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첫 전파를 탄 SBS의 <김미화의 U> 방송 모습. MC 가뭄 속에서 김미화의 진행이 단연 돋보였다는 평이다. | ||
지난달 중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 동안 알고 지낸 PD였다. 평소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본론에 들어간 PD는 낮방송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자는 것이었다. 친한 PD의 전화가 끝난 후 작가 선배로부터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다른 방송사의 낮방송 기획안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낮방송은 드라마 재방송과 기획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되지만 공중파 낮방송의 실시로 이런 재방송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급하게 제작에 들어가야 했다.
이 시간대는 현재 종일 방송을 실시하고 있는 케이블 방송사들의 고유시간대. 특히 홈쇼핑채널의 경우 ‘럭셔리 제품’ 이른바 해외 명품 제품을 이 시간에 배치하여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경우가 많았다. 한창 ‘황금 시간대’로 불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케이블 방송사 입장에서는 공중파의 낮방송실시가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날 밤 여의도 수십 개의 제작사무실에서는 3사의 낮방송기획안을 놓고 몇몇 작가와 PD가 모여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KBS의 경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매거진프로그램에 대한 논의였고, SBS는 시사와 화제성 뉴스에 관한 프로그램이 주제였다.
내용의 차이는 있으나 일단 방송사별로 가장 급한 것은 MC문제. 3사 모두 매일 낮시간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스케줄이 맞는 MC를 섭외하기란 쉽지 않았다.
각 방송사별로 가장 좋은 MC는 아나운서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미 유명세를 얻은 아나운서는 가을 개편에 몇 개의 프로그램을 맡은 상태라 더 이상 프로그램을 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승부수는 SBS에서 먼저 던졌다. 최근 시사에 관심이 많아진 개그우먼 김미화가 낮방송을 맡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캐스팅이 끝나자마자 신문, 언론을 통해 낮방송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SBS의 김미화 캐스팅으로 아나운서를 고르고 있던 KBS는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SBS가 김미화 카드로 승부수를 걸게 되면 아무래도 아나운서를 내세운 KBS의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
이에 KBS는 과감히 아나운서를 접고 연예인으로 눈을 돌렸다. 미시탤런트와 결혼한 남자 MC가 거론됐고, 제작비상 남녀 MC를 모두 연예인으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여자MC를 연예인으로 가기로 했다. 물망에 오른 연기자들은 매일 생방송을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여러 조건들을 만족할 만한 인물로 왕영은이 MC로 낙점됐다.
MC섭외도 문제였지만 제작팀별로 작가와 PD를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개편시기가 한참 지난 과정에서 좋은(?) 작가와 PD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아는 작가와 PD를 총동원한 끝에 한 선배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연예인 섭외하기보다 더 힘드네’. 급기야 일선에서 잠시 멀어졌던 작가와 PD들이 대거 컴백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MC섭외가 끝나자 각 방송사별로 중복되는 아이템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방송사별로 프로그램의 내용을 함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여성을 대상으로한 프로그램의 특성상 아이템과 출연자들이 심하게 중복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작하고 있는 작가와 PD는 상대방송사의 아이템을 캐내고자 선후배를 필두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 선배에게 어렵게 전화를 해 안부를 묻고 결론은 낮방송에 관한 내용을 묻기 일쑤였다. 또 방송시간의 경우 KBS는 드라마 재방송 편성 관계로 월~화요일은 80분 방송, 수~금요일은 90분 방송으로 자리 배치했다. 김미화를 필두로 한 SBS는 낮 1시로 편성했다가 12시30분으로 시간대를 옮기는 등 편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자, 이제 방송가에서는 DMB시대와 함께 개막된 낮방송의 성공 여부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과연 그 성패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