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만 9372 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의한 영화 <소셜포비아>의 극장 개봉 흥행 성적이다. 독립영화라는 한계를 놓고 볼 때 충분히 훌륭한 성적이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흥행력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수치다. 일반 대중이 다가가기엔 약간의 장벽이 존재하는 영화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잘 모르는 그들만의 얘기를 다룬 영화라는 편견만 버린다면 매우 좋은 영화인데, 몇 가지 장벽이 편견의 장벽이 되고 말았다.
우선 독립영화다.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라는 이유로 멈칫 거리는 이들이 많다. 잘못 골랐다가 감독만의 영화관이 대중의 취향과 다소 거리가 있을 거라 여기게 되는 이들이 종종 있는 것. 이는 독립영화라면 흥행성 보다는 작품성에만 치중할 거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터이다. 아마도 이런 한계에도 25만여 명을 불러 모은 흥행 원동력은 <미생>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변요한의 힘이 어느 정도는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제목부터 <소셜포비아> 인데다 줄거리를 보면 ‘현피’라는 잘 모르는 단어가 등장한다. 요즘 젊은 세대의 웹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접근이 쉽지 않은 영화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부분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장벽이다.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임은 분명하다. 작품성을 높고 볼 때 좋은 점수를 줄 만 한 독립영화지만 흥행성도 충분하다. 요즘 미스터리를 표방한 한국 영화 가운데에선 손에 꼽히게 끝까지 긴장감이 잘 유지되는 영화이기도 했다. 독립영화라는 선입견을 잠시 내려 두고 선택할 지라도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라 자신 있게 얘기한다. 톱스타들이 즐비하게 나오고 영화 정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엄청나게 홍보를 한 상업 영화임에도 실제 관람한 뒤 후회하는 경우가 잦은 데 반해 이 영화는 충분히 흥미 진진하게 볼 만 하다.
두 번째 각종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우선 제목인 ‘소셜포비아’는 ‘사회 공포증’을 의미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이 영화에선 사회 공포증보단 SNS 공포증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트위터 등 SNS에 심취한 이들과 반대되는 이들을 의미하는데, 당신이 이 단어의 뜻을 잘 모르고 각종 SNS에 익숙지 않다면 바로 당신 같은 이들에게 적합한 영화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은 ‘현피’다. 영화 홍보사에선 현피를 ‘현실’의 앞글자인 ‘현’과 ‘PK(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웹상에서 벌어진 분쟁의 당사자들이 실제로 만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요즘 사회에선 현피가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법원이 현피에서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기소된 39살 정 아무개 씨에게 징역 1년 8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정 씨는 지난 해 11월 모바일 게임 도중 알게 된 31살 박 아무개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직접 만나서 싸우기로 한 뒤 만나서 흉기로 박 씨를 찔렀다. 여기서 ‘직접 만나서 싸우기로 한 것’이 바로 현피다.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지난 3월 미국 앨라배마주의 10대 소녀 3명이 버밍햄의 한 공원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이들은 3주 동안 페이스북에서 어떤 사안을 두고 언쟁을 벌이다가 ‘현피’를 결정했다.
현피를 통해 만난 소녀들의 싸움은 총격전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난투극을 벌인 소녀들 가운데 한 명의 남자친구가 현피에 따라와 총을 발사한 것. 결국 한 소녀가 사망했다. 게다가 이 소녀들은 현피에서 벌어진 싸움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페이스북에 올릴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현피를 기점으로 다양한 웹 세계의 용어로 우리가 살아가는 요즘 사회를 그리고 있다. 현피를 위해 오프라인에선 서로 모르던 이들이 만나게 되고 그들의 현피는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된다. 그렇지만 이들이 만난 현피 대상은 자살한 상태였다. 당연히 현피에 나선 이들은 악플로 자살을 조장한 셈이 됐다. 현피에 참가한 이들은 네티즌들을 통해 ‘신상털기’를 당하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현피 과정에서 발견한 사체가 자살이 아닌 타살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실제 범인을 찾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에선 자살에 의문을 표하며 진실을 밝히자는 카페 개설로 이어진다.
현피라는 개념으로 시작해 ‘인터넷 생중계 방송’, ‘신상털기’, 그리고 ‘카페 개설’ 등의 용어로 이어지는 것. 모두 웹 세계의 신생어들이다. 우선 ‘인터넷 생중계 방송’은 누구나 개인이 방송을 제작해 온라인으로 생중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프리카TV가 대표적인데 최근 유승준 심경고백이 이런 인터넷 생중계 방송을 통해 이뤄졌다.
