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일본은 가코 공주에 열광하고 있는지, 또 일본 왕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정도 함께 살폈다.
지난달 궁중 만찬에 데뷔한 가코 공주. 니테레 뉴스 캡처.
지난 6월 3일 밤. 일본을 국빈 방문한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을 위한 궁중만찬회가 도쿄 왕궁에서 열렸다. 그리고 관련 소식이 일제히 전파를 탔는데, 각 프로그램이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일왕의 손녀 가코 공주였다. 사실, 이날은 가코 공주가 처음으로 궁중만찬에 데뷔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필리핀 국민의 희생을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일왕의 연설이 함께 소개됐으나 역시나 화제의 중심은 단연 가코 공주였다. 방송은 만찬에서 공주의 행동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그녀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액세서리를 착용했는지 소소한 것까지 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렇듯 최근 일본에서는 가코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있다. 최신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인터넷에는 “청순하고 기품 있다” “아이돌 AKB48보다 귀엽다” 등 극찬의 말들이 쏟아진다. 왕실 가족 가운데 그녀에 대한 관심은 가히 압도적.
가코 공주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한 것은 언론만이 아니다. 가코 공주가 다니는 국제기독교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얼마 전, 망원카메라로 공주의 교내 모습을 포착하려다 발각된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을 파파라치로 부추기는 건 아이돌 사진을 매매하는 전문업체로, 가코 공주의 파파라치 컷을 고액에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이터/뉴시스
전후 70년. 툭 까놓고 말해 왕실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예전과 달리 부쩍 낮아졌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세금 먹는 왕실”이라는 논란도 심심치 않게 불거진다. 따라서 왕실 입장에서는 가코 공주의 높은 인기가 내심 반가운 눈치다. 이와 관련, 궁내청의 한 직원은 “젊은이들이 가코 공주를 통해 왕실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이토록 가코 공주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왕족답지 않은(?) 귀여운 외모다. 여기에 뛰어난 자기연출 능력도 인기의 비결로 꼽힌다. 알려진 대로 가코 공주는 피겨스케이팅이 특기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는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한 경력도 있다. 그만큼 어떤 표정과 포즈를 지어야 자신이 돋보이지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마이니치신문>은 “타고난 천진난만함이 가코 공주의 인기 비결”이라고 언급했다. 취미가 댄스라는 친근한 매력을 갖춤과 동시에 공무를 성실히 수행한다는 점 등이 젊은 층을 비롯해, 부모 세대를 아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인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면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는 사례가 많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30대 일본인 여성은 “결국 외모로 주목받고 있을 뿐이다. 언행을 통해서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길 바란다”면서 “가코 공주의 열풍은 좀 더 지켜볼 일”이라고 했다. 또 문화비평가 하마노 사토시 씨는 이렇게 평가했다. “왕실에서까지 아이돌이 탄생해 대중의 소비대상이 됐다. 가코 공주 열풍은 초창기 아이돌그룹 AKB48가 ‘평범한 옆집소녀’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 주간지 <주간신조>는 “머지않아 가코 공주가 일본 왕실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잡지에 따르면 “가코 공주의 인기는 중국에서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 예로 인터넷 판매사이트 타오바오에서는 3월 말 일본에서 발매된 가코 공주 사진집이 정가보다 5배나 높은 250위안(약 5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주간신조>는 “최근 얼어붙은 중·일 양국 분쟁의 뒤치다꺼리를 어쩌면 ‘미모의 공주’가 맡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일본 왕실의 ‘돈’ 사정 5인 가족 생활비 30억…남기면 손해? # 일왕도 세금을 낼까?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지방세인 도민세와 구민세를 내고 있다. 궁궐과 왕실 별장 등은 국유재산이기 때문에 고정 자산세를 따로 납부하지는 않는다. 또한 생활비(내정비)는 과세되지 않으므로 소득세는 없다. 다만 예금은 과세 대상이며, 주식매매로 얻은 이익과 배당금도 확정 신고를 해야 한다. 이들은 모두 내정주관 명의로 납부되고 있다. # 생활비는 얼마? 일왕 부부와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 및 외동딸 아이코 등 5명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것이 내정비로 2015년 책정된 예산은 3억 2400만 엔(약 30억 원)이다. 차남인 후미히토 왕자 가족의 경우 6710만 엔(약 6억 원)이 책정됐다. 이 가운데 가코 공주에게는 약 915만 엔(약 8400만 원)이 생활비로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재산은? 내정비 중에서 쓰고 남은 돈은 저축 등 자금 운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왕족이 은행이나 증권회사에 갈 일은 없다. 예금이나 주식 구입은 모두 궁내청의 왕실경제주관이 실시한다. 그 이유는 현재 법률에는 “모든 왕실 재산은 국가에 속한다. 모든 왕실 비용은 예산에 계상하며,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후 왕실의 재산은 국가 소유로 옮겨졌고, 그중 일부 거처지만이 왕실 재산으로 남았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