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국제학교가 들어선 10층 건물. 이 학교는 건물내 수영장, 골프장 등 최고급 시설을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았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 국제학교는 이스라엘식 교육을 국내 최초로 내세우며 많은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지난해 3월 설립된 해당 학교는 유력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지난해에는 한 기관에서 주관한 ‘교육 브랜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학교의 이사진(현재 자문위원으로 변경)이다. 이사장으로는 박동순 초대 이스라엘 대사가 포진하고 있고, 이사진으로는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 후보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박정희 정부 시절 새마을 운동 기획자이자 농업 전문가인 류태영 전 건국대 부총장,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대표이사 등이 등재돼 있다. 이사진에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만큼 학부모들로부터 학교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잘나가는 학교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 시점은 올해 초다. 지난 3월 학교에 한 이사가 학교장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고소 명목은 ‘사기’였다. 해당 이사 B 씨(여·82)는 “학교장에게 ‘30억 원’을 빌려줬는데 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현재 이사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고소장에 따르면 학교장 A 씨는 B 씨에게 “국제학교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초기 투자비용은 ‘26억 원’이고 초기 투자비용을 제외한 예상 수익은 ‘29억 8000만 원’이다. 부동산을 은행에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고 나에게 빌려 주면 매월 이자 연 5%를 지급하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B 씨는 “이전에도 A 씨가 사업을 계속 함께 하자고 해서 여러 차례 거절한 적이 있다. 국제학교를 설립한다고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상당히 곤란했다. 그럼에도 결국 승낙한 배경은 A 씨가 이전에도 대학 총장으로 있는 등 교육자 출신이었고 교육 사업을 제대로 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라고 전했다.
B 씨는 자신의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A 씨에게 돈을 건넸다. 차용증에 따르면 학교 설립 두 달 전인 2014년 1월경에 23억 원을 빌려줬고, 4월에 2억 원, 6월에 1억 원, 7월에 4억 3000만 원 등 총 ‘30억 3000만 원’ 가량을 빌려줬다. 82세 고령인 B 씨의 재산은 오로지 땅 하나였다. B 씨는 “남편이 세상을 뜨기 전 전원주택 부지로 마련해 뒀던 땅에 대학이 들어서 값이 급상승했다. 이제 남은 여생은 조용히 신앙생활과 기부를 하면서 지내려고 했었다”라고 전했다.
전직 이사 B 씨가 학교장 A 씨를 상대로 30억 원을 사기당했다며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과 차용증들.
B 씨와 A 씨는 교회를 통해 처음 만났다고 한다. 대학 총장 출신인 A 씨는 목사이기도 하다. B 씨는 A 씨 교회의 신도였다. B 씨 입장에서는 한때 존경하던 목사님이 사기꾼이 된 셈이다.
돈을 빌린 후 지난해 2월부터 A 씨는 약속한 이자를 꼬박꼬박 갚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자 변제는 지난해 10월부터 뚝 끊겼다. B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약속한 이자를 전혀 못 받았고, 대출 이자는 매월 수천만 원씩 내가 직접 은행에 내고 있다. 땅이 공매에 넘어갈까봐 너무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차용증에 따르면 이자변제와는 별도로 원금 변제일은 아직 남은 상황이다. 지난해 7월에 작성한 차용증에 따르면 4억 3000만 원은 ‘조속한 시일’ 내에 변제하도록 적시돼 있다. 또 다른 차용증에는 2015년 8월 31일부터 5억 원씩 갚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B 씨는 “조속한 시일 내에 갚겠다는 4억 3000만 원은 받지도 못했고, 현재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남은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교 설립에 쓰겠다던 30억 원이 대체 어디에 쓰였는지도 알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학교장 A 씨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A 씨는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학교 사정이 어려워서 이자를 갚지 못한 것이지 절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B 씨에게도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B 씨가 아무래도 감정이 상해서 고소를 한 것 같다”라며 “오히려 B 씨가 나를 사기꾼으로 모는 등 내 명예가 훼손된 측면이 있다. 30억 원을 빼돌렸다고 하는데, 학교 설립에 온전히 썼다. 이것을 검찰에 그대로 소명했다”라고 주장했다. A 씨가 공개한 소명서에 따르면 개교 준비비로 9억 원, 인테리어비로 16억 3000만 원, 교사인건비 등 6억 3000만 원, 도서구입비 7500만 원 등에 비용을 썼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영수증 등) 세부 사항은 검찰에 모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A 씨의 해명에도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우선 A 씨의 주장대로 현재 학교의 상황은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다. B 씨의 고소와 더불어 현재 국제학교의 운영 상황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국제학교 복수의 전현직 관계자들은 “학교 선생들의 임금이 체불된 적이 부지기수이고, 관리비마저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심지어 학교 광고에 나온 여러 편의시설들도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의 한 관계자는 “광고로만 보면 최고의 국제학교지만 내부 사정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운동장, 수영장, 스포츠센터, 골프장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설 이용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아 학생들이 이용하다 쫓겨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해당 국제학교를 소개한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학교 규모만 1만 2000㎡(지상 10층)로 최신식 교육시설을 갖췄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해당 국제학교는 10층 건물에서 4~6층(강의실), 8층~10층(교사 숙소 및 학생 기숙사)만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건물의 소유주는 수도권의 한 대학 재단이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건물에 있는 여러 편의시설들은 기본적으로 대학 학생들이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국제학교에서 그렇게 홍보를 한다면 분명히 문제”라며 “그런 여러 문제들 때문에 대학 측에서도 골치가 아픈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러한 여러 잡음들에 대해 A 씨는 “시설 이용과 관련해서는 계약은 안됐지만 그때그때 이용료를 내고 사용이 가능하다. 아이들이 쫓겨났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며 “교사 월급은 어쩔 수 없이 밀렸다. 특히 교장의 경우 학교가 어려운 책임감을 가지라는 점에서 몇 달은 밀렸지만 결국 모두 지급을 했다. 아직 초반이기에 학교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여전히 학교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질타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해당 학교의 학비가 결코 싼 편이 아니다.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재정 상황이 탄탄한 걸로 알고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는데 막상 이런 일들이 닥치고 나니 황당함을 감출 수 없다. ‘당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로 해당 학교의 1년 등록금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선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 수는 8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학교는 “학교의 재정이 탄탄하다. 걱정마라”며 입학설명회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장이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한 데 이어 학교 운영 실태에 대해 여러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유력 이사들은 별다른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학교는 지난 1월 이사회의 명칭을 ‘자문위원회’로 변경했다. 애초에 이사회라는 게 없었다는 게 이사들의 설명이다. 한 이사는 “A 씨와의 사적인 친분으로 돕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걸어 놓은 것뿐이다. 고소 건이 어떤 일인지는 대략 안다. 고소인이 감정이 상한 듯싶다. 학교가 정상화되어야 학교장도 빚을 갚든 할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사는 “어떤 일인지 자세히 모르겠다. 이사도 아니고 그냥 자문 정도 해주는 자문위원이다. B 씨가 이자를 많이 달라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일 같다”라고 말했다. 학교장과 남다른 친분 관계를 쌓았다는 김용준 전 헌재소장(현 자문위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가장 불안에 떠는 것은 무엇보다 학부모들이다. 한 학부모는 “공교육을 떠나 새로운 교육에 대한 믿음으로 국제학교에 아이를 등록시켰는데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