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알티플라노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멕시코의 악명 높은 마약왕 ‘엘 차포’의 탈옥 사건으로 멕시코와 미국이 시끄럽다. 멕시코 최대 마약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인 호아킨 구스만(56)이 사라진 것은 지난 11일 밤 8시 52분. 멕시코 당국이 공개한 폐쇄회로 화면에 따르면 구스만은 탈옥 당일 밤 교도소 안의 샤워실 안으로 들어간 후 영영 자취를 감췄다. 조사 결과 샤워실 바닥에는 땅굴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고, 구스만은 이 땅굴을 통해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가 막힌 그의 탈옥 소식이 알려지자 교도소의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던 멕시코 정부는 체면을 구긴 상태. 더욱이 구스만의 탈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은 멕시코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1년 이미 한 차례 탈옥에 성공했던 구스만이 이번에는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패로 점철된 멕시코 관리들까지 탈옥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가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다시 잡히긴 할지에 온 멕시코와 미국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교도소 탈출사건을 수사 중인 관계자들이 12일(현지시각) 교도소에서 1마일가량 떨어진 건축현장에 뚫어놓은 땅굴의 출구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탈옥 사건을 가리켜 영화 <쇼생크 탈출>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영화 속 주인공과 달리 구스만은 직접 땅굴을 파지는 않았다. 세계 최고의 마약왕답게 그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멕시코 국경에 마약 운반용 땅굴을 파는 것으로 악명 높은 ‘시날로아’ 조직에 땅굴을 파는 전문가들이 두루 포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이런 탈출은 사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사람 하나 피신시키는 땅굴을 판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마약 조직 가운데 마약 운반 및 인신매매 용도의 땅굴을 가장 먼저 개발한 ‘시날로아’는 지금까지 미국 국경을 따라 여러 개의 땅굴을 파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발견된 땅굴만 70여 개 정도에 달하고 있을 정도다.
호아킨 구스만. AP/연합뉴스
실제 지난해 체포되기 5일 전에도 구스만은 저택의 욕조 아래에 파놓은 땅굴을 통해 도주한 바 있었다. 이 땅굴은 버튼을 누르면 욕조가 수직으로 세워지며 땅굴 입구가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며, 이 땅굴은 도심의 배수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스만이 이번에 탈주로로 이용한 땅굴 역시 놀랍도록 정교했다. 교도소 욕실 바닥의 탈출구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인 가로 세로 각 50㎝였으며, 입구에서 땅굴까지 10m의 통로는 사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정확히 욕실 바닥 아래에서 시작된 땅굴은 길이 1.5㎞, 높이 1.7m, 폭은 80㎝가량이었다. 그리고 이 땅굴은 교도소 인근의 한 목장 건물로 연결되어 있었고, 구스만은 이 목장의 출구로 나와 도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땅굴 천장에는 환풍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조명과 비상 산소탱크도 갖춰져 있었다. 바닥에는 레일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탈주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오토바이도 발견되었다. 이 땅굴은 지금까지 발견된 시날로아 조직의 땅굴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출구가 발견된 목장 건물은 겉에서 보면 공사 중인 건물처럼 보였기 때문에 주변의 의심을 전혀 사지 못했다. 이웃 주민들은 공사장이 산재해 있는 마을 특성상 주변에서 흔히 보는 그저 그런 건물로 생각했지 결코 이곳이 범죄에 악용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땅굴을 살핀 전문가들은 이 땅굴은 전문 장비를 동원해서 판 것이며, 적어도 1년 정도는 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처럼 정교한 땅굴을 완성하려면 보통 18개월에서 2년은 걸리지만 아무래도 두목을 구출해낸다는 목적으로 속도를 높였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에서부터 교도소 샤워실 바닥에 뚫린 땅굴로 들어가는 구스만, 지하로 내려가는 사다리, 땅굴 안에 설치된 레일과 수레를 끄는 소형 오토바이.
그렇다면 지난 1년간 이렇게 땅굴을 파는 동안 교도관들은 왜 그의 탈옥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주기적으로 레이더 장비를 이용해서 땅속을 점검하는 교도관들이 1.5㎞ 길이의 땅굴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샤워실 바닥의 구멍을 뚫는 데만 100dB~140dB 정도의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을 텐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는 땅굴의 정확한 위치로 미뤄 보건대 누군가 분명 교도소 설계도를 비롯한 보안 시설, 감시카메라 위치 등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곧 교도소 내 공모자가 있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의 ‘전설의 마약왕’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심복이었던 ‘뽀빠이’라는 조직원은 “그토록 삼엄한 경비의 교도소에 땅굴을 파고 탈옥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때문에 적어도 교도관들과 공모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만일 탈옥을 하려면 반드시 교도관을 매수해야 하는데 교도관들은 이미 구스만이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구스만에게서 5000만 달러(약 574억 원)는 받았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미 이민세관국 소속이었던 알론조 페나 역시 “이 땅굴은 누구 한 명이 삽이나 곡괭이로 판 것이 아니다. 아주 정교한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런 장비들이 교도소 안에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아무도 지하에서 땅굴을 파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니 말도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알레한드로 호페 전 멕시코 국가정보원 관리는 “구스만이 어떻게 탈옥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한 마디로 ‘부패’ 때문이다. 부패한 고위관리들이 연루되어 있지 않는 이상 경비가 삼엄한 교도소 지하에 그렇게 긴 터널을 뚫을 수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 탈옥 사건 후 교도소 근무자 가운데 32명 이상이 조사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교도소 소장을 비롯한 세 명의 관리가 해고됐다. 또한 구스만의 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에는 “개들(멕시코 정부를 일컫는 속어)은 돈을 위해 춤을 춘다. 내가 그 개들을 샀다”라는 글이 올라와 이런 의심을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스만의 탈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3년 과테말라에서 처음 체포됐던 구스만은 당시 살인 및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멕시코 중부 과달라하 인근의 ‘푸엔테 그란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1년, 세탁 차량에 몸을 숨긴 채 정문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갔던 그는 지난해 2월 멕시코 북서부 해변 리조트에서 다시 체포될 때까지 13년간 도피 생활을 했었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마치 탈옥수가 아닌 듯 호의호식했으며, 개인 비행기, SUV 방탄 차량 등을 타고 과테말라와 멕시코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를 섣불리 체포하거나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설령 신고한다고 해도 체포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가령 2009년 4월에는 듀랑고의 대주교가 구스만의 행적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색을 나갔던 육군 중장 두 명은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당시 시신 옆에는 “정부도 주교도 아무도 엘 차포를 건드릴 수 없다”라는 쪽지가 놓여 있었다.
