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호남 출신 김현웅 서울고검장을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하자 “차기 검찰총장은 무조건 TK 출신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일요신문 DB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6개월간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인사에서 호남 출신을 단 한 번도 등용한 적이 없다. 국정원 댓글사건 이후 ‘TK(대구·경북) 출신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며 현 정부 주류들 사이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탓이다(<일요신문> 1204호 보도). 내각 인사에서도 그동안 호남 출신으로는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전남 완도)을 필두로, 진영 보건복지(전북 고창), 김관진 국방(전북 전주), 이기권 고용노동(전남 함평) 장관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검찰 안팎에선 “무슨 이유에서든 호남 출신을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한 것은 상당히 전향적인 일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TK와 PK(부산·경남) 일색의 인사였던 것을 감안하면 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며 “김 후보자가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게 되면 또 다른 호남 출신이 앞으로 요직에 등용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TK 출신 김수남 대검 차장. 일요신문 DB
실제로 김 후보자 지명 이후 가장 먼저 나온 해석은 김진태 검찰총장 후임으로 TK 출신이 무조건 된다는 것이었다. 김수남 차장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거론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김 차장의 경우 지난 2013년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가지 못하고 수원지검장으로 발령받은 후 사실상 검찰총장에 대한 꿈을 접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다 현 정부의 공안기조에 발맞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수사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치면서 현 정부 권력 핵심부와 더욱 가까워진 김 차장은 우병우 민정수석과 핫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 차장과 우 수석 간 핫라인은 앞으로 더 긴밀하게 가동될 것”이라며 “김진태 총장은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현 정부 TK 주류인 김 차장과 우 수석 두 사람이 사실상 검찰 수사와 인사 등을 책임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올 하반기에 있을 차기 검찰총장 인사에서 김 차장이 가장 유력할 것이란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 더욱 공고해진 ‘우병우 체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현 정부의 대대적인 사정 실패를 놓고 우병우 민정수석 책임론이 제기됐다. 새누리당 내 친이계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인사들을 타깃으로 하는 사정의 밑그림을 우 수석이 그렸다는 게 중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왼쪽부터 황교안 총리, 우병우 민정수석
검찰 내에선 앞으로도 우 수석이 이 사정의 ‘물밑 지휘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내년에 있을 총선과 그 이듬해 대통령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우 수석의 수사 개입은 더 빈번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지난 2년 3개월 동안 검찰을 장악하고 있던 황교안 총리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선 우 수석과 김수남 차장 라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김 후보자 지명은 우 수석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우 수석의 검찰 수사 개입은 아마도 더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황교안의 검찰 장악력
황교안 총리의 경우 지금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번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이완구 전 총리가 했던 것처럼 공직기강 확립 등 4대 구조개혁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 문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맡고 있는 데다, 외교·안보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황 총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당분간 고강도 사정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황 총리와 가까운 한 검찰 인사는 “김현웅 고검장이 호남 출신인데도 이번에 법무장관 후보에 지명된 것은 김 후보자와 법무장관과 차관으로 1년여 동안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황 총리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황 총리가 김 후보자를 낙점한 것은 그가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김 후보자가 김진태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자리에 있었고 김 총장의 사법연수원 두 기수 후배라는 점, 현직 고검장이 법무장관에 발탁된 게 1997년 김종구 서울고검장 이후 처음이라는 점 등은 청와대와 현 정부 주류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