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판매 부진으로 정몽구 회장이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것으로 보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다. 현대차는 고오키 대표의 조언대로 진정한 힘을 갖게 됐을까. 애석하게도 현재까지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의 힘을 받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현대차는 하락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 것이다.
세계시장 개척의 든든한 배경이 됐던 안방(내수시장)에서 적신호가 켜졌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2년 71.7%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68.2%, 2014년 65.1%, 올해 1분기에는 63.0%까지 떨어져 70%선 회복은커녕 60%대 장벽마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도 녹록지 않다. 미국시장의 경우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올해 4월 8.3%에서 5월 7.7%로 떨어져 석 달 만에 미국 시장 점유율이 7%대로 내려앉았다. 특히 현대차는 5월 미국 시장에서 6만 3610대를 판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나 줄었다.
중국시장도 두 자리 수 감소가 두드러졌다. 5월 현대차는 중국에서 8만 22대를 팔며 지난해 같은 기간(9만1025대)보다 12%, 기아차는 4만 9005대로 5.9%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차 합산으로는 지난해보다 9.9%가 줄며 올 들어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현대차그룹의 성장을 견인해 줬던 내수와 양대 해외시장에서 판매량 및 점유율 둔화의 원인은 신차 투입이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주력품목의 노후와 엔저에 따른 가격 경쟁력 하락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소비자 불만과 줄어들지 않는 거부감은 어렵게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흔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던 ‘MK(정몽구 회장)의 마법’이 효력을 다한 게 아니냐는 급진적인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그룹의 구조적인 경쟁력으로 △낮은 인건비, 소재 비용, 에너지 비용이 가져온 비용 경쟁력과 장기간 계속된 원화 약세 효과 △기아차 인수 후 진행한 통합 플랫폼 전략 △현대 모비스를 중심으로 부품 공급 계열사 육성 및 자동차 부품 모듈의 아웃소싱을 통한 품질 개선 및 원가 경쟁력 제고 △계열사 상호 지분 보유에 따른 독특한 지배 구조와 정몽구 회장의 경영능력을 꼽았다. 이 가운데에서도 정몽구 회장의 거침없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글로벌 업체들이 보유하지 못한 현대차그룹의 최대 강점이라고 여겨왔다.
중국 충칭 공장 착공식. 정몽구 회장 대신 정의선 부회장(왼쪽 세번째)이 참석했다. 사진제공=현대차
이러한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에 상처를 남긴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중국 충칭공장이다. 지난 23일 중국 충칭 제5공장 착공식이 열려 뜻을 이루기는 했다. 그런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충칭공장은 현대차의 중국내 제4공장이었어야 했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의 경우 이미 자동차 수요와 공급 모두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에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은 제4공장을 충칭에 건설해 중국 내륙시장 진출의 요지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중국 정부의 반대에 착공이 지연됐다. 더 나아가 중국 정부에 대립한다는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이에 정몽구 회장은 중국사업 관련 임원들을 문책하는 등 관계개선에 주력했지만, 결국 예정에 없던 허베이성 창저우에 제4공장을, 충칭에 제5공장을 짓게 됐다. 충칭에 모든 것을 올인하겠다는 방침이 깨어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착공식 당일 아침까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정몽구 회장은 출국 직전 포기하고 대신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해 김포국제공항에 들렀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긴급히 전용기에 올랐다. 현대차그룹 측은 정 회장이 컨디션 난조로 출국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중요한 행사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참석하는 그의 예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여운을 남았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 못지않게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스타일을 놓고 봤을 때 정몽구 회장이 일부러 충칭 공장 착공식에 불참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다양한 견제를 받는 바람에 예전과 같이 빨리 진행되지 않는 최근의 상황을 많이 답답해 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하반기부터 대대적으로 신차를 투입하는 한편, 미국과 멕시코, 인도, 터키 등에 공장 설립을 조기 마무리 해 생산규모를 단기간에 확대함으로써 도요타와 폭스바겐, GM 등과 경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급변하고 있는 시장 상황을 정몽구 회장이 고집해온 기존 방법으로 대응하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 그룹에서 정몽구 회장의 통제력은 현재로선 절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부진이 확대된다면 후계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나이로 77세(1938년생)인 정몽구 회장은 내년이면 구 현대그룹을 포함해 총수의 자리에 오른 지 20년째가 된다”며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직함을 바꾼 게 그의 나이 72세 때였다. 올 들어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의 해외출장이 잦아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과거와 같은 성장 모멘텀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후계 문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따라서 7월 1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날은 현대하이스코를 합병한 ‘통합 현대제철’이 새 출발을 시작하는 날이다. 통합법인은 자산규모 31조 원, 매출 20조 원 규모에 달한다. 1978년 현대제철의 전신인 인천제철 인수를 통해 고로 일관제철소 완공이라는 목표를 수립한 지 40년 만에 ‘정주영의 아들’ 정몽구 회장이 이뤄낸 성과다. 이로써 그는 현대차그룹 출범 후 만들고 싶었던 그림을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것은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혼자서 더 끌고 나갈지, 아니면 아들을 내세워 함께 갈 것인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지금과 또 다른 현대차그룹의 미래가 될 것이며, 재계에서는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