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에 닥친 메르스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일요신문]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기세가 한풀 꺾여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지만 메르스가 남긴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밀집돼 있어 메르스에 바짝 긴장했던 학원가에서 메르스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9일 대구시 학원가는 한창 시끄러웠다. 대구시교육청이 대구 수성구 소재의 유명 대형 학원인 A 학원에 대해 “강력한 행정처분(등록말소)을 내리겠다”고 했기 때문. A 학원이 등록말소 처분을 받게 된 까닭은 ‘메르스’ 때문이었다. 대구시교육청은 “A 학원이 메르스와 관련해 자가 격리된 학생과 같은 학교를 다닌 학생들을 학원에 오지 못하도록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학원법 위반에 해당되기에 등록말소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르스 여파 속에서 갑자기 등록말소 처분을 받게 생긴 A 학원은 ‘억울하다’라는 입장이다. A 학원 관계자는 “우리는 그저 학생들을 위해 메르스 대응 방침을 세운 것뿐이다. 당시 급박한 상황이었고 교육부의 별다른 지침이 없었기에 자체적으로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사건은 지난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에서는 메르스 확진자가 최초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확진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 역시 비상이 걸렸다. 이후 메르스의 여파는 학생들이 밀집한 학원가로 옮겨갔다.
대구 유명 학원인 A 학원도 메르스 여파에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학원가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A 학원에 메르스 확진 환자 자녀가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소문이 우려된 학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업무가 마비될 상황에 이르자 A 학원 내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A 학원 관계자들은 즉시 ‘메르스 대책 회의’를 열었다. 관계자들이 확인한 결과 확진자의 자녀는 학원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확진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재학생 4명이 학원생인 것으로 확인됐다. A 학원 입장에서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A 학원 관계자는 “학생들의 안전이 걸렸기에 좀 더 확실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혹시 모르니 4명의 학생(2명은 내신준비로 이미 휴원 상태)들을 격리시켜 1대1 수업을 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전체 공지를 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1대1 수업을 받는 학생과 학부모가 상처를 받을지 모르니 먼저 사전 양해를 구해 동의를 얻었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A 학원은 공지 문자를 작성해 학원생과 학부모에게 돌렸다. “메르스 확진자 자녀는 학원생이 아니며 해당 학교에 다니는 재학생 4명은 정규 수업 복귀 불가 조치를 취함. 해당 학교생은 학원 입학시험 응시 불가능”이라는 게 골자였다. 적극적인 대응이었지만 문제가 숨어 있었다. 수업 복귀 불가와 입학시험 응시 불가능에 대한 ‘기한’을 명시하지 않고 그대로 문자를 보낸 것. A 학원 관계자는 “상황이 다급한지라 급하게 문자를 작성해서 보내다보니 실수가 있었다. 오해가 생길까봐 다음날 곧바로 ‘확진자 자녀의 2차 검사가 음성으로 나올때까지 ‘메르스 상황이 안정화 될 때까지’의 일시적인 조치’라는 기한을 달아 정정 및 사과 문자를 다시 발송했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상황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지만 문제는 공지 문자를 보낸 지 이틀 만인 18일에 발생한다. 갑자기 대구동부교육청에서 ‘사건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학원에 요구한 것이다. A 학원 관계자는 “교육청에서 다급하게 전화로 오늘까지 사건경위서를 제출하라고 독촉해 급하게 작성해서 제출을 했다”라고 전했다. 대구동부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에게 민원이 들어와서 사건경위서를 내라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사건경위서를 내고 나서 벌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대구교육청이 A 학원에 대한 등록말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사에서는 “A 학원이 메르스 확진 자녀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 대해 등원을 거부하도록 유도하는 문자를 발송했기에 행정처분을 받았다”라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명시됐다. A 학원 관계자는 “교육청의 아무런 사전조사도 없이 등록말소를 받는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알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라고 전했다.
A 학원의 등록말소로 대구시 학원가가 떠들썩 했다. 언론 인터뷰하는 A 학원 관계자. 출처 = 채널A 뉴스캡처
A 학원이 교육청으로부터 행정처분에 대한 정식공문을 받은 시점은 다음날(19일) 저녁이다. 기사가 먼저 터진 후 공문이 뒤늦게 나간 셈이다. 이에 대해 교육청 측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라는 입장이다. 대구동부교육청 관계자는 “정식 보도 자료를 돌린 일이 없다. 어떻게 먼저 보도가 그렇게 나갔는지 아리송하다. 아마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정보를 입수해 보도한 듯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교육청이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이미 ‘행정처분’이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언론에 흘린 게 아니냐는 의심스런 시각도 일고 있다. 당시 대구시는 메르스 대처가 부실하다는 질타를 사방에서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의 시선을 학원가로 돌리는 한편, 그 주요 타깃으로 A 학원을 삼은 게 아니냐는 미심쩍은 시각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행정처분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등록말소’ 처분도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교육법 전문 변호사는 “문자메시지 안내를 가지고 균등한 교육 기회를 침해했다고 보긴 어렵고 등록말소 사유도 법률에 해당하는 게 없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등록말소의 대표적인 이유로 교육청 측은 ‘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제4조와 제17조를 제시했다. 조항의 핵심은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해야 할 책무 위반, 학습자의 인격권 침해’ 등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공지 문자 내용을 보면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해야 하는 책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기에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 학원 측은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A 학원은 해당 학생 4명 중 자체 휴원을 하고 있는 학생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명과 스케줄을 조정해 개별 수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A 학원 관계자는 “해당 학생들이 수업을 받은 확인서를 받았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라고 전했다. 해당 학생의 한 학부모는 “메르스 때문에 불안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전에 자진해서 아들에 대한 개별 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다른 학원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진행했다. A 학원이 과도한 처분을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한편 A 학원은 지난 24일 대구수성경찰서에 메르스 관련 허위 소문 유포자 색출 및 처벌 진정서를 제출했다. 또 반박 자료를 종합해 대구동부교육청에 이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대구동부교육청 관계자는 “신청서는 일단 접수했다. 오는 7월 7일에 청문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에 말소처분은 그 이후에 결정될 것 같다. 현재로서는 처분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라고 전했다. 결국 향후 이뤄질 청문에 A 학원의 운명이 달린 셈. 메르스 대응으로 촉발돼 의도치 않게 곤경에 빠진 A 학원으로서는 소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구 학원가에서 벌어진 메르스 후폭풍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