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표절 파문으로 한국 문단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2000년. 등단작 발표를 준비하던 문학 평론가 앞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글을 싣기로 한 문예 계간지의 편집장이었다. 하지만 이 평론가에겐 성역 없는 날카로운 평론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작품이었다. 그는 “싫습니다. 뺄 것 같으면 싣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밀고 당기기가 오간 끝에 결국 원문 그대로 실릴 수 있었다. 신 작가의 <전설>에 대한 표절 의혹을 최초 제기한 정문순 평론가의 평론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가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리게 된 과정은 이처럼 쉽지 않았다.
정 평론가는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신경숙 작가가 <딸기밭>이라는 단편집을 출간한 상태였고 그것에 대한 평론을 적어달라고 청탁받았다”며 “<딸기밭>을 중심으로 신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고찰하면서 말미에 표절 문제를 붙인 상태였다. 편집장과 ‘빼라’, ‘싫다’는 식의 실랑이가 오간 후에야 실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글이 출간되고 나서 당시 문단 내에서 정도만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신인 평론가가 신 작가에 대해 엄청나게 부정적인 평론을 냈다’, ‘보기 드물게 신 작가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나왔다’는 식의 얘기가 잠시 돌았다. 이슈화가 되지도 않았고 별다른 파장도 없었다. “글을 쓰기 전에 신 작가에 대한 평론을 찾아 봤더니 그에 대해 나쁘게 쓴 평론이 전혀 없었다. 아무도 나쁘게 쓴 적이 없는데 신인인 내가 그런 글을 쓰니 문단에서는 잠시 얘기가 돌았다”고 정 평론가는 회고했다. 공교롭게도 신 작가가 지난 1985년 중편소설 <겨울우화>로 등단한 곳도 <문예중앙>이었다.
정 평론가는 몇 달 뒤 다른 계간지로부터 청탁을 받았다. 주제도 정해주지 않고 ‘알아서 쓰시라’며 온 것이었다. 그 참에 정 평론가는 신 작가를 다룬 평론을 한 번 더 쓰겠다고 했다. 해당 계간지는 급히 내부 논의 끝에 “신 작가를 다루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답과 함께 청탁 자체가 없던 일이 되고야 말았다.
신 작가에 대한 비판은 왜 이처럼 금기시 되다시피 했을까. 정 평론가는 이 같은 현상을 문단의 노골적인 상업주의 탓으로 돌린다. 신 작가의 작품이 잘 팔리고 돈이 되니까 3대 메이저 문학 출판사들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문지)가 과도한 비호를 했다는 것이다. ‘환멸의 시대’라고까지 일컬어진 1990년대 문단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이가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신 작가라는 판단이 선 3대 출판사들이 신 작가를 전략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는 게 정 평론가의 설명이다.
“신 작가는 본인 능력으로 문단에서 입지를 얻은 게 아니라 애초부터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문단에서 길러진 사람이다. 1990년대 문단은 19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독일이 통일되고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그 이전까지 한국 문학의 주류였던 리얼리즘이 몰락의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일종의 허무 상태까지 돼 버렸다. 이런 ‘환멸의 시대’, 몰락한 리얼리즘을 갱신할 수 있는 작가가 신 작가였다고 칭해졌다. 그 말도 창비 편집진에서 나온 말이었다. 창비와는 진영이 다른 비리얼리즘 계열의 문학동네, 문지 등의 출판사에서는 리얼리즘 이후의 내면주의, 개인주의의 상징으로서 신 작가를 옹호했다.”
지난 1985년 등단 후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던 신 작가는 지난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의 히트에 힘입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된다. 특히 지난 2008년 11월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출간 10개월 만인 지난 2009년 9월 100쇄 100만 부 판매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 2012년 4월까지 누적 판매 부수 200만 부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메가 히트였다. 정 평론가의 설명이 이어진다.
