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사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수사본부 전경.
“아, 좀 들어가야 한다니까. 어머니가 핸드폰을 저기 놔두고 와서….”
지난 16일, <일요신문> 취재진이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 찾았을 당시 중년의 남성 A 씨는 재빠른 걸음으로 마을회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미 경찰이 사건 현장을 폴리스라인으로 통제하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다급해 보였다. 그는 살충제가 든 사이다를 마시고 중태에 빠진 민 아무개 씨(여·88)의 아들이었다.
“어제까지 의식이 없었는데 오늘 손발이 따뜻해졌어요. 눈 뜨려는 흉내를 내요.”
기자가 민 씨의 현재 상태를 묻자 A 씨는 이렇게 답했다. 사건 당일 그는 서울에서 어머니가 의식불명인 채 상주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뜻밖의 비보를 접했다고 한다. 그는 “병원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막 경기 일으켰다. 팔다리가 뛰더라고…. 되게 많이 놀랐다”며 “지금도 의식을 완전히 못 찾아 불안하긴 하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오후 3시경 민 씨를 포함해 할머니 6명은 마을회관에 모여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를 꺼내 마셨다. 일순간 할머니들은 거품을 토하며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용의자 박 씨는 집에서 마시고 왔다며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한 2시 50분쯤인가? 들에 가려고 나왔는데 119구급차가 한 분을 태워갔다고 하더라구…. 구급차 많이 왔죠. 환자 한 분에 하나씩, 여섯 대랑 하나 더 왔으니까 총 일곱 대였어요.”
마을 주민 B 씨는 긴박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할머니들은 의식 불명 상태로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B 씨는 마을회관 뒤편 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방금도 저기 한 할머니한테 갔다 왔다. 말도 못한다. 아들도 충격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사건 발생 이튿날, 김해의료원에 입원 중이었던 정 아무개 씨(여·86)가 사망했다. 지난 18일 새벽, 경북대 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라 아무개 씨(여·89)마저 사망했다. 사망자는 2명으로 늘었다. 신 아무개 씨(여·65)만 의식을 되찾아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 나머지 3명은 여전히 중태다.
지난 13일 저녁, 초복 잔치를 벌인 뒤 먹고 남은 사이다가 문제였다. 사이다에 맹독성 농약 성분이 들어가 있었던 것. 사건 당일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에 문의한 결과 사이다에서 소량의 살충제가 발견됐다. 2012년부터 판매가 금지된 무색무취의 원예용 제초제였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사이다 병마개는 다른 자양강장제 병뚜껑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누군가가 고의로 살충제를 사이다에 넣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날 초복 행사에 참여했다는 한 마을주민은 “여기 전부 과수원 한다. 살충제 필요하지. 살충제는 장터 가면 있다”며 “농촌 어느 가정에 다 가 봐도 농약 없는 집은 없다”고 전했다.
초기에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경찰에 따르면, 마을회관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CCTV는 없었다. 누가 마을회관에 출입했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유일하게 설치된 마을 입구의 CCTV를 분석했지만 범행을 의심할 만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자양강장제 병뚜껑에서도 6명의 할머니 외의 다른 사람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에 있던 다른 음료수 병에서도 농약 성분이 없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수사팀 24명을 포함해 총 42명의 경찰관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주민을 만나고 있다”며 “6명의 할머니를 두고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를 만한 원한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마을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가 높아 그런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실상은 달랐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 깊은 ‘원한관계’가 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A 씨는 마을 주민의 소행일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A 씨는 “외부인의 소행은 절대 아니다. 이 동네에 누가 들어오겠느냐”고 되물으며 “원한관계 때문이다. 100% 그럴 거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최근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자신에 대해 앙심을 품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한다.
A 씨는 “내가 서울에서 내려와 그 아줌마하고 싸울 정도였다. 사람이 열 받으면 한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돼서 살인을 결심할 수 있다”며 “지금 마을 사람들 일부는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원한 관계를 경찰에 가서 다 불 거다”라고 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경찰은 “이제 막 A 씨 얘기를 들었다. 지금 확인 중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오후 경찰은 결국 마을주민 박 아무개 씨(여·83)를 전격 체포했다. 앞서 언급했듯 박 씨는 마을회관에 모인 7명 중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경찰은 박 씨의 집 주변에서 병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을 발견했다. 병 속에는 살충제 성분이 남아 있었다. 경찰의 추가 조사 결과, 살충제가 남아있는 자양강장제 병에 찍힌 유효기간과 박 씨의 집에 보관된 같은 종류의 자양강장제 병들의 유효기간이 같았다. 경찰은 결국 18일 박 씨에 대해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과 ‘농약 사이다’는 무관하다며 범행을 강력 부인하고 있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과연 그가 한꺼번에 6명의 할머니들을 살해하려고 했던 범인이 맞을까.
앞서 A 씨가 언급한 ‘아줌마’의 정체가 박 씨인지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잔혹한 살인 사건의 진실은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경북 상주=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