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한 발언을 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 끝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6·25 국무회의 발언 후 김무성 대표는 ‘왔다갔다’ 행보를 이어갔다. 청와대와의 충돌을 비켜가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도 놓지 않는 어정쩡한 자세로 일관하면서 비판론자들로부터 “우물쭈물하는 이 모습이 김무성의 실체”라는 얘기도 들어야 했다. 친박계로부터는 “유승민 사퇴에 소극적”이란 핀잔을 들어야 했고, 비박계로부턴 “청와대 눈치만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 그랬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을 유승민이 이길 수 없고, 유승민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사퇴시키는 것도 동료로서 못할 도리”라고 했다가, 유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국회 운영위원회를 청와대 입장을 고려해 연기시켰고, 그러다가도 김태호 최고위원의 연이은 ‘유승민 사퇴’ 발언에 화를 내며 최고위원회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를 두고 여권 관계자는 “본인이 스탠스를 정하지 못하니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중에도 여의도가 김무성만 바라보는 것에는 ‘반전의 묘수’를 어떻게든 만들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유승민 살리기’로 김 대표가 무게추를 옮긴 배경은 무엇일까. 친박계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의 건’이 부쳐지는 6일 본회의 직후 유 원내대표가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 ‘큰 여우’로 통하는 김 대표가 6일이 아닌 다른 날 ‘유승민의 결단’이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가 사정에 밝은 한 기관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무대’는 ‘유대’(유승민 원내대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전에서 같은 캠프에서 뛰었다. 이후부터 유대도 사석에선 ‘형님, 형님’ 한다. ‘승민이가 까칠하다’는 얘기를 곧잘 하는 무대는 유 원내대표가 누구에게 등 떠밀려 물러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고 있다. 유대 본인이 자율적으로 진퇴 여부를 결정할 것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시간을 충분히 벌어줄 것이다.”
김 대표 주변에서는 ‘유승민의 사퇴 디데이(D-day)’를 20일 전후로 점친다. 바로 7월 ‘추경 국회’가 마무리된 직후다. 유 원내대표로선 김영란법과 공무원연금 개혁, 그리고 추가경정예산이라는 세 고개를 넘긴 직후가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단 얘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유 원내대표가 거취에 관한 메시지를 알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상황이 변한 게 없다”는 유 원내대표의 일관된 답에는 “상황이 변하면 밝히겠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K-Y 연합군’의 반격은 공격이 아니다. 철저한 수비로 친박의 공세를 차단하는 ‘방어망 구축’이 전략이다. 앞으로 당 최고위원회의나 다른 공식석상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묻기는 어려워졌다. 2일 김 대표가 김태호 최고위원을 ‘묵사발’로 만들면서 던진 메시지도 ‘함구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가의 한쪽에서는 ‘K-Y 연합군’ 체제가 일시적으로 성립됐지만 언젠가는 김 대표가 유 원내대표를 내칠 것으로도 본다. 이번 ‘입단속’ 조치로 언론은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 한 의원은 “무대가 집안싸움이 번지지 않게 ‘모두 나에게 오라’는 메시지를 흘리며 자기 장사를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혼란 속에서도 김 대표가 본인의 정치적 이득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깨질 것 같았지만 일시적으로 다시 뭉친 ‘K-Y라인’은 현재 전략적 제휴 상태에 있는 차기 경쟁 관계다. 김 대표로서도 최고위원의 동반 사퇴에 따른 비상대책위 체제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 비대위는 당헌당규상 2인자인 원내대표가 이끌어가게 돼 본인이 집중조명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로 이어지더라도 재출마해 당선될 수 있을 정도로 여권에선 대세이지만 ‘호랑이 새끼’와 같은 유 원내대표가 이번 파동으로 끌어올린 인지도와 대중성이 그로선 위협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김 대표의 주변부에서는 이참에 박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하라고 건의했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 직전 김 대표에게 러브콜해 모종의 빚을 졌다면, 이번 기회에는 김 대표가 나서서 국회법 거부권 정국에서 탈출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라는 권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여권이 쪼개지지 않는 쪽으로 당의 화합을 이끌어낸다면 여권 내 어느 누구도 ‘무대’에게 도전할 수 없을 만큼 이번 사태는 얽히고설켜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이번 사태는 ‘다자구도’여서 해결의 실타래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박근혜, 김무성, 유승민, 그리고 친박계의 누군가가 만약 이 난국을 뚫는다면 무대는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이 정국의 수혜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유승민계의 한 의원은 “유 원내대표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절대권력이 자신을 콕 짚어 언급했는데 어느 누가 외롭고 괴롭지 않겠느냐”며 “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견제, 독점적 전제주의와 소통하는 의회주의의 싸움이 우리 정치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