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국내외 전·현직 대통령 및 여야 대선주자급 핵심 인사들과 정치적 인연 등을 담은 책 <누가 지도자인가>를 출간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지난 2011년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울분을 토하며 했던 이 발언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BBK 사건’을 담당했던 한 후보자를 질타했다. 이에 한 후보자가 “법대로 처리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면서 나온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박 전 원내대표는 헌정사상 여성 첫 원내대표가 됐다. 박 전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누가 지도자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에는 박 전 원내대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 기자 신분일 때와 입문하고 난 뒤 정치인으로 만난 우리나라 정치인 9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중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 중 눈에 띄는 부분을 짚어봤다.
#박근혜 대통령
이 문답을 두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버지에게 혜택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등을 돌리는 것을 보며 쌓인 ‘배신의 분노’를 삼키며 보냈을 지난 30여 년.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 세월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라고 물음을 던진다. 최근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두고 ‘배신의 정치’라고 분노했던 장면이 새삼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을 계기로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정윤회 씨에 관한 일화도 볼 수 있다. 지난 2001년 박 전 원내대표에게 당시 박근혜 의원이 인터뷰를 하겠다며 전화를 걸어온 인물이 의원실에서 ‘실장’으로 통하던 정 씨였다. 또한 인터뷰 중 파문을 일으킬 만한 발언 내용을 두고 정 씨가 박 대통령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귀엣말을 계속했다고 한다. 박 전 원내대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소곤소곤 보고하는 정 실장, 난감한 표정의 박근혜 의원의 모습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다”며 “곱상한 외모의 정윤회 실장은 차분한 말과 행동으로 박근혜 의원을 ‘아주 세밀하게’ 보좌하고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지금도 정윤회 실장의 이야기가 청와대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면 박 전 원내대표가 목격했던 그 ‘귀엣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 2004년 여름 박 전 원내대표가 처음 만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 대한 첫 인상은 “그의 첫인상은 진심을 말하면 받아줄 것 같은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 성격에 무척 선해보이는’ 그런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박 전 원내대표는 그 후 문 대표의 부드러운 외모에 가려진 냉정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선대본부장을 맡은 박 전 원내대표는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이명박 정권이 제기한 ‘NLL’ 이슈에 대해 발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설령 이것이 내게 불리할지라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명예를 지켜야 하고, 그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박 전 원내대표는 당시의 모습을 두고 문 대표다운 반응이었으나 절박한 대선후보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원내대표가 결국 원내대표직을 던지는 결정적 이유였던 이상돈 교수와 얽힌 일화도 있다. 처음 박 전 원내대표가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 비대위원장 영입을 위해 노력했고 이상돈 교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교수를 두고 문 대표도 처음에는 박 대통령을 만든 사람을 영입한다는데 당의 자존심 문제가 걸리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렇게 해볼 필요도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얼마 뒤 이 교수 카드가 언론에 알려졌고 몇몇 의원들의 결사반대 목소리로 박 전 원내대표는 결국 직을 던지게 된다.
박 전 원내대표는 “그로부터 약 1년 후 지난 6월 그렇게 절대 안 된다던 그 의원들이 이 교수를 초청하여 답을 찾겠다는 토론회를 열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내 진보성향 초·재선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는 이 교수를 초청해 ‘2017년 정권교체와 미래진보의 길찾기’를 테마로 기획해 ‘한국 정치 쇄신의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통령 취임 직전 맺어진 박 전 원내대표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만남은 2007년 5월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바닥인데다 일부 의원들이 탈당을 결행해 신당창당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박 전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탈당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일부는 당을 박차고 나가 바깥에 신당을 조직하고, 일부는 남아서 당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며 정동영 전 의장을 ‘당에 남아서 당을 깨려고 공작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박 전 원내대표가그날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장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느낀 것은 당시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인물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한계론을 폈기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운찬 총장은 몸을 던지지 않는다. 그래서는 대선주자가 될 수 없다. 고건 총리는 애초부터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 이어 김근태 전 의장, 천정배 의원, 유시민 전 장관을 언급하면서 의외다 싶을 정도로 낮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당부를 전해들은 정 전 의장은 “대통령이 깊은 곳에 있어서 바깥세상 얘기를 잘 못 듣는 거 같네”라고 짧은 한 마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열린우리당 첫 당의장인 정 전 의장은 “야권 대통합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당을 떠났다.
박 전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의 표정이 ‘너무도 외로워 보였다’고 회고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