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축구칼럼니스트, KS리서치 연구소장)
사연을 듣고 싶어 필자가 만나 본 심연희 선수는 유난히 희고 앳된 모습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짧은 머리, 선머슴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꾸미지 않은 마른 체격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중생 같은 외모였다.
심연희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남동생과 같이 학교 방과 후 축구교실에서 축구를 하다 여자 아이가 축구를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인근 초등학교 감독의 권유에 의해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신체조건은 왜소했지만 날쌔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인천 디자인고 3학년 때는 팀이 춘계연맹전 4강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다. 준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교 때 활약을 바탕으로 인천 디자인고 선수 4명이 강원도립대(2년제)에 진학하기로 했는데, 그 중 가장 비중이 높았던 1명이 갑자기 타 대학으로 진학하면서부터 나머지 3명의 선수가 불이익을 받기 시작했다.
감독은 3명의 선수를 단 한 번도 공식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생활 2년 동안 교체 선수 명단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심연희 선수는 그 때 가장 많이 후회하고, 진짜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WK리그에 드래프트를 신청했으나 대학시절 공식 경기 출장 기록이 전혀 없는 심연희 선수를 지명하는 구단은 없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2012년 테스트를 거쳐 힘들게 충남일화 천마 축구단에 입단할 수 있었다. 당시 최강팀이던 대교와의 경기에 후반 종료 직전 교체 투입되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이상윤 감독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받아 잘 풀리는 듯 했으나, 그 해 충남일화의 돌연 해체로 더는 WK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됐다.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3급 지도자 자격증과 1종 대형 면허를 취득, 경포여중 축구부 코치를 1년 동안 역임했다. 현재는 WK리그 모 구단의 유소년 팀 코치로 일을 하고 있다. 말이 유소년 팀 코치지, 명색이 WK리그 출신임에도 지급받는 급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같은 최저 임금 턱걸이 수준이었다.
이렇게 심연희 선수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축구 인생이 꼬이기도 했고, 좋은 팀에 입단했다가 팀이 해체되어 오갈 때가 없는 신세가 되는 등 어린 나이에 파란 만장한 축구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뒤에는 항상 아버지가 있었다. 청춘FC에 응모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인터넷에서 모집 사실을 알게 되어 딸에게 권유해 응모할 수 있었다.
심연희 선수를 뒷바라지한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자식 녀석 경기 보러 간다고 열심히 시간 내서 갔는데 아이의 모습을 경기장에서 찾아보기 힘들 때의 심정은 얼마나 비통했겠는가? 심장이 찢어지도록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대학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게 해놓고, 충남일화에 어렵게 입단해 골을 넣자,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데리고 있던 선수라고 자랑했다는 대학 감독의 행동에 어의가 없을 뿐이다.
물론 선수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남용이고 왜곡이며 일탈이다.
대학 졸업반이면 오히려 선수들의 취업을 위해 실력이 조금 뒤처지더라도 선발 출장시켜 어떻게든 좋은데 취업시키는 것이 감독의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처신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어린 선수를 ‘왕따’ 시키는 심리적 테러 행위였던 만큼, 이런 지도자는 축구계에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심연희 선수의 청춘FC 출연으로 축구계에서 반응이 온 것인지, 심연희 선수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현재 WK리그 모 구단에서 심연희 선수 영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WK리그 팀 입장에서는 전력 강화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청춘FC와 심연희 선수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을 활용해서 선수 마케팅적 효과를 더 노리는 것 같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사연 많은 심연희 선수에게 또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이미 월드컵에 출전했던 여자축구선수보다도 심연희 선수가 더 유명한 선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안정환 청춘FC 감독은 “선수 선별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욕”이라고 말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선수를 찾는 기준으로 어떤 힘든 시간과 어떤 역경을 어떻게 잘 이겨 나가는 선수를 눈여겨본다고 한다.
심연희 선수는 ‘하고자 하는 의욕’이 무엇보다 뛰어나며, 힘든 시간과 많은 역경을 훌륭하게 극복한 선수이다.
스포츠에는 건강한 감동이 존재한다. 절망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희망이 왔을 때 열정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일이라는 것을 이제 심연희 선수는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심연희 선수가 성공한 선수가 되어 WK리그 그라운드를 다시 밟을 수 있도록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 청춘FC의 취지는 실패한 선수들이 다시 프로 무대에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연희 선수가 청춘FC가 배출한 1호 선수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정훈(축구칼럼니스트, KS리서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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