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영화를 볼 때와 다시 본 <감기>는 정말 다르고 놀라웠다. 분명 현실 속 메스르와는 다른 부분도 많지만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확산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영화 <감기>의 초반부는 무서울 만큼 현실적이었다.
특히 처음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약국 장면이 매우 충격적이다. 감염자의 기침에서 나온 비말이 타인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메르스 바이러스가 비말로 전파되는 과정 역시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버스와 학교, 어린이집 등에서 비말이 확산되는 과정 역시 CG로 표현된다. <감기>가 메르스 파문이후 새삼 주목받은 까닭이 바로 여기게 있다.
메르스 파문 초기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가 ‘접촉거리 2m, 밀접 접촉시간 1시간’일 경우에만 감염된다며 격리 대상자를 선별했다. 매우 잘못된 접근이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런데 영화 <감기>에선 접촉거리가 2m를 벗어나고 잠깐만 접촉해도 비말을 통한 감염이 이뤄졌다. CG까지 이용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준 그 장면이 이번 메르스 감염 확산 과정에서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왜 영화감독도 생각하고 CG로 표현한 바이러스의 비말을 통한 감염 확산 과정은 보건 당국은 몰랐던 것일까, 매우 안타깝다.
무조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모습도 제대로 그려졌다. 변종 조류독감이 경기도 분당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상황을 파악한 정부는 이를 공식발표하자는 의견에 부딪힌다. 이에 국무총리는 “인간은 위기 상황에서 절대 침착해질 수 없다. 우리 발표 듣고 공포심에 난리치면 그게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며 ‘선격리 후발표’로 입장을 정리한다. 메르스 파문 초기에 왜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영화 <감기>에선 이런 이유로 공식발표가 이뤄지지 않았다. 각각의 이유까진 파악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확산 과정에서 정부 당국의 허둥대는 모습은 영화와 현실이 무서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의료진 등 보건 전문가와 정치인의 대립은 <감기>에서도 묘사된다. 엄청난 질병 앞에서 헌신하는 의료진과 정치적인 계삭이 더 먼저인 정치인의 모습이 상반되게 그려지는 것. 의료진이 “고병원성 바이러스 구제역처럼 전국으로 퍼진다”며 분당 폐쇄를 주장하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반발한다. “(폐쇄에 대한)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 신종플로 때도 그 난리 치더니 막상 사망자 수는 계절 감기랑 비슷했다”며 반발한다. 시급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주장에 정치권은 ‘그들이 가장 잘 하며 좋아하는’ 회의만 다시 하자고 얘기할 뿐이다.
영화인만큼 <감기> 속 변형 조류 독감은 현실의 메스르보다 훨씬 무섭다. 어마어마한 치사율과 엄청난 감염력을 가진 질병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때문에 중국인 등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고 한국인의 입국에 경계감을 표하는 국가도 여럿 있다. 그렇지만 훨씬 무서운 변종 조류 독감을 다룬 영화 <감기>에선 더하다. 특히 영원한 우방 미국은 전시 군작전통제권까지 내세우고 나선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감염지역인 경기도 분당을 완전 폐쇄해서 그 지역으로 피해를 국한해 다른 지역으로의 감염을 막아내느냐의 결정이다. 이렇게 될 경우 타지역으로의 전파는 막을 수 있겠지만 분당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모두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분당의 비감염자들은 폐쇄 지역을 물리력으로라도 뚫고 탈출하려 한다. 사실상 폭동에 가까운 상황까지 진행된다. 여기서 미국은 분당을 폐쇄한 바리케이드를 뚫고 나오려는 분당 시민들에게 사격까지 명령한다. 그리고 실제 총격이 가해지면서 양측의 총격전이 시작되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이 대목에서 강한 대통령(차인표 분)이 나온다. 권력을 통한 독재자 성향의 강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강해진 대통령이다. 대통령 몰래 국무총리는 미국 측과 분당 폐쇄가 실패할 경우 한국군이 분당 시민에게 총격을 가해서라도 완전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미국은 이 계획이 실패할 경우 미군 전폭기를 출동시켜 분당을 폭격할 계획까지 마련했다. 그렇지만 한국 대통령에겐 전시 군작전통제권이 없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를 활용해 미군과의 대치 상황을 연출한다. 한미 전시 군사작전통제권과는 무관하게 수방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통령 직권임을 감안해 수방사 지대공미사일로 미군 전폭기에 대한 격추 명령을 내려 한국과 미국의 군사 대결 국면까지 감수하며 분당에 대한 미군의 폭격을 막아내는 것.
사실 이 영화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클라이막스에서 강력한 통치권을 선보이며 영화적 재미만 더하는 정도다. 실제는 세 주인공이 중심이다. 원천 감염자인 동남아시아 노동자에게 선행을 베푼 미르(박민하 분)의 착한 마음씨를 기반으로 감염된 딸을 구하려는 의사 인해(수애 분)의 헌신, 그리고 둘 사이를 오가며 감염자들을 돕고 끝내 미르를 지켜내는 지구(장혁 분) 등의 노력으로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항체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첫 기사를 쓸 당시만 해도 기자는 젊고 강한 대통령과 늙고 노회한 국무총리의 대립, 그리고 미국과의 일촉즉발 상황까지 몰아간 대목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당시 기사에서 기자는 이렇게 관련 부분을 언급했다.
‘할리우드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만큼 스케일도 크다. 도시를 봉쇄하고 도시 하나를 희생해 나머지 국가, 아니 전세계를 구하려는 총리와 미국 주도의 ‘클린 시티’ 대책과 봉쇄된 도시의 인권을 우선하는 대통령의 대립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본 구도다.’
‘이야기의 틀을 너무 키운 것도 문제다. 젊은 대통령이 경륜 있는 총리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한미 작전통제권을 내세워 대통령을 압박하는 미국 측의 모습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재난 상황 자체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부분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이런 견해는 큰 틀에서 지금도 변함없다. 영화평을 쓰는 영화 기자 입장에선 지금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메르스로 촉발된 현실을 바라보며 강력한 대통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본 것은 사실이다.
메르스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정치적 계산이나 외교 문제 등은 일단 접어두고 국민 한 명 한 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재난 최일선에서 지켜내는 강한 대통령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영화 <감기>는 항체 보유자를 통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질병관리본부의 공식 발표로 마무리된다. 하루 빨리 현실에서도 메르스 종식을 선언하는 질병관리본부의 공식발표가 나오길 기대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