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STS반도체 등 하이테크 계열사를 소개하는 보광그룹 홈페이지.
#1. 지난 2008년 9월, TV·노트북용 백라이트유닛 생산업체인 태산엘시디는 한 해 78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수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계약에 따른 손실을 감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태산엘시디의 순손실은 7682억 원. 2008년 태산엘시디가 7820억 원의 매출에 25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키코 가입에 따른 손실이 얼마나 막대했는지 알 수 있다. 매각 작업마저 실패한 태산엘시디는 결국 지난해 5월 자본전액잠식으로 상장폐지됐다.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
STS반도체의 사례는 태산엘시디와 모뉴엘의 경우를 섞어놓은 듯하다. 비록 사기 행각이나 은행권과 연결된 파생상품 계약에 따른 손실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흑자 기업인 데다 여러 증권사들의 추천을 받은 기업이 영업 부진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돌연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이유에서다.
STS반도체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난 17일 STS반도체 주가는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이튿날에는 하한가는 모면했으나 28.97% 급락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15일 주식시장의 가격제한폭이 기존 ±15%에서 ±30%로 확대된 직후 터진 악재인 탓에 투자자들의 손실이 컸다. 한 투자자는 “며칠 전만 해도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아야 할 것을 이틀 만에 몽땅 맞았다”며 “여러 증권사에서 추천하길래 투자했더니 내츄럴엔도텍 꼴이 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내츄럴엔도텍 역시 다수 증권사의 추천종목으로 꼽혔으나 ‘가짜 백수오’ 사건이 터지면서 주가가 10분의 1 토막이 났다.
반도체 업황 회복세를 타고 유망 기업으로 평가받던 STS반도체의 발목을 잡은 건 계열사 비케이이엔티와 코아로직에 대한 660억 원가량의 지급보증이다. 이 두 계열사가 영업·실적 부진을 견디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보증채무를 부담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STS반도체 역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특히 소형 LCD모듈 생산업체인 비케이이엔티가 완전 자본잠식이 빠지면서 여기서 비롯한 유동성 위기가 모든 계열사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번 일로 계열사 지급보증이 큰 기업에 대한 ‘주의보’도 내려졌다. 아무리 실적이 좋은 기업일지라도 부채나 계열사 지급보증 액수가 많은 기업은 벌어들이는 돈으로 금융 비용을 충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계열사에 무리한 지급보증을 나서는 일부 지주회사의 경우도 설사 대기업일지라도 경계의 눈초리를 피하기 힘들게 됐다.
증권가에서는 새삼 부채와 지급보증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고 있다. STS반도체를 유망기업으로 추천했던 분위기와 판이하다. 지급보증이 큰 기업을 섣불리 추천했다가 STS반도체의 경우처럼 질타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TS반도체 워크아웃 이후 위험 요소와 우려를 내포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평가에 신중하게 됐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보광그룹 사형제 경영 눈길 한 지붕 아래 각자 살림…그룹 맞어? 보광그룹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형제들이 경영하는, 삼성그룹의 사돈기업으로 유명하다.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한 홍라희 리움 관장. 뒤는 동생 사형제로 왼쪽부터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보광그룹의 모태는 홍 관장의 아버지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1983년 설립한 TV브라운관 부품 제조사 (주)보광이다. (주)보광은 현재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삼성그룹 품에 있던 보광이 중앙일보와 함께 삼성에서 계열 분리한 것은 1999년. 이후 2002년 STS반도체통신, 2005년 위테크·에이원테크 등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갔다. 보광은 2006년 중앙일보에서도 분리되면서 본격적으로 독자 생존의 길로 들어섰다. 삼성에 이어 중앙일보에서도 계열 분리한 보광그룹은 그룹 내에서도 홍진기 전 회장의 자녀들이자 홍 관장의 동생들이 각자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 전 회장의 장남 홍석현 회장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앙일보를 맡고 있으며 광주고검 검사장 출신의 차남 홍석조 회장이 BGF리테일을, 삼성SDI 부사장 출신의 3남 홍석준 회장이 보광창업투자를, 4남 홍석규 회장이 그룹 지주사 격인 보광 대표이사와 전자계열사를 맡고 있다. 막내인 홍라영 리움 부관장은 언니와 함께 하고 있다. 이중 BGF리테일과 STS반도체가 보광그룹의 대표 계열사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BGF리테일은 보광그룹의 성장 동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보광은 1989년 일본 훼미리마트와 함께 우리나라에 훼미리마트를 설립해 편의점 사업에 진출, 업계 1위에 올랐다. 이후 보광훼미리마트로 분리됐으며 일본훼미리마트가 국내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보광훼미리마트는 2012년 BGF리테일로 사명을 변경했다. 훼미리마트 역시 이름을 CU로 바꾸었다. STS반도체를 비롯해 비케이이엔티, 코아로직 등 홍석규 회장이 맡고 있는 전자 계열사들은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수모를 겪게 됐다. 보광그룹은 이들 형제들이 서로 각자 맡은 부문의 경계를 크게 넘나들지 않은 채 경영하고 있다. 그룹 내 일부 관계자들마저 “보광그룹과 큰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할 정도다. 그룹 성장의 큰 역할을 한 BGF리테일의 경우 일찌감치 독자적으로 3세 경영 승계를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