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씨가 스승인 장 교수에게 폭행당한 증거 사진들. 오른쪽 맨 아래 사진은 아프리카 TV 화면 캡처로 장 교수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전 씨에 대한 폭행을 지시한 후 실시간 개인방송으로 가혹행위 장면을 확인했다. 사진제공=성남중원경찰서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그 곳이 지옥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2013년부터 장 교수는 전 씨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비호감’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전 씨는 모든 것이 아직 업무에 미숙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동료였던 김 아무개 씨(29)와 정 아무개 씨(여·26), 장 아무개 씨(24)도 전 씨의 업무실수를 들먹이며 폭행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업무미숙과 비호감 등을 핑계로 시작된 폭행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전 씨는 야구방망이로 폭행을 당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고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 씨는 병원에 폭행으로 인한 상처라는 것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고, 업무에 익숙해지면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존경하는 스승이었던 장 교수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전 씨의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신 아무개 상담사(여·40)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1월 병원 측에서 폭행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나 또한 전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많은 의문점이 들고 당황스러웠다”며 “전 씨와 장 교수의 관계는 일반 회사의 상하관계와는 달랐다.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한때는 존경하고 롤 모델로 삼았던 사람이라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단지 ‘다쳐서’라고만 말해 진단서를 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학대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전무한 상황 이었다”고 설명했다.
전 씨가 폭행으로 입원해 수술까지 받게 되고, 더 이상 물리적인 폭력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오자 학대는 점점 교묘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게 된다. 장 교수는 전 씨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퇴근을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전 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업무에 실수가 있었다는 이유로 2~3일간 잠을 재우지 않거나 굶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며 전 씨가 또 다시 업무를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폭력으로 되돌아 왔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전 씨가 가장 버티기 힘들었던 것은 호신용 스프레이였다. 가해자들은 이따금씩 전 씨의 손과 발을 결박하고, 입에 손걸레를 물린 다음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워 ‘미스트’라며 호신용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성남중원경찰서 수사과 지능팀 관계자는 “호신용 스프레이는 캡사이신보다 200~300% 이상 독한 겨자 농축액으로 만들어 진다. 이 때문에 전 씨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감이 심해졌다. 장 교수 몰래 정신과 상담도 받아보고, 그냥 죽어버릴까 옥상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심리상담사 신 씨는 “사람들은 ‘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면 정상이었던 사람도 자신만의 사고틀을 만들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며 “전 씨 같은 경우는 단시간이 아닌 장시간에 걸쳐 폭력에 노출됐고, 여러 명의 가해자가 동시에 전 씨를 비난했기 때문에 자신의 탓인 양 조금씩 그 상황에 익숙해진 것이다. 보통 면담을 하면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많이 보이는데, 전 씨는 그냥 위협에서 벗어나고만 싶어 했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 씨가 두려워한 것은 장 교수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명목으로 받아가 변호사의 공증까지 받은 1억 원 상당의 지급각서였다. 장 교수는 이를 빌미로 전 씨의 월급을 삭감하고, 낮에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켜 임금 상당부분을 편취했다. 사실상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는 각서였다.
이 같은 사실은 전 씨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한 동료의 제보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 씨는 동료의 도움으로 학대 정황이 담긴 증거를 수집하고, 용기를 내 신고를 할 수 있었다. 현재 전 씨는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있다.
뒤늦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은 전 씨 부모님도 전 씨와 함께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의 아버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선처나 합의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며 “그 일을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짧은 심경을 토로했다.
상담사 신 씨는 “최근 본 전 씨는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며 “처음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두렵다고 했던 전 씨가 차즘 주변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면서,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도 많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장 교수와 공범 등 4명에 대해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 중 여직원을 제외한 3명을 구속했다”며 “장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모 협의회 공금횡령과 3300만 원 상당의 정부출연금 편취 혐의는 추가로 기소해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