부인 엠마 코로넬
그런가 하면 시날로아의 주도인 쿨리아칸의 한 레스토랑을 찾았던 구스만은 부하 조직원들을 시켜 당시 레스토랑 안에 있던 모든 손님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기도 했었다. 이유는 기습 공격의 불안감 없이 편안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식사를 마친 구스만은 손님들에게 다시 휴대전화를 돌려준 후 모든 사람들의 식대를 대신 계산해주고 조용히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 행각 끝에 그가 다시 체포됐던 것은 2014년 2월이었다. 멕시코 해변의 리조트에서 그를 체포한 멕시코 경찰은 당시 미국 내에서 마약 밀매, 돈세탁 등 35개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있는 구스만의 신병을 인도해줄 것을 요청한 미국 정부에게 “절대로 다시 탈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이를 거부했다. 멕시코 정부의 이런 결정은 사실 멕시코인들의 여론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체포 직후 실시됐던 한 여론조사에서 멕시코 사람들의 60%가 다시 탈옥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차라리 미국으로 송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응답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멕시코 정부가 내건 현상금은 6000만 페소(약 43억 원). 2012년 말 집권 후부터 ‘마약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야심차게 소탕 작전에 나섰던 페나 니에토 정부에게는 분명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멕시코 정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번에는 그를 체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구스만이 개인 경호부대를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데다 멕시코 정부 전반에 걸쳐 관리들을 매수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고향인 시날로아로 숨어 들어갔을 경우에는 체포가 더욱 더 어려울 전망이다. 미 마약단속국장을 지낸 마이크 비질은 “만일 구스만이 시날로아의 산악 지대로 들어갔다면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는 그를 다시는 잡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그를 ‘영웅’ 혹은 ‘로빈후드’로 추앙하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 그를 꽁꽁 숨겨준다면 체포 작전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약 거래로 번 돈을 고향 주민들에게 베풀면서 인심을 사고 있는 구스만이 부패한 경찰이나 정부 관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민심 때문이다. 지난해 그가 체포되자 고향 주민들이 나서서 그의 석방 시위를 벌였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탈옥 후 수상한 행적 대통령·배신자에 SNS로 협박 탈옥 후 그의 수상한 행적을 알리는 트위터 계정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의 이름으로 된 트위터 계정에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구스만이 탈옥 후 비행기 조종석에 앉은 사진이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의 트위터 계정에 올라왔다. 이 가운데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멕시코 이민자들을 가리켜 ‘강간범’ ‘범죄자’라고 막말을 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향한 협박글도 있었다. 가령 “당신이 계속 나를 열 받게 하면 당신이 한 말을 후회하게 만들겠어”라는 글이었다. 이어 멕시코 대통령을 향한 경고의 글도 올라왔다. “그리고 대통령 양반, 나를 불량배라고 부르지 마. 나는 당신처럼 비겁한 정치인들과 다르게 사람들한테 일자리를 주거든”이라는 글이 그것이었다. 배신자들에 대한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시날로아의 경쟁 조직인 제타스의 두목 ‘엘 차벨로’를 향해 “먼저 죽어야 할 것은 내가 감옥에서 죽길 바란 엘 차벨로다”라고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이 트위터 계정이 진짜 구스만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 과연 이 글이 구스만이 직접 올린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2012년 처음 개설된 이 계정에 올라온 글들 가운데는 구스만이 맞나 의심이 가는 글들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가령 저스틴 비버와 마일리 사이러스 사진을 올린 후 둘이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하면서 “완전 웃김”이라고 올린 글이 대표적이었다. 현재 이 계정의 팔로어는 38만 명을 넘어선 상태. 이 계정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멕시코 마약조직원들도 SNS를 많이 이용한다’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로 나뉘고 있다. 전 멕시코 국가정보원 소속이었던 알레한드로 호페는 “99.99999999% 구스만의 계정이 아니다”라고 장담했다. 만일 시날로아 조직의 것이 맞다고 할지라도 젊은 조직원들의 것이지, 결코 고위 간부들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가령 구스만의 젊은 두 아들인 이반이나 알프레도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운영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한편 탈옥 이틀 후에는 이반의 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에 의미심장한 구스만의 사진 몇 장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 속의 구스만은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면서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으며, 또 다른 사진 속에서는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진짜 탈옥 후에 촬영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사진 속의 구스만은 콧수염이 있고 머리도 길지만 교도소에서 마지막에 촬영한 사진 속의 구스만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았으며, 또한 머리를 완전히 밀어 버린 상태였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