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한의원 노원점 김헌 원장
[일요신문]평소 집에서 엄마나 아빠에겐 수다쟁이라고 할 만큼 재잘재잘 말을 잘 하다가도 낯선 곳이나 낯선 사람들 앞에선 엄마 아빠 뒤에 숨고 입을 꼭 다물고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도봉구에 사는 7세 세윤(가명)이는 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남자아이이지만 곱상하고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 세윤이는 엄마나 아빠랑 있을 때는 한 시도 입을 쉬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유치원 다닐 때도 얌전하면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말수가 별로 없는 아이로 인식되었었는데, 올 해 초등학교 들어가고부터는 더 말수가 줄었나 봐요.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세윤이가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라고 칭찬하시면서도 선생님이나 친구들과의 대화나 발표는 거의 없다고 하시네요”라며 세윤이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선택적 함구증이란 엄마 아빠와 같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는 말을 잘 하는데, 일단 낯선 곳으로 나가면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질환이다. 즉 언어적인 능력이나 발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일부러 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대개 5세 이전에 발병되지만 세윤이처럼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증상이 두드러져서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초기 1달 정도는 정상 반응일 수 있어서 두고 보지만, 그 이후 다른 아이들과 달리 1달 이상 지속되면서 학교생활 및 학습능력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휴한의원 노원점 김헌 원장은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는 아이들은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연구에서는 일종의 사회공포증의 한 형태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즉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을 기피하게 되면서 말하기의 실패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제 다른 여러 연구에서 보더라도 선택적 함구증 아이들은 사회공포증이나 회피성 장애가 잘 동반되며, 가족력에서도 사회공포증과 같은 불안장애가 더 많다고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임상적으로도 수줍음이나 소심함, 두려움과 공포, 신경질적인 행동 등이 아주 흔하게 보이며, 낯설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 집에서는 반항적이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간혹 보일 수는 있지만, 집 밖 학교나 사회에서 반항적이나 산만함, 집중력 저하 등의 문제 행동은 흔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주장이 약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기술이 부족함으로써 더 힘들어 한다. 만약 그런 상태에서 성인이 되면 함구증은 없어질 수 있어도 수줍음이 많거나 자신감, 성취감 등이 약하고 사회관계에서 어려움을 계속 겪을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 사회공포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헌 원장은 “선택적 함구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조기에 치료적인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기에 치료해서 10세 이전에 호전되면 예후가 좋지만, 12세 이상 지속된다면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만약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 또래관계 등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없다면 대부분 짧게는 1개월에서 1년 사이에 회복됩니다. 다만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아이들은 처음부터 병의원에 오길 기피하기 때문에 환아와 보호자의 치료 의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관건이며, 재발을 줄이고 긍정적인 예후를 위해서는 치료 반응을 보인 이후에도 지속적인 유지치료가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뉴스1팀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