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미래부가 이러한 사안에 대해 예견하고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아 인사 논란을 불러왔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다.
출처=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물리학회 홈페이지 캡처.
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한국물리학회(물리학회)는 지난해 10월 7일 회원 투표를 통해 김승환 전 교수를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고, 미래부는 지난 4월 이를 승인했다. 당선자에 오르고 얼마 후 김 전 교수는 지난해 10월 10~20일 진행된 한국과학창의재단(창의재단) 이사장 공개모집에 지원했다. 김 전 교수는 미래부의 심사를 거쳐 지난해 10월 29일 창의재단 이사장직 임명 통보를 받았다.
김승환 전 교수가 창의재단 이사장과 물리학회 회장을 동시에 겸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창의재단은 미래부 산하 준정부기관이고 물리학회는 미래부 관할 학술단체로 사실상 ‘갑-을’ 관계에 놓여있다. 이에 매체는 학계 일각에서 이런 두 단체의 수장을 한 사람이 맡는다면 사업 추진과 예산 지원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준정부기관인 창의재단은 미래부 위임을 받아 과학분야 주요 기금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창의재단의 주요 사업으로는 과학 연구활동 지원, 한국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 연구 장려금 지급,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선정, 우수과학도서 인증 및 보급, 교육부 위탁 수학·과학 교과서 검정작업 등이 있다.
이밖에도 매년 국제과학올림피아드를 지원하는데, 국제물리올림피아드도 그 중 하나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의 경우 물리학회가 주관하고 창의재단이 예산을 지원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따라서 물리학회 회장이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지원을 받기 위해선 창의재단 이사장과 일종의 ‘갑-을’ 관계가 성립된다.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는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사업에 관한 예산지급 체결 협약서에 ‘김승환 창의재단 이사장’과 ‘김승환 물리학회장’이라는 동일인의 이름이 ‘갑’과 ‘을’ 관계로 동시에 기재되는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민법상 금하는 ‘쌍방대리’와 유사한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매체는 실제로 창의재단과 물리학회 측은 이런 논란을 피하고자 계약 주체를 김승환 전 교수가 아닌 제3자로 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규정상 불가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처럼 창의재단 이사장이 물리학회 회장을 겸임할 경우 자신이 속한 물리학회 사업에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래부가 승인한 김승환 전 교수 ‘1인 2수장’ 겸직 논란은 비단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있을 각종 과학관련 정책 수립, 예산 분배에서도 잡음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창의재단이 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물리학회는 과학계 여론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해 사안별로 협조와 견제를 반복했다. 그동안 정부의 사업이나 교육 방향이 학계 중론과 배치될 경우 통상 창의재단은 정부 쪽을, 학회는 학계 쪽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그중에서도 회원 수 1만 8000명의 국내 최대 규모 학회로 분류되는 물리학회는 정부에 과학계 입장을 대변하는 중추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두 조직을 이끄는 이가 동일인이란 데 문제가 있다는 제기가 나오는 것이다.
또한 창의재단은 교육부의 위임을 받아 수학과 과학 교과서의 검정도 맡고 있다. 과학 교과서는 물리·화학·생물·환경 등 과학 전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특정학회를 대변하는 물리학회 회장이 창의재단 이사장까지 맡아 일을 총괄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승환 전 교수 측은 “다양한 과학계와 과학교육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교과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매체에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산하 준공공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미래부도 김승환 전 교수의 겸임 논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부는 김 전 교수 겸직 승인에 대해 “창의재단은 국가기관이 아니다”며 “재단 이사장직 또한 국가 공무원이 아니라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창의재단은 엄연히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미래부로부터 제출받은 ‘소관 준정부기관 기관장 현황 및 선임절차’ 자료에는 창의재단이 미래부 산하 49개 기관 중 한 곳으로 등장한다.
또한 한국과학창의재단 정관에 따르면 창의재단 이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미래부 장관이 임명한다.
특히 ‘한국과학창의재단 규정’의 ‘공기업, 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창의재단 이사장 선정은 이사장 후보자가 갑을 관계, 계약 관계에 있는지 또는 있었는지, 자기 사업에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지, 그 밖에 기관의 특성 및 영위사업 등 이해관계 유무를 판단해 결정토록 규정하고 있다.
물리학회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부의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에 따르면 물리학회는 미래부의 승인 없이는 등기조차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미래부도 김승환 전 교수의 겸직 논란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언급했듯 김 전 교수는 지난해 10월 물리학회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통상 선출이 되면 임기 개시일인 1월 1일 무렵 미래부에 승인을 요청, 2월 초까지 승인이 마무리돼왔다. 그런데 김 전 교수의 경우 이례적으로 4월 중순이 돼서야 승인이 결정됐다.
매체에 따르면 익명을 요청한 물리학회 관계자가 “재단과 학회 겸직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미래부도 한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며 “승인 당시 미래부 측 관계자가 물리학회 집행부에 전화를 걸어와 분위기 파악을 하더니 뒤늦게 승인을 내줬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