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금천경찰서 측이 밝힌 입장입니다. ‘연기 도중에 벌어진 성추행 사건’, 다소 이례적인 이번 사건은 역시나 관련 배우가 누가냐에 세간의 집중됐습니다. 그렇지만 경찰은 단호하게 해당 배우의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어떤 영화인지에 대해서도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피해자의 인권 때문이며, 또 피의자의 인권 때문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선 검찰의 기소권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검찰이 기소를 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피의자는 무죄입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법원에서 유무죄를 판결하기 전까지 피의자가 무죄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검찰에서 기소할 경우 최소한 검찰은 피의자의 혐의가 입증됐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보도의 일반 원칙은 ‘유명인의 경우 검찰 기소가 이뤄지면 실명 보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뭐 요즘은 지나친 경쟁으로 이런 원칙이 다 깨져서 검찰이나 경찰 소환 조사만 받아도 기사화 되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만.
이번 사건은 조금 복잡합니다. 우선 연기 도중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A는 캐릭터와 상황에 몰입해 애드리브로 그런 연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추행 사건에선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한 만큼 법적으론 A가 불리한 상황이지만 연기라는 특수성을 인정받아 기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기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A는 더 이상 성추행 피의자가 아닙니다. 또한 검찰 기소가 이뤄졌지만 법원에서 무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기소가 이뤄지지 않거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A는 성추행이 아닌 몰입된 연기를 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A의 인적사항이 공개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피해자 B는 성추행 피해자지만 연기 도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노출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여배우는 비록 피해자일 지라도 성추행 사건에 휘말리는 게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배우 역시 성추행과 같은 피해를 입었을 경우 당연히 사법기관에 이를 신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인적사항이 공개되면 화제를 양산할 것이며 여배우들이 그런 상황을 꺼려 신고를 조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인적사항 미공개는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게다가 연기 도중에 벌어진 일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피해자임에도 논란에 휘말릴 위험성까지 존재합니다. 이런 까닭에 B는 더욱 더 인적사항이 공개되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검찰 기소는커녕 경찰 조사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략적이나마 그 주인공이 누군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공개가 돼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미 촬영 도중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영화까지 다 공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4일 금천경찰서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로소 영화 <사랑은 없다>에 대해 언급합니다. 다음이 그 내용입니다.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 중 여배우를 성추행한 배우는 김보성이 아니다. 다른 조연 배우다. 그 배우는 지금 조사받고 있다. 김보성과는 상관없다. 찌라시는 사실과 다르다.”
이 과정에서의 책임은 당연히 무책임한 정보를 남발하는 증권가 정보지(소위 찌라시라 불리는)에 있습니다. 김보성의 실명이 언급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은 그에게 집중됐습니다. 의리의 아이콘으로 요즘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김보성을 하루아침에 성추행범으로 만들어 버린 게 찌라시의 위용(?)이었습니다.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스틸 컷.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물론 완벽하게 틀린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된 영화에 김보성이 출연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편집증이 있는 남편이 새벽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아내를 폭행하는 장면’이라는 설명을 통해 문제의 주인공이 김보성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극중 김보성의 부인 역할은 여배우 정소영이 맡았는데 이번에 성추행으로 고소를 진행한 피해자는 정소영이 아입니다. 게다가 김보성의 역할은 편집증이 있는 남편으로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도 전혀 아닙니다.
따라서 조금만 따져 보면 김보성이 피의자가 아님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로로 해당 영화 제목과 피해자 이름 등을 파악한 찌라시 제조업자(내지는 찌라시 관련 정보원)가 그 영화 남자 주인공이 김보성이라는 점만 보고 잘못된 정보를 유통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김보성의 해명에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찌라시를 통해 불거진 소문에 대해 처음으로 해명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김보성은 “현재 조사 중인 사건이며 다른 배우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말하긴 조심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오해를 받은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로 인해 문제의 성추행 배우가 김보성은 아니며 문제의 연기를 하는 와중에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영화는 <사랑은 없다>임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요즘 김보성의 출연 영화가 그 영화뿐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김보성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언급도 하게 됩니다. “제작 환경이 열악해 개런티도 스태프를 위해 전액 기부했다. 감독이 내 친구라 멜로 영화지만 의리로 출연했다. 성추행으로 조사받는 배우는 그 사건으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폭행 남편을 혼내주는 역할이다. 의리로 출연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참담한 마음이다.”
똑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그 참담함을 100%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김보성은 개런티도 열악한 환경의 스태프에게 기부하며 친구인 감독을 위해 우정으로 출연한 배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의리의 사나이로 대중의 호감도가 높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성추행범이라는 소문을 접하며 얼마나 황당하고 또 참담하며 억울했겠습니까.
그렇지만 김보성 측의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영화 제목이 공식적으로 언급됐으며 연루 배우들의 캐릭터도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찰이 인권을 이유로 언급하지 않으려 했던 피해자의 이름까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김보성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지라도 오래지 않아 관련 정보가 조금씩 드러났을 것입니다. 엉뚱하게 김보성을 언급해 오류가 난 찌라시지만 이미 영화 제목과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이름이 언급돼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최초의 공식 언급이 김보성을 통해 이뤄진 부분은 다소 아쉽습니다. 그 역시 찌라시의 피해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문제삼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그가 의리의 아이콘인 김보성이기에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해당 찌라시 내용이 허위임을 밝히며 법적 대응 입장만 밝히는 선에서 김보성의 대응이 마무리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최초의 해명 인터뷰에서 밝힌 “현재 조사 중인 사건이며 다른 배우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말하긴 조심스럽다”는 발언은 진정 의리의 아이콘답습니다. 여기서 그의 언급이 그치고 해당 영화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을 경우 김보성은 개인적으로 억울한 상황에서도 피해자와 피의자 신분이 된 동료 배우들과의 의리를 지킨 모습으로 기억됐을 것입니다. 평소 그의 모습을 알고 그가 진정한 의리의 사나이임을 알고 있기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인 셈이죠.
결국 이번 사안의 책임은 철저히 찌라시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김보성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까지 양산했습니다. 김보성 측은 해당 루머의 최초 유포자 검거를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하는 등 빠른 시일 내에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시영 동영상 루머’에 이은 찌라시들입니다. ‘이시영 동영상 루머’는 사실 무근의 4년 전 루머를 누군가 다시 유포한 것으로 말 그대로 사실무근의 악의적인 악성 루머입니다. 그리고 이번 김보성의 경우는 누군가 경찰 수사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이가 유포한 것인데 ‘사실무근’은 아니고 ‘사실에 기반을 뒀지만 오류를 범한’ 찌라시입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일 지라도 공개해서는 안 되는 수사 과정에서의 인적 사항을 유포한 것만으로도 엄한 처벌이 필요한 대상입니다.
이렇게 두 찌라시는 성향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피해자를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만큼은 경찰이 속 시원하게 두 사건 모두를 해결해 더 이상 찌라시로 연예인을 비롯한 괜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