‘신상털기’는 말 그대로 온라인에서 누군가의 신상을 캐내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디 등의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이지만 신상털기를 거치면 그 익명성은 사라진다.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돼 출연한 일반인의 신상이 온라인에서 공개되는 것부터 어린이집 폭행 사건 등이 불거졌을 때 그 신상이 온라인에서 공개되는 것도 신상털기다.
요즘엔 ○○○번 환자로 표기되는 메르스 확진 환자의 신상이 공개되기도 하는 데 이것 역시 신상털기다. 얼마 전에는 한 유명 사립대에서 촬영된 성관계 동영상 속 대학생의 신상털기가 화제가 되면서 해당 대학 학생회가 신상털기를 자제해 달라는 공식 입장을 내기도 했다.
진실을 밝히겠다며 개설되는 카페는 대표적으로 ‘타진요’가 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의미의 ‘타진요’가 큰 화제를 양산한 이후 ‘○진요’ 카페들이 수없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신조어와 온라인과 SNS의 개념이 탄탄한 짜임새로 얽혀 있는 영화가 바로 <소셜포비아>다. 단어 자체는 생소할 지라도 앞서 예를 든 사례와 사건들은 신문 기사와 뉴스 등을 통해 접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용어만 생소할 뿐 잘 모르는 남들 세계의 얘길 다룬 영화는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이런 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해 ‘악플에 인한 자살과 그 뒤에 숨겨진 타살 의혹’을 그리고 있다. 과연 타살일까,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향해 파고드는 영화의 흐름은 충분히 흥미진진함을 선사할 것이다.
참고로 변요한은 <미생>으로 뜨기 전에 이미 이 영화의 촬영을 마쳤다. <소셜포비아>가 홍보 과정에서 <미생> 변요한의 효과를 톡톡히 보긴 했지만 결코 변요한이 <미생>의 유명세를 갖고 캐스팅돼 출연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미생> 전까진 잘 모르는 신인이던 변요한은 여러 편의 단편 영화와 독립 영화에 출연하며 독립 영화계에선 상당히 인정받는 배우였다. 변요한이 <미생>으로 뜬 벼락 스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소셜포비아>를 본다면 그가 이미 <미생> 이전부터 독립영화계 최고의 스타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줄거리
영화는 온라인 화제, 다시 말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시작된다. 한 군인의 자살 소식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불어 모이는 가운데 ‘레나’라는 아이디의 여성이 자살한 군인에게 심한 악플을 연이어 남기며 화제의 중심에 선다. 점차 실시간 검색어는 ‘자살 군인’에서 ‘레나’로 변해가면서 그는 전국민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BJ(방송 자키. 주로 인터넷 생중계 방송 진행자를 지칭함) 양게(류준열 분)는 현피를 제안하며 ‘현피 원정대’를 모집한다. 한 PC방이 현피 장소로 지목되지만 레나는 해당 PC방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현피를 하자고 제안한다. 평소 SNS에 관심이 많던 경찰지망생 용민(이주승 분)은 친하게 지내는 경찰지망생 지웅(변요한 분)을 설득해 함께 현피에 참가한다. 그런데 현피 원정대는 레나의 집에서 인터넷 랜선으로 목을 매 자살한 레나의 시체가 발견하게 된다.
온라인 여론은 급변한다. 이젠 현피 원정대가 악플로 레나를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비난이 대세를 이룬 것. 자살 군인에 대한 레나의 악플에 격분하며 악플을 쏟아내던 네티즌들이 이젠 레나를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다며 현피 원정대에 악플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웅과 용민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 시험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길 듣고 고민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레나의 본명이 ‘민하영’이며 전설적인 악플러 ‘베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타살설까지 제기된다. 이제 현피 원정대는 ‘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 줄여서 ‘민진사’라는 카페를 만들고 진범 찾기에 돌입한다. 과거 베카에게 당한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타살 용의자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들은 정말로 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추리물을 찾는다면 클릭
SNS를 중심으로 요즘 웹의 세상을 잘 모르는 이들일 지라도 그들이 오프라인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는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현피, 신상털기, 인터넷 방송, 진실 규명 카페 등이 바로 그런 요소들이다. 웹 세상을 잘 몰라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을 지라도 이런 일들은 어쩔 수 우리가 살아가는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선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그렇지만 잘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추리 영화로서도 좋은 평가가 가능한 영화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8000원
극장 동시 개봉작이 아닌 경우 최신 영화의 다운로드 가격은 보통 4000 원이다. <소셜포비아>는 그 4000 원의 값어치는 분명히 하는 영화다. 게다가 색다른 용어와 소재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작가의 상상 속 세계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아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영화라는 부분에서 4000 원의 추가 가격을 책정해 8000 원을 다운로드 추천 가격으로 정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