된 바 있었다. ‘이리 카운티 교도소’의 담을 뛰어넘었지만 5일 만에 붙잡혀서 재수감됐던 것. 하지만 출소 후에도 갖가지 범죄를 저질러 체포됐던 그는 1989년에는 강간죄, 그리고 1991년에는 폭행죄로 각각 철창신세를 졌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할리우드 억만장자 가문인 ‘워너브라더스’ 일가의 청부 살인 사건에도 연루됐었다는 점이다. ‘워너 브라더스’가의 네 남매 가운데 한 명인 해리 워너의 딸인 데시르 텔스타를 청부 살해하는 계획에 가담했던 것.
당시 그는 데시르의 남편인 데이비드 텔스타로부터 아내를 살해하는 대가로 10만 달러(약 1억 원)을 제안받았다. 또한 데이비드는 당시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맷에게 보석금 1만 5000달러(약 1600만 원)를 제공해주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결국 맷은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 그 대신 데이비드를 배신했으며, 경찰에 청부살인 계획을 폭로하고 형을 감형받는 쪽을 택했다.
또 다른 탈옥수인 스웻의 경우에는 2002년 22발의 총을 쏴서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2003년부터 클린턴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한편 리커슨 살인 사건 당시 맷의 강요로 범행에 가담했던 리 베이츠(38)라는 남성은 맷의 탈옥 소식을 듣고 공포에 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여름 15년 동안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던 그는 재판 당시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증언을 해서 맷이 유죄를 선고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이밖에 그의 흉악한 범죄 행위를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지역 경찰관들조차도 “그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다”라면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클린턴 교도소는 어떤 곳인가 150년간 탈옥 전무 ‘철옹성’ 1865년 문을 연 뉴욕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클린턴 교도소는 지난 150년 간 탈옥수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만큼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에 철옹성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클린턴 교도소 전경과 이곳에 수감됐던 마피아 최고 거물 찰스 럭키 루치아노. 현재 이곳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은 2689명. 캐나다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데다 길고 추운 겨울 때문에 ‘리틀 시베리아’라고도 불린다. 날씨만 잔혹한 것이 아니다. 클린턴 교도소는 죄수들을 엄하고 잔혹하게 다루는 곳으로 악명 높기도 하다. 2014년 ‘뉴욕주 교도소협회’ 보고에 따르면 클린턴 교도소에서는 교도관들이 주기적으로 수감자들을 구타하고 있으며, 수감자들과 교도관들 사이에 인종 간 갈등의 골이 깊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니 수감자들끼리 싸움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도소이기도 하다. 또한 뉴욕주 교도소 전체 수감자의 63%가 강력범인데 이 가운데 90%가 클린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주 하원의원 대니얼 오도넬이 지난해 9월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났다. 당시 오도넬은 수감자들로부터 “우리 교도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도관들과 수감자들의 폭력이다”라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여러 차례에 걸쳐 들었다. 또한 오도넬이 수감자들에게 “여러분, 모두 이곳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죠?”라고 진지하게 묻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이 질문이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번 탈옥 사건 당시 전동 드릴 소리를 들었던 수감자들이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어떤 화가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클린턴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악명 높은 수감자들로는 조직폭력배였던 찰스 ‘럭키’ 루치아노가 있다.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인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의 최고 간부였던 루치아노는 마피아 사상 최대의 거물로 알려져 있으며, 훗날 이탈리아로 추방됐다. 이밖에 1990년대 나이트클럽의 전설로 통하는 마이클 알리그와 갱스터 랩퍼로 유명했던 투팍 사커 등도 이곳에서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다. 알리그는 마약 딜러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그리고 투팍은 경찰관을 총으로 쏜 혐의와 성폭행 혐의로 각각 철창신세를 졌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