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고수가 말하는 생각의 법칙’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길 수 있으면 반드시 이겨라’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더 멀리 예측하라’ ‘아플수록 복기해라’ ‘생각을 크게 열어라’ ‘사람에게서 배워라’ ‘심신의 균형을 찾아라’ ‘생각할 시간 만들기’ 등 각 장의 제목들이 그럴 듯하다. 읽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몇 갈래다.
“바둑과 인생을 접목시켜 얘기한 글은 많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대개 다소 추상적이었던 것에 비해 ‘고수의 생각법’은 당대 제일의 승부사 조훈현 9단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바둑과 승부에서 얻은 교훈을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어 참신하고 구체적이며 깊이도 있다.”
조훈현 9단이 승부의 세계에서 얻은 교훈을 일상의 삶과 연결시킨 산문집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냈다.
“뭔가 언밸런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은이도 조 9단으로 되어 있고, 서술도 조훈현 9단 1인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목이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다. 또 ‘바둑계에는 나처럼 1인자가 되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나는…바둑 신동이었다…’ 같은 문장들도 보인다.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인데 좀 면구스럽지 않은가.”
“예전에 조치훈 9단과 녜웨이핑 9단의 자서전을 읽었다. 모두 1인칭 서술의 자서전이인데, 그것들이 글자 그대로 담담한 자기 이야기인 것에 비해 ‘고수의 생각법’은 지나치게 계몽적이다. 각 장의 제목들을 보라. 요즘 넘쳐나는 무슨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 나오는 ‘지침 항목’들 아닌가. 조금씩만 건들고 지나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최근 모 일간지에 실렸던 조훈현 9단의 인터뷰 기사와 중복되는 대목이 많은 것도 그렇고. 표지도 좀 이상하다…^^.”
나이도 그렇고, 바둑계에서의 업적과 위상에서 조훈현 9단과 비견되는 사람은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던 조치훈 9단과 중국에서 바둑 영웅으로 칭송받는 녜웨이핑 9단인데, 조치훈 9단과 녜웨이핑 9단은 이미 각각 1990년대 초반과 1980년대 중반에 자서전 비슷한 책을 펴냈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조치훈, 이 책 제목은 얼마 전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대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과 <바둑은 나의 길>(녜웨이핑)이 그것이다.
녜웨이핑 9단은 1980년대 중반 ‘일-중 슈퍼대항전’에서 당시 일본의 정상 기사들을 전부 물리치며 경이의 11연승으로 일-중 양국 바둑계를 마구 흔들 때였고, 조치훈 9단은 두 차례의 ‘대3관’(일본 바둑계 7대 타이틀 중 서열 1~3위 기성 명인 본인방을 동시 제패하는 것)과 ‘그랜드 슬램’(7대 타이틀을 전부 한 번 이상 차지하는 것) 등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정점을 찍고 있을 때였다. 조치훈 9단의 자전 에세이로는 이보다 먼저 나온 <목숨을 걸고 둔다>도 있다. 일찍이 바둑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조치훈 9단의 어록 1호 ‘목숨을 걸고 둔다’를 제목으로 붙인 것인데, 도일(渡日)에서부터 명인 쟁취까지, 조치훈 바둑 인생의 전반부가 그려져 있다.
기존의 ‘조훈현 스토리들’과 ‘고수의 생각법’을 융합-정리하면 조훈현 9단 1인칭 서술의 자서전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훈현의 바둑 인생은 그 자체로 한국 바둑 융흥과 대도약의 역사니까. 기대해 본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