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일요신문>과 만난 일산경찰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13년 9월, 윤 씨는 피해자 강 아무개 소령(35)의 절친한 후배 이 아무개 대위(33)의 전화번호를 이용해 카카오톡 친구등록을 했다.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이 대위와 친분을 쌓은 뒤 ‘먹잇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 대위가 카카오스토리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면 장교급 군인들이 댓글을 달았다. 경찰은 “예를 들어 10명 정도 댓글을 달면, 윤 씨는 파도타기로 다른 군인의 카카오스토리로 들어가 ‘누구시죠?’라고 해서 관심을 유발했다”고 밝혔다. 강 소령 역시 댓글을 달았고 윤 씨는 ‘파도타기’를 통해 관심을 드러냈다. 이 대위는 ‘존경하는 선배’ 강 소령에게 윤 씨를 소개시켜줬다.
윤 씨는 강 소령에게 나이를 완전히 속였다. 자신을 미혼 여성으로, 45세인 나이를 열세 살이나 낮춰 “오빠”라고 부르며 강 소령을 따랐다. 강 소령은 점차 ‘여동생처럼’ 윤 씨를 살뜰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경찰은 “우리 경찰들도 의아해 했다. 열에 일곱은 윤 씨가 40대로 보였는데 또 세 명은 아니란다. 키는 작았지만 예쁘장한 스타일이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동거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서로 집을 왕래할 정도로 애틋했다고 한다.
윤 씨는 신분 역시 숨겼다. 그녀는 강 소령에게 재력가의 딸이자 유명 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위장했다. 부친은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고 백부는 현역 육군 장교인 ‘군인집안’임을 과시했다. 또 현재 커피숍 두 개를 운영 중이며 일산의 고급 단독주택을 자신의 집으로 소개했다.
실상은 전혀 달랐다. 윤 씨는 이혼 경험이 있었고 별다른 직업도 없는 신용 불량자 신세였다. 고급주택은커녕 보증금이 없는 월세 60만 원짜리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다. 당연히 커피숍도 운영하지 않았다.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좋은 집이 있으면 “이게 내 집이다”, “이 커피숍 내 거다”라는 식이었다. 윤 씨는 점점 대담해졌다. 강 소령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내 임신을 했다고 알렸다. 물론 가짜였다.
이처럼 관계가 깊어가면서 윤 씨는 본색을 드러냈다. 강 소령에게 커피숍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수시로 2000만여 원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강 소령이 윤 씨에게 건넨 돈은 17차례에 걸쳐 총 1억 2788만 원에 달했다. 강 소령은 전 재산을 ‘탈탈’ 털었다. 윤 씨를 위해 10년여 군 생활 동안 모아 둔 돈과 카드대금 5000만 원을 마련했다. 친누나에게 부탁해 수천만 원을 윤 씨 손에 쥐어주었다. 경찰은 “서로 데이트하면서 먹고 마신 것을 뺀 거라 피해액은 훨씬 더 많다. 강 소령이 윤 씨를 많이 좋아했다고 봐야 한다. 강 소령 입장에선 순애보도 그런 순애보가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윤 씨는 그 피 같은 돈을 변호사 비용과 합의금으로 썼다. 사실 그녀는 강 소령과 만나기 전, 고 아무개 육군 중령(45)을 같은 수법으로 속여 재판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즉 전 남자친구 고 중령은 윤 씨의 정체를 알고 강 소령과 만나고 있는 그녀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이를 숨긴 윤 씨가 현재 남자친구 강 소령에게 커피숍 핑계를 대며 도움을 구한 것이다. 윤 씨는 강 씨의 돈으로 고 중령에게 합의금을 지불했고 나머지는 변호사 비용과 개인 생활비, 명품 구입을 위해 써버렸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밖에 없다. 윤 씨의 범행은 강 소령의 친누나가 군인가족 모임에 참석, 고 중령 부인과 만나면서 발각됐다. 당시 고 중령 부인은 윤 씨 일로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강 소령의 누나가 그 모임에서 고 중령 부인에게 “얼굴이 좀 안 좋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하자 고 중령 부인은 남편 얘기를 했다. 강 소령의 누나도 “우리 동생도 여자 하나 만나고 있다”고 털어놓는 순간 두 사람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이 사진을 확인하며 윤 씨의 정체가 드러났다.
강 소령은 극도의 배신감을 느껴 윤 씨를 경찰서에 사기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윤 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리 사랑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속인 사실만 몰랐다면 오빠가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지 않았겠느냐”며 “사랑한 죄밖에 없다. 재판도 하지 않았는데 사기범 취급하는 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피해자는 앞의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윤 씨는 이미 사기 전과 5범, ‘군 장교 전문 꽃뱀’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도중에 기무사와 육군본부에서도 연락이 왔다. 장교가 자꾸 이름이 오르내리니 재발방지 차원에서 그런 것 같다”며 “경찰이 이 사건을 자세히 공개하는 이유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다행히 이번 사건 수사단계에서는 강 소령 이외에 다른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꽃뱀 윤씨 ‘유혹의 기술’ ‘어머, 문자 잘못 보냈네’ 넘어가면 끝장! 윤 아무개 씨 사기행각의 시작은 2008년. 당시 윤 씨의 남편은 경찰 간부였다. 윤 씨는 남편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경찰 간부로 위장해 여러 군인들을 만났다. 한 지역신문에 따르면, 윤 씨는 육군 모 부대 A 상사에게 계좌이체 방식으로 20여 차례 걸쳐 5000만여 원을 뜯어냈다. B 대위는 윤 씨에게 휴대전화를 사주고 한 달치 통화요금 21만 원을 대납했다. 또 다른 부대 C 대위는 결혼하자는 윤 씨의 말에 부모에게 윤 씨를 소개시키고 300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선물했다. 소령, 중령, 상사, 대위 등 계급을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사기를 쳤던 셈이다. 수법도 비슷했다. 군 간부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무작위로 골라 “당직근무를 했는데 피곤하다”는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를 걸어오는 군 간부들에게는 “여경 간부인데 문자를 잘못 보낸 것 같다”며 특유의 어장관리 실력을 뽐냈다. 경찰은 모 부대 관사에서 당시 C 대위와 동거 중이던 윤 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윤 씨는 이 사건으로 법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윤 씨는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2010년 4월, 친목모임을 통해 대학교수 김 아무개 씨에게 접근했다. 이때도 윤 씨는 경찰간부 행세를 했고 김 씨와 결혼을 할 것처럼 속여 약 1억 2000만 원을 뜯어냈다. 같은 기간 유명병원 의사 행세도 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현역 육군 장교였다. 그녀는 결혼할 것처럼 속여 명품 가방 등 1000만여 원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 결국 지난 2012년 2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윤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