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톱스타와 노출을 약속한 신인 여배우를 기용하는 방식의 영화가 잇따르고 있다. 영화 <인간중독>의 한 장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타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제2의 이규영만 발굴할 수 있다면 에로 업계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얘길 자주 합니다만 그게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소원택시> <화려한 외출>의 김선영 정도가 잠시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후 행보가 주춤합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에로 영화에 집중하기보단 노출이 가미된 독립 영화 등에 출연해 상업 영화계로 옮겨 가려는 여배우들이 많아 에로업계가 그들을 잡아둘 여력도 없습니다. 또한 조금 시장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과거 비디오 대여시장에 비하면 아직도 수익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아 높은 출연료를 제시하며 스타급 여배우를 키워낼 여력도 없습니다.”
이렇게 요즘 에로 업계는 기회인 듯 여전한 위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탈출구는 유명세를 갖춘 여배우를 출연시키는 것이다. 걸 그룹 출신인 비키, 미달이로 유명했던 아역 배우 출신 김성은 등이 과감한 노출의 에로 영화에 출연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에로 업계의 독립 영화화다. 과거처럼 본격적인 에로 영화를 표방할 경우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인터넷에 해외 각종 포르노와 일본 AV가 범람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일반인 커플의 섹스 동영상이 온라인에 유출되는 경우도 흔해졌다. 이처럼 노출 수위가 상상을 초월하는 불법 동영상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심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에로 영화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유명세를 가진 여배우들 역시 에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심하다. 그러다 보니 에로 영화가 아닌 독립 영화로 포장이 이뤄지는 과정이 심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배우들 입장에선 에로 영화에서 상업성을 위해 벗은 게 아닌 독립 영화에서 작품성을 위해 노출 연기를 한 게 되는 터라 출연 거부감이 크게 줄어든다. 또한 에로 영화는 식상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일반 대중들 역시 유명세를 가진 여배우의 파격 노출이 나오는 독립 영화라면 보다 손쉽게 손길이 간다. 한 에로 영화 제작사 임원의 설명이다.
“요즘 벗는 영화가 붐인 것은 분명하다. 우선 그 흐름은 에로 영화계가 아닌 상업 영화계가 이끌고 있다. 극장 개봉용 영화인데 파격적인 노출이 가미된 영화가 넘쳐나는데 그들 역시 부가판권 시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톱스타 남성 배우와 노출을 약속한 신인 여배우를 기용하는 방식인데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인간중독>이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으며 <마담 뺑덕> <순수의 시대> <간신> 등으로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흐름은 독립 영화와 에로 영화인데 요즘에는 그 경계가 사실상 무너졌다. 기존 에로 영화계 인력이 독립 영화처럼 포장해서 에로 영화를 찍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에로 영화도 어차피 독립 영화의 범주에 포함돼 있는 셈이니 따로 포장을 한 것도 아니다.”
에로 영화이건 독립 영화건 중요한 대목은 어떤 여배우가 출연하느냐다. 최근에는 한 아역 배우 출신 여배우가 에로 영화에 출연할 뻔했지만 막판에 무산되고 말았다. ‘미달이’ 김성은처럼 유명한 아역 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어느 드라마에 누구 아역으로 출연했다고 설명하면 어렴풋이 기억이 날 정도의 배우다. 실제로 그를 캐스팅하려 접촉했던 에로 영화 제작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우리가 큰 출연료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홍보는 기막히게 해줄 수 있었다. 감독도 실력파 신인을 영입해 그럴싸한 독립 영화를 만들 계획이었다. 노출 수위는 꽤 높지만 아역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그 친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만 하면 이번 영화를 기점으로 상업 영화계로 진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실질적으로 큰돈을 필요로 했다. 연예계 진출의 기회를 잡고 큰돈까지 벌고 싶어 했고 결국 우리가 포기했다.”
에로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제2의 전성기가 열릴 수 있지만 그 조금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조금만 더 시장이 활성화되면 일본처럼 아역 출신이나 해체된 걸그룹 출신 등 잊힌 연예계 스타는 물론이고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도 캐스팅해 보다 다채로운 에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 조금이 모자란다는 것. 한국 에로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일반 대중이 공짜로 불법 성인 동영상을 찾기보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국내 에로 영화를 선택해 유료 결제를 해주는 것이라는 게 에로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부탁의 말이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