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안팎에서는 호남의 천정배-대구의 김부겸-수도권의 손학규(왼쪽부터 차례대로) 등 삼각편대가 10월 정계개편을 주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야권이 ‘천정배 조기 신당 추진설’로 본격적인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일단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속내는 복잡하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일반적 정치 수사에서부터 신당 창당을 뛰어넘는 ‘빅텐트론’까지, 한마디로 백가쟁명이다. 그만큼 ‘천정배 신당’의 위력은 강하다. 당 한 관계자는 “천정배 신당의 성공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문재인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신당설’로 당의 원심력이 강화되는 게 문제”라며 “차기 총·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신당’은 현재 최소 4개의 비노(비노무현) 그룹에서 진행되는 ‘분당 내지 신당’ 추진과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의 영향력은 호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실제 천 의원은 15대(1996년 총선)∼18대(2008년 총선)까지 안산(안산을과 안산단원갑 각각 두 번)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2012년 총선 땐 서울 송파을에서 46%로,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3.9%포인트(3919표) 차로 석패했다. ‘목포 수재’인 천 의원의 수도권 경쟁력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천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정풍 운동’의 핵심 축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야권의 승리 방정식인 ‘호남(지역)’과 ‘진보(노선)’ 구도를 선점한 셈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거부권 정국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제1야당에 대한 반작용이 천정배 신당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7월 들어 ‘천정배 신당’의 밑그림은 한층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애초 ‘천정배 신당’은 호남 신당으로 치환됐다. ‘뉴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국한됐다. ‘새로운’이라는 수사를 붙였지만, 정치판에서 한물간 동교동계나 차기 공천에서 낙천될 제1야당 호남 인사들의 이삭줍기 정도로 여겨졌다. 친노의 약한 고리인 호남에서 신당 창당의 돛을 띄워 ‘야권 갈라치기’에 나서는 역할론이다. 친노 일부 인사들이 천정배 신당에 대해 “분열의 원흉이 될 것”이라고 극언을 퍼부은 이유였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난 ‘천정배 신당’의 결은 호남에 국한되지 않았다. 동교동계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천 의원은 4·29 재보선 이후 측근들에게 신진 인사를 주축으로 한 ‘무소속 연대’의 추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뉴 DJ’의 핵심이다. 개혁적인 젊은 인사를 기반으로 신당 창당에 나서 제1야당과 ‘호남의 적자’를 가리자는 선전포고였다. 천 의원은 이와 관련해 “광주가 바뀌면 호남이 바뀌고 호남이 바뀌면 야당이 바뀌고 야당이 바뀌면 나라가 바뀐다”고 말했다.
비노 움직임도 빨라졌다. 정대철 상임고문이 중심에 섰다. 정 고문은 지난달 19일 천 의원을 비롯해 문학진·이철 전 의원과 4시간가량 ‘냉면 회동’을 했다. 천 의원은 이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이 문재인호에서 관철되지 못할 경우 야권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 의원 측 관계자는 냉면 회동과 관련해 “정 고문과 만난 것은 맞다”면서도 “신당 얘기 등이 오갔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고문은 같은 달 29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김상현·이용희 상임고문과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등 새정치연합 원로 4명과 함께 만찬 회동을 하고 신당 창당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당초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동교동 좌장 권노갑 상임고문은 불참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들은 조만간 ‘산장 회동’을 통해 대대적인 세 규합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고문이 지난 5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2세 정치인들과 회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천정배 신당’의 윤곽은 더욱 뚜렷해졌다. 이 자리에는 DJ의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과 YS(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 사실상 구태 정치인에 불과한 동교동계 원로 인사들이 ‘천정배 신당’의 뉴 DJ 플랜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정 고문을 비롯해 김상현 상임고문 등 한물간 정치인들로 전국적 바람은커녕 호남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다. 이에 비노계 한 관계자는 “정 고문 등 당 원로 인사들의 의중은 총선 등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라 야권발 정계개편을 통해 비정상적인 친노 패권주의를 혁파하고 DJ의 유훈인 정치개혁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라며 “천정배 신당이 창당할 경우 이들은 전진배치가 아니라 최후방에서 수비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을 필두로 한 젊은 그룹들이 ‘뉴 DJ’ 플랜의 역할을 맡고, 원로들이 밑에서 조직력을 뒷받침하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야권 맹주인 ‘김부겸-손학규’와 ‘김홍업-김현철’ 등이 합세한다면, 협력적 경쟁관계의 원조 격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화학적 결합의 결정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안 전 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이 가세할 경우 단숨에 문재인호를 넘어설 수 있는 인적 기반을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정치연합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다. 당 중진인 이석현 국회 부의장은 공개적으로 “(계파 갈등으로) 위중한 상황에서 문 대표가 당의 화합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인 설훈 의원은 “5명이 아니라 50명이더라도 (신당 창당은) 안 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친노그룹 관계자는 “천정배 신당의 성공 가능성이 있겠느냐. 4월 재보선에서 승리한 천 의원이 지금은 어느 정도 힘을 받는 상황이지만, 신당 창당이 현실화되면 곧 ‘야권의 계륵’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교동계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던졌다. “천정배 신당의 성공 가능성은 전적으로 문재인호의 혁신 강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김상곤 혁신위의 안이 ‘빈손 혁신’으로 끝난다면, 천정배 신당의 창당 속도에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의미다. 천 의원 측은 내달 초 실무를 책임질 40~50대 주축의 참모그룹을 꾸릴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배 신당’의 8월 신당설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