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이행관리원은 아이를 기르는 한부모가 비양육친으로부터 양육비를 받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전문직 종사자와 결혼한 민 아무개 씨(여·38)는 지난 2013년 이혼했다. 남편은 억대의 연봉을 올렸지만 민 씨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줬다. 시어머니 또한 전업주부인 민 씨를 ‘식충이’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민 씨는 남편의 외도 사실까지 알게 됐다. 분명 남편에게 귀책사유가 있었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당시의 민 씨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두고 집을 나왔다.
미술전공자였던 민 씨는 1년 뒤 작은 갤러리에 취직하게 됐다. 직장이 생긴 민 씨는 아이들은 데려오기로 했다. 민 씨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전 남편에게 두 아이의 양육비를 요구했지만 ‘지난 10년간 내가 번 돈으로 애들을 키웠으니 앞으로 10년은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대답만 들었다. 나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 생긴 문제라고 생각해 소송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지금껏 양육비를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민 씨와 같은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 2012년 여성가족부의 한부모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가족의 83%가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대략 39만 가구가 이혼 후 혼자서 양육비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자녀를 양육하기로 한 양육자는 헤어진 배우자(비양육친)를 대상으로 양육비 청구소송을 할 수 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자녀의 친부모라면 역시 양육비를 요구할 수 있다. 친부모가 미성년자라면 상대방의 부모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비양육친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양육비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양육자 입장에서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녹록지 않다. 양육비 소송에는 변호사 선임비용 등 경제적 제약이 따르는 것은 물론, 소송을 한다 하더라도 전 배우자의 현 거주지와 재산, 소득, 직장 등을 직접 파악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출범했다. 사적인 영역에 맡겨져 있던 양육비 분쟁을 공적 영역이 분담하게 된 것이다.
10㎡(약 3평) 남짓한 양육비이행관리원 협의실은 조용할 날이 없다. 누군가는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악에 받쳐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이곳에서 쏟아내는 저마다의 사연은 복잡 미묘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이혼했거나 결혼하지 않은 채 자녀를 기르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한부모가 상대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다. 양육비 협의부터 양육비 청구 소송 등의 법률지원, 양육비 이행 강제 등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서는 양육비로 인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양육비 전쟁’이 벌어지는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인수 팀장(오른쪽)과 안미경 실무위원이 상담 과정의 고충을 털어놓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양육비이행관리원 김인수 양육비상담본부 팀장은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양육비를 아이를 키우기로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몫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선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양육비 채무자들도 양육비를 생활하고 남은 돈을 주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양육비는 자선사업이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져야할 의무다”라고 지적했다. 양육비 상담을 진행하는 안미경 실무위원도 “2008년부터 이혼할 시 양육비 분담 조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됐다. 그러나 ‘이혼하려고 어쩔 수 없이 (조서를) 썼다’거나 ‘돈 없으면 (양육비) 안줘도 되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놨다.
양육비를 자선비용쯤으로 생각하는 채무자를 설득하고 협의에 이르게 하는 것도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역할이다. 한부모가족이 양육비 이행과 관련한 상담을 신청할 경우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채무자 측과 협의를 시도한다. 연락이 되지 않거나 주소지를 옮긴 배우자를 찾아내는 것도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몫이다. 대부분의 양육비 채무자들은 양육비이행관리원과 양육비를 지급하겠다는 협의를 하는 선에서 갈등을 마무리한다. 지난 3월 출범 이후 100건 이상이 소송 전 협의수순에서 해결이 됐다.
협의 과정도 녹록지만은 않다. 김 팀장은 “협의를 진행할 때는 양육자는 물론 비양육친도 상담을 한다. 가끔 삼자대면을 하기도 하는데 부부간 감정이 격해지거나 어색한 경우도 있어 별도의 협의실을 준비해 둔다. 하루 만에 협의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협의를 이끌어 내는데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물론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 협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양육자가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법률지원을 한다. 이미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고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채권추심팀으로 연결된다. 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배우자의 소득파악을 해야 했던 양육자의 역할을 대리하는 격이다.
양육비 청구소송을 내는 양육자의 수고를 상당부분 덜어줬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양육비를 받아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 우리나라는 밀린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서 세금 환급 금액 압류, 신용정보회사 등에 체납자료 제공, 양육비를 주지 않는 비양육친에 대한 수수료 부과 등 간접적인 이행 강제만 가능하다. 양육비를 연체하면 여권발급 거부나 운전면허 취소 등 강력한 수단을 활용하는 외국과는 차이가 있다.
정지아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이혼 후 고의로 양육비를 30일 이상 주지 않을 경우 법원의 명령에 의해 감치되는 것이 최대의 제재”라며 “하지만 이 또한 최후의 수단이다”고 말했다.
안미경 위원은 “협의에 응하지 않다가도 아이를 대면하거나 아이의 사진을 받아드는 순간 마음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우리와의 면담이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내 자녀에 관한 문제를 신경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면접 교섭권’이 중요한 이유”라며 “자녀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올바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양육비 전쟁 천태만상 이혼 열흘 만에 재혼 후 ‘금액 깎아달라’ 소송 헐~ A 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자녀를 양육했다. 남편에게 매번 양육비를 독촉했지만 남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재혼 소식이 들려왔다. A 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남편이 재혼하는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장에서 전 남편을 마주한 A 씨는 아이에게 “저 사람이 네 아빠다”고 운을 뗀 뒤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A 씨는 당일 신랑 측으로 들어온 500만 원가량의 축의금을 모두 가져간 것도 모자라 전 남편의 새 장인이 해준 금반지까지 뺏어갔다. A 씨는 이때의 일로 추후 양육비 지원을 신청하면서 협의에 어려움을 겪었다. 양육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경북 예천에서 이혼한 C 씨는 80대 전 시어머니를 살해했다. 이유는 양육비였다. 양육비 문제로 전 남편과 갈등을 빚어오다 전 시어머니를 찾아간 C 씨는 전 남편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법무법인 가족 엄경천 변호사는 “갈등이 깊어진 상태에서 양육비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양육비 채권자는 채무자를 상대로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갈등은 더 깊어진다”며 “부모는 미성년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고, 그 양육에 드는 비용도 원칙적으로 부모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