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아저씨와 아가씨’의 대결로 인기를 끄는 지지옥션배에서 김정우(왼쪽)가 도은교를 물리치며 3연승을 했다.
아저씨 팀은 바둑TV의 명사회자이며 내셔널리그 ‘서울건화’의 시니어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심우섭 선수를 선봉으로 내세우며 기선제압을 외쳤다. 아가씨 팀의 선발은 박지영 선수. 심우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중반 이후 국면을 여유 있게 이끌어 나갔다. 관전자들과 아저씨 팀 응원부대는 모두 심우섭의 낙승을 예상하면서 즐거운 뒤풀이를 향해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날아온 소식은 박지영의 ‘흑, 6집반승’. 아저씨가 골인 직전에 착각을 범한 것. 순간적이었고, 단 한 번의 착각이었는데, 그걸로 역전이었다. 늦은 밤 아저씨 팀의 뒤풀이자리는 좀 그랬다. 지지옥션배는 매주 월-화요일 저녁 7시에 열린다.
이튿날 김정우가 2번 주자로 등장했다. 김정우는 5회 대회 때부터 고정 멤버로 출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승5패니까 성적표는 별로 좋지 않다.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심우섭에게 이기고 나서 “3연승쯤 올리고 싶다”고 말했던 박지영을 제압해 아가씨 팀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일주일 후, 15일, 김정우는 여자 주니어 팀 2번 김여원을 가볍게 물리쳤고 다음 날은 도은교를 제압, 3연승을 달렸다.
바둑은 백이 좀 버거운 상황. 상변 접전에서 백의 착오가 있었다. 그러나 김정우는 용전분투하며 국면을 맞춰가고 있다. 하변에서 백1~5로 일단 터를 잡았다. 상변에서 중앙으로 흘러나온 백 대마가 아직 미생이어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버텨야 한다. 그러자 흑은 “아니, 아무리 선배님이지만 대마를 어쩌시려고…” 하면서 6으로 건너붙인다. 아닌 게 아니라 대마의 생사가 위태로워 보인다. 설령 살더라도 중앙 부근에서 흑이 두터워지면 하변 백진의 A 같은 곳도 노릴 수가 있다. 그러나 김정우는 백7을 준비하고 있었다. 백 대마는 애초 미생이 아니었다. 언제든 여차하면 자체 완생할 수 있는 비상구가 있었던 것.
<2도> 흑1로 받을 수가 없다. 백은 2로 들여다본다. 흑3에는 백4가 또 선수. 그래 놓고 백6으로 그냥 찝는 것. 이게 결정타다. 이른바 위-아래가 맞보기. 흑은 <3도> 1로 이어야 하는데, 백2-4로 흑 두 점을 따내면서 다시 위-아래가 끊는 것이 맞보기인 것.
흑은 대마를 공격하다가 불시에 상변 몇 점을 잃어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바둑은 또 이제부터였다. 그러나 공격하다가 거꾸로 당한 것에 마음이 흔들렸던 모양인지, 끝까지 반집이나 1집반 정도의 승부였건만, 막판에 이상하게 버티다가 무너지고 말았다. 도은교는 소녀 시절 유망한 여자 프로 후보생이었으나 학업을 위해 바둑을 잠시 쉬었는데, 졸업 후 몇 년 지나 바둑으로 돌아와 지금은 바둑TV에서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돌고 도는 바둑의 인연이 묘하다.
3연승을 하면 50만 원의 상금을 받고, 이후에는 1승마다 50만 원씩의 보너스가 붙는다. 우승팀의 상금은 1000만 원. 제한시간은 지금까지는 각자 10분에 40초 3회였으나 올해 15분에 40초 5회로 바뀌었다. 또 선수 숫자도 각 6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남자 시니어 팀 : 김동근 박성균 조민수 심우섭 김정우 김세현 최호철 △여자 주니어 팀 : 김여원 도은교 송예슬 박지영 류승희 김수영 전유진.
김정우는 “이제 겨우 통산 5승 5패가 되었네요. 그러나 다음 판에는 또 지겠죠”라면서 환히 웃는다. 바로 지난번에 얘기했듯 은퇴한 프로기사 홍종현 9단이 바둑을 위해 사법고시를 포기했던 것이라면, 김정우는 바둑과 교수를 맞바꾼 경우다. 연세대 수학과를 거쳐 카이스트에서 확률론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몇 년 강의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둑 두는 것이 전부다. 아니,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바둑 두고, 승부 하고 하는 것도 물론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지만,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고 하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니냐”면서 그에게 강의를 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김정우는 그저 환히 웃을 뿐이다. 웃음에 사심이 없다. 그는 소이부답하곤 하지만, 주위에서는 “김정우는 바둑계의 자산”이라고들 말한다. 사실은 그의 강의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