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복면검사>의 한 장면.
논란의 시작은 지난 6월 27일, 김선아가 자신의 SNS에 쓴 글로부터 빚어졌다. <복면검사>에서 경찰 강력반 반장 역을 맡고 주상욱, 엄기준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그는 이날 SNS을 통해 제작진을 향한 불만을 숨김없이 꺼냈다. 그는 <복면검사> 촬영장 모습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게재하고 “다른 촬영에 밀린 <복면검사> 팀. 한두 번이어야 화가 나지. 이젠 헛웃음만”이라고 썼다. 또 “아침부터 다들 똥개훈련 제대로 하네. 검도하다 다친 곳이나 치료하러 가야겠어. 웃으며 촬영하기에도 이젠 지쳐. 자꾸 이러면”이라고 덧붙였다. 바꿔 말하면 제작진의 미숙함으로 인해 드라마 촬영이 자주 지연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를 자신이 입는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순식간에 각종 온라인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여러 포털사이트를 장식했다. 드라마 주인공이 공개적으로 제작진을 향한 불만을 제기한 탓에 네티즌의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나 스태프 사이의 불만과 갈등은 간혹 있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공론화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단지 김선아의 불만제기로 그칠 수 있던 이번 문제는 이후 거짓말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복면검사> 제작진 가운데 일부가 “김선아는 글을 작성한 당일 정작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추가로 폭로했다. 일부 제작진이 따르면 김선아는 글을 쓴 날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SNS에 게재한 사진 역시 제3자가 촬영해 김선아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정작 촬영이 지연된 이유로 ‘김선아의 지각’을 지목하기도 했다. 추가 증언이 나오자 김선아는 SNS의 글을 삭제했지만 의혹과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논란이 가열되자 KBS는 “담당 책임프로듀서의 동의하에 김선아는 당일 촬영 대신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한 갈등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오해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웃고 넘길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복면검사>의 한 제작관계자는 “주인공들은 다른 연기자들과 달리 준비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김선아가 종종 촬영 시간에 늦은 것도 사실”이라며 “촬영 전반에 문제는 없었지만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서로 신뢰를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촬영 현장에서 빚어진 주연 배우와 제작진 간의 갈등은 외부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드문 일도 아니다. 2011년 KBS 2TV 드라마 <스파이 명월> 촬영 도중 돌연 현장을 이탈하고 미국으로 출국해 논란을 빚었던 한예슬 사건이 대표적이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얼마 전 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주인공 여배우 A가 느닷없이 촬영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유는 광고 촬영을 급히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진과 오래전부터 일정을 확정하고 준비를 해왔던 나머지 배우들은 A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A는 결국 드라마 대신 광고 촬영을 택했다. 이 드라마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A의 무리한 요청이 분명해 보였지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이나 스태프 누구도 공개적으로 그 점을 지적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다”며 “다들 A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맞추려고만 했다”고 전했다.
연기 경력에 비해 일찌감치 주인공으로 발탁된 한 신인 연기자의 경우 안하무인에 가까운 행동으로 선배 배우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장에 지각하는 건 물론이고 스태프 누구에게도 사과나 인사를 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는 A를 보다 못한 한 선배 연기자가 그를 불러 혼을 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력이 너무 나빠 사람들을 알아볼 수 없어 인사를 안했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30대 여배우는 드라마 촬영장에 갈 때마다 로드매니저를 시켜 상대역을 맡은 배우가 현장에 도착했는지를 먼저 체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대 배우보다 먼저 도착해 ‘대기’하는 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먼저 촬영장에 도착할 것 같은 상황이면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일부러 30~40분씩 지각을 한다.
드라마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갖는 특권의식을 강하게 표현하는 스타들이 종종 있다”며 “촬영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들과 다른 연기자들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맞춰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라고 짚었다.
물론 이런 행동은 모든 배우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스타파워’로 인해 촬영 현장의 잡음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지적은 설득력이 크다.
최근 방송한 한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으로 활약한 배우 B가 절대적인 자신의 인기와 영향력을 앞세워 종종 월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관계자들에게 씁쓸함을 안겼다. B는 연출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제안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고집까지 부려, 결국 이야기의 흐름과 극의 분위기를 자기중심으로 바꿔놓기까지 했다.
이 드라마와 관련된 관계자는 “이제 연출자에까지 자신이 원하는 걸 주문하는 배우들이 생겨난 셈”이라며 “단지 시청률뿐 아니라 드라마 PPL, 수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