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국회의 입법능력이 모자라서건, 정부의 국회 구워삶기가 통해서건, 현행 국회법 아래에서 정부의 시행령 제정은 국회와 정부 간에 큰 문제없이 운용돼 왔다.
현행 국회법의 시행령 관련 조항은 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시행령에 대해 국회는 그 내용을 정부에 ‘통보’할 수 있고, 정부는 통보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결과를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고, 이 조항에 의해 수정된 시행령이 60여 건이나 된다.
개정 국회법은 현행법의 ‘통고’를 ‘수정·변경 요구’로, ‘처리계획과 결과’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이라고 바꿨고, 대신 ‘지체 없이’를 삭제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야 절충을 통해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해서 정부에 보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진 못했다.
현행법과 개정안을 비교할 때 그렇고 그런 소리같이 들릴 뿐이다.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권에 강제성이 있느냐가 쟁점이겠으나 그것은 피차 해석하기 나름이다. 강제성이 없는데 무슨 위헌이냐는 여당 측의 주장은 개정했으나 개정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지체 없이’를 삭제했으니 정부가 마냥 깔아뭉개도 할 말이 없다. 결국 법 개정은 잘 굴러가는 자동차에 헛 브레이크를 밟은 꼴이다.
그런 법을 개정한 것은 세월호사건 특별법 시행령 때문이라고 한다. 야당은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 수사 서기관이 맡도록 시행령에 규정된 조사특위의 조사 1과장을 민간인으로 바꾸라고 ‘수정 변경’을 요구할 방침이다. 여당도 이 점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합의를 해 준 것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믿는 구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석수가 5분의 3을 넘지 못하면 여당 단독으로 어떤 법도 처리할 수 없게 돼 있는 국회선진화법 아래에서 야당 혼자 힘으로 세월호법 시행령 개정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국회법 개정은 시행령의 전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행령의 특정 내용을 겨냥한 것이라는 데서 지극히 편의적이다. 입법의 대 원칙인 보편타당성과도 거리가 멀다.
세월호법 시행령을 고칠 수는 없다 해도, 야당과 반정부 단체들에게 이 문제는 ‘수정 변경’을 고리 삼아 정부 여당에 대한 공세를 펴기에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내년은 총선의 해이고 이미 ‘416연대’라는 단체까지 등장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그런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대통령에게 악몽을 더 키운 협상결과를 들고 나온 유 대표에 대한 분노가 ‘위헌론’이란 이름의 다이너마이트로 폭발한 것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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