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룸지노프 세계체스연맹 회장(가운데)은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나 바둑·체스·브리지 등 마인드 스포츠가 평창 동계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왼쪽 첫번째와 두번째는 이우현 대회조직위원장, 현인숙 대회장.
우리 마인드 스포츠 대회는 이번이 제3회째. 2013년 바둑, 체스에 e-스포츠를 포함시켜 출범했다. e-스포츠는 쉽게 말해 컴퓨터 게임. 2013년 대회 때는 컴퓨터 게임 프로 팀들이 최근 e-게임의 주종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LOL(League of Legends) 경기를 시연했다. 올해는 e-게임이 빠지고 대신 주산·암산이 들어왔다. 일단 반응이 좋다. 주산·암산은 한동안 잘 보이지 않았다가 근래 다시 떠오르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던 학원들도 하나둘 도로 생기고 있다. 하긴 그렇다. 주산·암산은 너무 친숙해서, 첨단 컴퓨터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치부되었던 것뿐이다. 주산·암산 교육의 관계자들이 “두뇌 계발에는, 그리고 마인드 스포츠 보급에는 사실 e-게임보다 주산·암산의 효과가 더 빠르고 직접적일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일리 있게 들린다. 이번 대회에서는 사람과 전자계산기가 속도와 정확성을 경쟁하는 장면도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이번 대회에 체스 쪽에서는 일룸지노프(Kyrsan Ilyumzhinov) FIDE(세계체스연맹) 회장이 방한, 체스 홍보를 위한 인터뷰를 갖는다. 일룸지노프 회장은 2010년까지, 러시아 남서부의 작은 나라, 연방 자치주 중에서는 유일하게 불교가 국교인 칼미크(Kalmykia)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일룸지노프 회장은 기상천외한 언행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이다. 30대 젊은 나이로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모든 양치기들에게 휴대폰과 미화 1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으로 화제를 모았었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 “나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 돌아왔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무려 5000만 달러를 들여 세계체스연맹 회관을 건설하고 세계체스연맹 회장이 되었다. 일룸지노프 회장은 대통령이 되기 전 소비에트 연방 의원으로 있을 때, 대통령 취임 후 등 지금까지 서너 차례 한국을 찾은 적이 있고, 몇 년 전에 왔을 때에는 “한국의 체스 보급을 위해, 원한다면 체스회관을 지어주겠다”고 통 큰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현재 IMSA(국제 마인드 스포츠 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체스 쪽에는, 지난 5월 북한도 세계체스연맹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룸지노프 회장의 이번 방한에서는 마인드 스포츠 평창 동계올림픽 진입, 체스 남·북 교류, 구체적으로는 ‘남북 청소년 체스대회’ 같은 것이 조심스럽게 논의되었다. 다음은 일룸지노프 회장이 16일 오후 프레스센터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나 평창 동계올림픽에 바둑과 체스와 브리지가 시범종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논의했다. 긍정적인 답을 들었다. IOC 회원들과 만나 의논하기로 했다. 세계체스연맹에는 186개국이 가입해 있다. 나는 회장으로서 이들에게도 협조를 구할 생각이다.
△청소년 마인드 스포츠 남북교류의 장소로는 판문점을 생각하고 있다. 판문점은 유엔이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반기문 사무총장에게도 미리 말을 내 놓았다. 그리고 7월 28일 북한에 가서 관계자를 만나 구체적으로 의논할 것이다. 체스연맹에 가입한 북한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체스를 보급하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아주 친근감을 느끼고 있어 더욱 그렇다. 체스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려는 한국의 청소년들, 유망주들이 러시아에 유학 오는 것을 환영한다. 온다면 전액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내년부터 실시하겠다.
큰 뉴스들이다. 바둑은 아시안게임에는 들어간 경험이 있으니 다음 목표는 올림픽인데, 아닌 게 아니라 올림픽에 들어간다면 여름철 올림픽보다는 겨울철 올림픽이 더 제격이다. 28일이면 이번 달이다. 북한이 과연 어떤 자세로 나올지 궁금하거니와 마인드 스포츠 관계자들은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이 두뇌 스포츠 혹은 마인드 스포츠의 이름 아래 이른바 동반 성장을 모색하는 것이 대세다. 특히 각각 동서양을 대표하는 보드게임인 바둑과 체스가 만난 것은 멋진 일이다. 남북교류에서도 이제는 바둑과 체스가 각개 약진할 것이 아니라 ‘마인드 스포츠’의 선린·경쟁 종목으로 함께 가는 것이 더 쉽고 바람직한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어쨌든 바둑계가 참조할 대목.
돌이켜보면 1980년대 중반, 재일동포 재력가를 중심으로 바둑 남북교류가 거론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이면서 일본기원 소속인 조치훈 9단이 일본 바둑을 평정하고 있던 때여서 분위기도 좋았고, 뭔가 무르익는 느낌이었는데, 결실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바둑계로서는 기회를 한 번 잃은 셈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