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커머스 쿠팡이 자체배송시스템 ‘로켓배송’을 선보이면서 물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쿠팡의 김범석 대표. 오른쪽은 쿠팡 홈페이지 캡처. 일요신문DB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소형 택배사의 인수·합병 릴레이는 마침표를 찍은 상태다. 동부택배(현 KG로지스)는 옐로우캡(현 KG옐로우캡)과 손을 잡았고 최근엔 로젠이 KGB택배를 인수하며 한 단계 덩치를 키웠다. 덕분에 로젠은 10.9%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업계 상위권인 현대로지스틱스(12.9%)와 한진(11.5%)을 바짝 뒤쫓게 됐다.
중소형 택배사의 순위 정렬이 마무리되자 이제 관심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동부익스프레스와 대우로지스틱스의 향방에 집중되고 있다. 오는 8월 동시에 인수전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업계 1위 자리를 굳히려는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현대글로비스, 한국타이어, 동원그룹 등이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한때 한국타이어가 양사 모두를 인수해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고되기도 했지만 대우로지스틱스 인수전에서는 발을 빼기로 했다.
이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소셜커머스 쿠팡은 ‘로켓배송’을 선보여 업계를 놀라게 했다. 쿠팡은 전국에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배송전담 직원 ‘쿠팡맨’ 1000명, 배송차량 1000여 대를 확보하는 등 로켓배송 사업에 4500억 원을 투자하고 빠른 배송과 친절한 서비스(박스기사 참조)를 내세워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난데없이 등장한 로켓배송이 급성장을 거듭하자 업계의 견제도 심해졌다. 쿠팡은 운송사업자가 아니기에 배송서비스를 하는 건 불법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나선 것. 현행법상 택배 등 물류사업을 하려면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뒤 ‘노란색’ 번호판을 단 운송사업용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계속된 논란 끝에 지난 4월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쿠팡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위반했다며 국토부에 이의를 제기하고 유권해석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에 국토부는 “쿠팡의 배송서비스는 택배 개념이 아닌 회사가 구매한 제품을 서비스 차원에서 배송하는 성질임으로 9800원 미만 제품에 배송비를 받는 것은 위법사항이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쿠팡은 국토부의 의견대로 9800원 이상인 제품에 대해서만 배송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내리며 논란을 잠식시키려 했으나 물류협회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5월 전국 21개 시·군·구청에 쿠팡 로켓배송캠프 25곳을 고발하고 법률 검토를 거쳐 올해 안에 소송까지 진행할 계획을 내비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사업을 하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쿠팡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우리는 여러 규제와 절차 때문에 차량 한 대를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쿠팡은 모든 게 자유롭다”며 “쿠팡과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대화가 끝났다. 만약 여기서 물러나면 제2의 로켓배송이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독하게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쿠팡의 성장이 심상치 않아 우리도 대응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쿠팡의 심상치 않은 성장’은 이달 초 일본의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한화 1조 1000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1조 원이 넘는 돈을 로켓배송에 투자해 시스템을 갖추면 그쪽도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 텐데 불법 논란은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 물류업계의 우려처럼 쿠팡은 여러 견제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거액의 투자 자금을 유치해 물류망 확장에 집중하는 한편 물류업계의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농협과도 한 배를 탔다. 쿠팡은 지난 19일 농협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농산물을 포함한 신선제품을 올 추석부터 로켓배송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서 농협은 우체국의 토요일 배송 중단과 택배 단가 상승으로 상하기 쉬운 농축산물 처리가 곤란하게 된 점, 농민과 소비자들이 비싼 택배비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점을 들어 택배 시장 진출을 탐냈다.
민간업체 요금수준보다 낮은 택배비로 농민과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였지만 제 그릇 지키기에도 벅찬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진척이 없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농협까지 택배에 뛰어들면 시장 점유율이 높은 일부 상위 대기업을 제외하고 치열한 경쟁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형 업체들이 짓밟힐 것이라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처럼 뭘 해도 반발에 부딪치는 쿠팡과 농협을 두고 일각에서는 두 회사가 기존의 택배 업체를 인수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배송사업을 더 키워 나가야 하는 쿠팡과 특혜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농협이 중소형 택배회사를 인수하면 대부분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자금도 크게 부담 없는 업체들이니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쿠팡과 농협 모두 택배회사 인수설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구체적인 논의사항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미 물류업계의 변화는 시작됐다. 업계도 한정된 재화와 서비스, 큰 차이 없는 가격이라면 빠른 배송이 유일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쿠팡의 로켓배송에서부터 시작된 물류업계의 지각변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