“1990년대 뭔가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던 문단에 굉장히 자폐적일 정도로 사회와는 담을 쌓고 자신만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신 작가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풍금이 있던 자리>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갑자기 뜬 신 작가는 2000년대까지 계속 독보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문단 자체가 상업적인 전략으로 택했고 길러 준 작가였다. 신 작가의 문학이 문단의 상업주의와 결탁했고 신 작가가 결국 수혜를 입었다. 이 때문에 문단에서는 돈 되는 신 작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소리를 거의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다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표절은 감히 공론화 될 수 없었다.”
한 시민이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표절 의혹을 받는 단편 ‘전설’이 포함된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펼쳐보고 있다. 연합뉴스
‘환금성(換金性)’이 있는 대표 작가로서 이른바 ‘문단 권력’으로 군림하는 주요 문학 출판사들의 강력한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던 신 작가는 최근에야 철퇴를 맞는다. 지난 6월 16일 이응준 소설가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을 통해 신 작가의 단편 <전설>과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의 일부 문단을 병행 비교하며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에 <전설>이 수록된 책 <오래 전 집을 떠날 때>(2005년 <감자 먹는 사람들>로 제목을 바꿔 재출간)를 1996년 출간한 창비는 신 작가가 보내온 이메일 서신을 공개하며, 두 작품의 유사성은 전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표절 의혹 제기 6일 만에 신 작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표절에 대해 사과했으며, 곧바로 창비도 다시 입장을 밝혀 사과의 뜻을 밝히고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 정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애매모호한 사과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으며, 지난 6월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운동단체 문화연대는 공동으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 권력의 현재’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신 작가의 <전설>이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신경숙 표절 국면에서 문학 권력의 문제’라는 주제로 신 작가 표절을 옹호한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오 교수는 “문학 권력 내부에서 작가 양성과 매체 발간, 문학상 수여와 단행본 발간까지 이뤄지다 보니 독자와의 관계보다는 내부적 질서가 우위에 놓이게 된다”며 “이 질서의 ‘신화적 상징’이 바로 신경숙 문학”이라고 발표했다.
오 교수가 말하는 문학 권력은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 출판사들은 문학 단행본을 많이 출간하는 것은 물론 각각 문예지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를 내면서 한국 문단의 ‘권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들 문예지에 편집위원으로 소속된 평론가들이 각 사에서 출판되는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을 문예지에 게재하면서 작가의 명성을 굳히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일부 소신 있는 비평가들이 문학 권력의 칭찬 일변도 평론들을 ‘주례사 비평’으로 비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문단의 ‘침묵의 카르텔’ 현상으로 인한 ‘주례사 비평’의 원인으로 출판업계 일각에서는 연줄에 의해 ‘끌어주고 밀어주는’ 식의 폐쇄적 인적 구조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국내 문학은 혈연, 학연 등 나름대로 인맥이 다 형성돼 있어서 전혀 연줄이 없는 사람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문학잡지가 작가들을 모이게 하고 문단의 중심이 되는데 그 잡지들의 기획위원, 편집위원들은 모두 인맥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비평이 힘들다. 그런 게 바로 문단 권력이라고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폐쇄적 한국 문단 권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뿐만 아니라 표절 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윤리 의식 및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이 표절의 한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창은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학 내에서는 변화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6~7년 전부터 학문윤리 교육이라든지 표절 예방 교육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표절에 대한 경각심이나 인식이 확산됐다”면서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표절 부분에 더 예민한 문학의 영역에서는 거기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 놓쳤고 결국 현재와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 표출되게 됐다. 문단 지체 현상이 발생된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표절 사태를 계기로 폐쇄적 등단 제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 ‘신춘문예’라는 등단 제도를 가진 언론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도 나오고 있다. 정문순 평론가는 이에 대해 “문단 권력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 더 큰 힘은 언론 권력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는 작가의 생명줄 즉 등단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부 기자의 기사 한 줄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기에 출판사로서도 굽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동연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표절 근절을 위한 폐쇄적 문단 권력의 대안에 대해 “전반적으로 문학의 장에 새로운 흐름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새로운 문학 생산 주체, 출판 주체, 독자 주체를 만들어야한다. 창비나 문학동네의 양강 구도를 깰 수 있는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생성하는 대안 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