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검찰 안팎에선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대검찰청 건물 합성.
이에 대해 한 검찰 내부 인사는 “안으로는 예전 같지 않은 검찰의 수사 역량과 보안 유지의 어려움이 있고, 밖으로는 언론의 취재 경쟁이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이 기업 수사를 시작한 의도가 순수하지 못했던 게 이런 상황을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 후 수사 기간 장기화
검찰이 특정 기업에 대해 3개월 이상 공개적으로 수사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압수수색 등 공개수사로 돌린 후에는 길어도 1~2개월 안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포스코의 경우 거의 5개월째 수사가 진행되면서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검찰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검찰도 당초엔 6월 말쯤에는 최소한 포스코건설 비자금 수사를 끝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정점인 정동화 전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막판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23일 정 전 부회장이 검찰에 재소환 되기까지 두 달여 동안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의 추가 혐의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이 기각되니까 여러 곳에서 제보가 들어와 도덕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있는 혐의 두어 가지를 추가로 수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문제는 이 또한 별건 수사로 오해받을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경남기업 수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성 전 회장도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이)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제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 해봐도 없으니까 또 1조 원 분식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은 경남기업의 자원외교 비리는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수사를 끝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된 후 검찰의 특별수사 역량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며 “그러다보니 거악 척결은 둘째 치고 당초 계획했던 수사의 본질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사실 지난 2013년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예상됐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특수부를 한 개 더 늘려 특수4부까지 뒀지만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하던 것만큼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례로 대검 중수부가 했던 ‘파이시티 사건’의 경우 공개수사 한 달 만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 정부 핵심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김진태 총장 말대로 “정밀한 내사를 통해 환부만 도려내고 신속하게 수사”한 셈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처음 내사에 들어갈 때는 거물들이 그렇게 걸려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내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면서 점점 그림이 그려졌고, 사건의 핵심 인사를 대검으로 소환하는 과정에서 거물들의 이름이 하나둘 거론되며 결국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최재경 중수부장을 비롯해 특별수사에 잔뼈가 굵은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따라서 대검 중수부의 수사 역량에 보안까지 철저하게 유지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성과를 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대검 중수부가 해체되면서 중수부의 특별수사 역량 또한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며 “중수부에서 경험을 쌓은 검사들이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역량들을 결집시켜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데다 특수수사의 전문성 또한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안 유지는 힘들고 취재 경쟁은 뜨겁고
검찰이 캐비닛에 들어 있던 포스코와 자원외교 비리 사건을 수사하게 된 배경은 청와대의 하명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으로 대대적인 사정 수사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검찰은 자원외교 비리 사건에 대한 공개수사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3월 18일 한 언론에서 경남기업이 자원외교 수사의 첫 타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검찰은 다음날에 급하게 경남기업을 압수수색 하면서 울며 겨자 먹듯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 언론에 보도된 KT&G나 대한체육회 비리 의혹의 경우에도 검찰이 캐비닛에서 잠자던 사건을 끄집어내자마자 수사 기밀이 언론에 흘러갔다.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공개수사로 전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보도되면 결국엔 수사가 너무 어려워진다. 이미 압수수색에 대비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며 “우선은 검찰 내부의 보안유지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언론의 취재 경쟁이 심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두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노코멘트 하겠다”는 등의 방법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검찰은 포스코나 경남기업 수사 과정에선 내부 직원들에게 보안유지 각서를 쓰게 하는 것은 물론 기밀 유출자를 색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간부를 비롯해 수사팀 전원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조회하는 일도 있었다.
검찰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언론 입장에서도 당장 수사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 그걸 어떻게 묵혀두겠나. 결국엔 수사 기밀 유출 문제는 내부에서 문제를 찾아야지 외부를 탓할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