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속 팀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에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과 2014-2015 사우디 킹스컵 우승까지 확정지으며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곽태휘. 오랜 경험과 노련미가 더해진 곽태휘는 슈틸리케 감독의 두터운 신뢰와 함께 소속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며 특급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곽태휘의 특별한 축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사우디아라비아 공항 마비 사건
지난 1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국과 호주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곽태휘가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공항이 마비될 정도의 엄청난 규모의 팬들이 새벽에 도착하는 곽태휘를 기다렸고, 곽태휘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박수 소리가 공항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공항 경찰이 출동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입국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자, 한국 팬들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부럽지 않은 곽태휘의 인기가 신기했던 것이다.
곽태휘는 2014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명문인 알 힐랄이 곽태휘 영입 소식을 발표했다. 알 힐랄에서 수비수를 맡으며 맹활약했던 곽태휘에게 알 힐랄 팬들이 ‘꽂힌’ 이유는 이렇다.
알 힐랄에선 지난 2월 붕괴된 공격수 자리에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로미치에서 뛰던 사마라스를 6개월 단기 임대했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다 보니 알 힐랄에 있는 4명의 외국인 선수 중 1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던 중 곽태휘가 팀을 떠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제 구단 내부에서도 곽태휘 거취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이런 낌새를 파악한 알 힐랄 팬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다양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공간에선 곽태휘의 방출에 반대하는 팬들의 여론이 들끓었고, 아시안컵으로 자리를 비운 곽태휘를 위해 알 힐랄 팬들은 축구장에서 곽태휘 이름을 연호하며 시위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결국 곽태휘는 남았고, 사마라스에게 자리를 물려준 선수는 루마니아 대표 핀틸리였다. 구단이 팬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당시 곽태휘는 아시안컵 베스트 11에 뽑히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 힐랄 팬들은 곽태휘가 팀을 떠나면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길 것으로 보고 구단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일부 팬들은 곽태휘의 SNS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절대 팀을 떠나선 안 되고, 만약 다른 팀으로 가면 구단 사장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 중 80%가 알 힐랄 팬이다 보니 성적에 대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 날 공항이 마비될 정도의 상황은 팬들의 의지대로 구단이 곽태휘 대신 핀틸리를 내보냈고, 이에 기쁜 나머지 입국장까지 나가서 곽태휘를 뜨겁게 환영해준 것이다. 자신들이 지켜낸 선수라는 생각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곽태휘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오앤디 김학렬 이사의 설명이다. 알 힐랄에서 1년 6개월을 보낸 곽태휘는 2년 연속 팀을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다. 워낙 막강한 수비력을 자랑해 알 힐랄 팬들의 신뢰가 대단하다고 한다. 최근 재계약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알 힐랄을 방문했던 김학렬 이사는 기자에게 재미있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알 힐랄 사장이 미팅하는 동안 계속해서 곽태휘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더라. 존경받을 만한 선수이고,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외국인 선수지만, 알 힐랄에서 주장을 맡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더욱이 외국인 선수 가운데 징계나 경고를 받지 않은 선수로는 곽태휘가 처음이라고 했다. 완벽한 프로페셔널이라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알 힐랄에서의 곽태휘는 ‘황태자’나 다름없다. 감독도 곽태휘한테만큼은 훈련량을 조절시키고 별도 관리할 만큼 특별대우를 해주고 있다.
2013년 6월 열린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에서 곽태휘가 활약하는 모습. 최준필 기자
올해 34세가 된 곽태휘는 이번 대표팀에 소집된 23명의 선수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차두리가 은퇴하면서 자연스레 ‘최고참’ 타이틀을 안게 됐다. 대표팀의 막내급인 김진수(호펜하임), 임창우(울산·이상 23)와는 무려 열한 살 차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축구 생활. 고2 때 경기 도중 볼에 왼쪽 눈을 맞아 망막이 손상돼 대수술을 받았지만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실상 실명에 가까운 상태다. 이후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는 부상들로 좌절을 곱씹었던 시간들도 부지기수였다.
2005년 FC 서울 유니폼을 입으면서 프로에 첫 발을 내딛었지만 2007년 전남 드래곤즈 김진규와 현금을 얹은 모양새로 맞트레이드 되면서 잠시 번민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곽태휘의 반전 인생은 전남에서 허정무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허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후 곽태휘에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안겨주면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곽태휘의 늦깎이 A매치 데뷔전은 2008년 1월, 27세의 나이였다. 185㎝의 장신인 곽태휘는 강력한 헤딩 능력을 앞세워 ‘골 넣는 수비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A매치 43경기 동안 5골을 기록했을 정도이고, K리그에서도 2012년까지 163경기를 뛰면서 17골 6도움이라는 빼어난 기록을 남겼다. J리그 진출과 K리그 울산 현대로 복귀했다 다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뒤늦게 최고의 활약을 보이는 중이다.
곽태휘와 월드컵은 큰 인연이 없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호’에 합류했지만,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그 해 5월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무릎을 다쳐 목발을 짚고 귀국하는 쓰라림을 맛봤다. 지난해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경험했지만, 단 1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벤치만 달구다 돌아와야 했다. 당시 곽태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알제리전을 앞두고 러시아전만큼 준비를 많이 못했다. 알제리 선수들에 대한 자료가 러시아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는 말로 ‘홍명보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노출한 바 있다.
당시 월드컵 대표팀이 ‘홍명호의 아이들과 그 외의 아이들’이 존재했던 상황에서 홍명보의 아이들에 속하지 못했던 곽태휘는 대표팀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지적했고, 곽태휘의 쓴소리는 축구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곽태휘는 브라질월드컵을 가리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밝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월드컵에 대한 그의 애증도 조금은 가라앉은 듯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전을 치르고 있는 걸 보면. 곽태휘는 대표팀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브라질월드컵 이후에는 모든 게 힘들었고,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대표팀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실력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미미한 선수라면 굳이 대표팀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대표팀에서 필요로 하고, 내가 몸관리만큼은 자신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월드컵 출전에도 욕심을 내고 싶다. 그러나 이 또한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감독님이 뽑아야 갈 수 있는 자리니까.”
# 사우디 왕자님의 곽태휘 사랑
알 힐랄 구단주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다. 그 왕자의 곽태휘 사랑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에 대해 곽태휘는 “축구를 좋아하는 만큼 많은 관심을 보인다. 팀 성적이 좋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한테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다”며 겸손해 한다. 알 힐랄 구단주는 올 시즌을 앞두고 치른 스위스 전지훈련지에서 곽태휘를 만나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해라.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는 얘기를 전했지만 곽태휘는 “특별히 부탁할 게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온도가 낮에는 45~50℃, 밤에는 38℃에 육박한다. 여자는 경기장 출입이 제한돼 있어 곽태휘 가족들의 생활이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곽태휘가 이 팀을 좋아하는 이유가 리그 수준도 높고, 경기가 열릴 때마다 4만~5만 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열렬한 응원을 펼치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 힐랄과 재계약하기를 희망한다. 팀에서도 재계약을 바라고.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김학렬 이사의 말이다. 곽태휘의 몸값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김 이사는 200만 달러(22억여 원) 이상이라고만 귀띔한 채 자세한 금액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리그 전체 수비수들 중 곽태휘가 최고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 힐랄에서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화려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곽태휘. 그는 은퇴 전 마지막 종착지로 K리그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곽태휘에게 은퇴시기를 물었더니 그는 “아직 5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