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사법연수원 전경. 오른쪽은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개나 소나 붙여주는 게 똥시(변호사시험) 아니냐. 성적 공개도 안 하는 시험을 치른 애들이 같은 직함 단다는 게 짜증난다.”
자신을 로스쿨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블로거의 게시판에는 ‘댓글테러’가 가해져 있었다. 대부분 사시생이나 사시를 통과한 법조인이 적을 법한 내용이었다. 댓글을 단 이들은 ‘로퀴는 쓰레기’, ‘로퀴박멸’ 등의 닉네임을 달고 있었다. ‘로퀴’는 로스쿨과 바퀴벌레의 합성어로 사시생들이 로스쿨생을 비하하는 단어다.
로스쿨생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은 사시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다. <법률저널> 홈페이지에 있는 ‘사법시험 커뮤니티’와 디시인사이드의 ‘사법시험 갤러리’가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조금이라도 로스쿨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올라오는 글의 상당수가 로스쿨 제도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실제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는 글에는 “요즘 연변(사시 합격 후 연수원 출신 변호사)한테 엄청 무시당하냐”, “로퀴XX, X소리 하고 있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로스쿨생과 로변들 역시 이에 굴하지 않는다. 사시생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본인들 입지가 흔들리니까 자격지심에 욕하는 거 아니냐’는 취지로 싸움을 거는가 하면, 사시생들을 ‘사시좀비’라는 말을 붙여 비하하기도 한다. 답도 나오지 않는 소모적인 싸움에 상스러운 단어로 공방전이 오가는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지만, 익명 게시판 뒤에 숨은 유치찬란한 두 진영의 싸움은 끝날 줄 모른다.
로변 대 연변의 싸움은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시험 4기를 배출하는 동안 갈등은 어느 정도 봉합세라고 하지만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중소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변시 1회 출신들이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갈등은 최고조였다. 연수원 출신 변호사는 로변이라면 같은 학부 출신 선배라도 인사를 안 했다. 한 마디로 로변이면 무조건 깔보는 식이었다”고 회상했다.
로변과 연변이 같은 회사나 로펌에 몸담고 있는 경우도 신경전은 벌어졌다. 현재 변호사 시장에서 연수원 출신 변호사는 로변보다 월 수십만 원을 더 받도록 ‘시장 가격’이 형성돼 있다. 월급도 다르고, 선배들이 모두 연수원 출신이다 보니 대우도 다르다. 연수원 출신의 한 대기업 사내 변호사는 “처음 입사했을 땐 솔직히 동기라도 로스쿨 출신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게 껄끄러웠다”고 털어놨다.
법조계는 어느 집단보다 기수 문화가 확실한 집단이기에 로스쿨 출신과의 ‘기수 힘겨루기’도 일어나고 있다. 외부인이 보기에 ‘유치하게 몇 기인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생각되지만, 판사나 검사는 인사 배치 시 기수에 따른 서열 정리가 첫 번째 고려 요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시생과 로스쿨생이 서로를 ‘로퀴’ ‘사시충’이라고 비하하며 열띤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변시 3회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연수원 기수와 로스쿨 기수가 딱 6개월 차이가 난다. 때문에 현장에서 어떤 기수를 선배로 봐야할지 몰라 난감한 경우도 더러 있다”며 “이 6개월 차이 때문에 사시 출신들이 로스쿨 출신에게 반감을 갖기도 한다. 6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난 로변들이 시장에 나오는 시기가 딱 연수원 출신이 수료를 마치는 시기다. 때문에 연수원 출신들은 ‘로변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더 줄어든다’고 여기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로변 때리기’는 청년 변호사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중견 변호사들이 로스쿨 출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중견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은 채용해보면 안다. 들입다 변시만 준비해서 전공 분야가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변호사도 “중소 로펌을 운영하는 많은 변호사들은 굳이 로스쿨 출신을 뽑을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는 분위기다”며 “일단 6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실무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로스쿨 출신을 뽑으면 처음엔 손이 많이 간다. 때문에 ‘오히려 돈을 받아 가면서 채용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성적이나 배경에서 최상위권 로스쿨 출신들은 소위 ‘검클빅(검사·로클럭·빅로펌)’으로 빠져 걱정이 없지만, 이외의 변호사들은 선택지가 한정적이다. 로변 기피 현상으로 갈 만한 로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수습기간 동안 업무 처리에 드는 실비만 주고 ‘열정페이’를 시키는 곳이 수두룩하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두 명을 뽑아 놓고 최종 채용은 한 명만 하겠다며 무급으로 수습 6개월간 일을 시키는 곳도 봤다. 수습기간 동안 일은 안 가르치고 잡무만 시키는 곳도 많다”면서 “때문에 로스쿨 출신들끼리는 ‘블랙리스트’ 로펌을 공유한다”고 현실을 전했다.
변호사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로변 기피현상이 겹치다보니 로변들은 생존전략을 고심한다. 기존 로펌들과의 경쟁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수임료다. 때문에 변호사 사이의 ‘금기’였던 수임료 공개를 하는가 하면, 한 건에 몇 만 원 수준인 집단소송 유치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모순적이게도 이런 생존전략은 다시 기존 변호사들이 로변들을 지탄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 이혼전문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들 때문에 시장질서가 흐려지고 있다. 돈만 된다면 무조건 달려든다. 수임료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최저가 경쟁을 한다. 꼴도 보기 싫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로스쿨 출신과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 사이의 갈등은 조만간 봉합될 거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변시 4회 차를 맞으면서 로변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숫자가 됐고, 증가 추세는 사시존치 논란과 별개로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변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투명성 논란 역시 지난 25일 대법원에서 “변호사 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오면서 일정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변시 3회 출신 변호사는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편가르기를 부추기고 있어 문제다. 로스쿨이 허점이 많은 제도라는 건 우리도 인정한다. 이 제도를 어떻게 고쳐 양질의 법조인을 양성할지를 고심하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