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학계가 떠들썩하다. 지난 7월 16일, 개그맨 마타요시 나오키(35)가 쓴 소설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상은 신인이나 무명작가에게 수여하는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순수문학상의 최고봉’이라 불린다.
못 웃기던 개그맨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은 마타요시 나오키. 블로그 사진 캡처.
연예인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 더욱 놀라운 것은 마타요시가 상을 받은 작품 <불꽃>이 그의 소설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즉, 생애 첫 소설로 최고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는 얘기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야말로 일본 문학사에 남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불꽃>은 현재 발행부수 누계가 124만 부를 돌파, 소위 ‘초대박’이 나면서 일본 전역에 ‘마타요시 신드롬’이 불고 있다. ‘못 웃기는’ 개그맨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기까지, 인생역전의 신화를 들어본다.
사실 마타요시 나오키는 그저 그런 개그맨 중 한 명이었다. 워낙 말발과 순발력이 좋은 개그맨들 사이에서 역설적일 만큼 과묵한 타입. 간혹 입을 열면 지나친 자기반성으로 인해 “눈치만 보는 소심한 개그맨”이라고 동료들의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못 말리는 독서광’이라는 것. 지금까지 그가 읽은 책은 2000권 이상에 달하며, 틈만 나면 헌책방으로 달려가 문학서를 탐독하곤 했다. 얼마나 많이 드나들었던지, 오죽하면 도쿄의 헌책방 거리 진보초에서 뽑은 ‘단골손님 10인방’에 이름이 올랐을 정도다. 게다가 소설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별나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다자이의 책을 100번 넘게 읽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이기도 했지만, 그가 독서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도 한몫했다. 2003년 개그 콤비 ‘피스’를 결성해 연예계에 데뷔한 마타요시는 무명시절이 꽤나 길었다. 유난히 배가 고팠던 어느 날에는 길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줍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닐 정도로 그는 매우 가난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타요시는 “오사카에서 상경한 후 10년 가까이 생활고에 시달렸다. 코미디로 밥을 먹지 못해 괴로울 땐 책을 읽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회고했다. 당시 그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왜 인기를 얻지 못할까’ 등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독서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납득할 때까지 죽을 각오로 임하자’였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인생의 가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 뿐 주위의 평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원 없이 개그에 시간을 투자해보자’는 다짐도 했다. 아이디어수첩을 항상 들고 다니며 만담 소재를 적었고, 밤에는 각본까지 집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에 몰두하자 변화가 찾아왔다. 2010년 ‘기대되는 개그맨’ 앙케트 결과 1위를 차지한 것. 이때쯤이었다. ‘반드시 성공한 사람만이 주역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타다’는 생각이 그에게 확고히 자리 잡았다.
개그만큼이나 좋아했던 소설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나도 써보고 싶다’는 꿈은 자연스레 품게 됐다. 본격적인 집필기간은 3개월. 400자 원고지 230장을 뚝딱 채웠다. 그렇게 마타요시가 세상에 처음 선보인 중편소설이 바로 <불꽃>이었다. 이 소설은 올해 1월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불꽃>이 실린 문예지 <문학계>는 1933년 창간 이래 처음으로 증쇄에 들어갔으며, 3월에 나온 단행본 역시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불꽃>은 무명 개그맨 도쿠나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배 가미야 사이의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 재회를 담고 있다. 마타요시 본인의 자전적 요소가 가미된 청춘소설로 ‘연예계’라는 가혹한 경쟁사회에 빗대어 보편적인 젊은이들의 방황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장에는 ‘잘난 체’가 들어있지 않고, 소재가 소재인 만큼 웃음의 포인트도 곳곳에 숨어 있다. 평단에서는 “순수문학 작품으로서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오락적인 요소까지 잘 갖추고 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데뷔작이 이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 이에 대해, 와세다 대학의 이치카와 마코토 교수는 “처음엔 개그맨이 발표한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화제성이 컸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확실히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단순히 “연예인이 쓴 것치고는 잘 썼다”가 아니라 “이렇게까지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불꽃>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이 결정되자, 열도 전역에는 ‘마타요시 신드롬’이 불어 닥쳤다. 대부분의 서점들은 별도로 <불꽃>을 비치하는 코너를 만들었고 <불꽃>의 영화화도 본격 논의 중이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재팬의 경우 수상 발표 직후 주문이 폭주하면서 약 2시간 만에 전량이 매진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경매 사이트에서는 마타요시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이 1만 5000엔(약 14만 원)에 거래되는 등 통상 가격보다 10배 이상 폭등했다.
일약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마타요시. 열풍과 함께 궁금한 것은 앞으로 그가 벌어드릴 수익이다. 출판계가 불황에 신음하는 상황에서 나타난 그는 마치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 관계자에 따르면 “신인작가 소설이 발행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 적어도 마타요시에게 7억 원은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마타요시의 한 달 방송 출연료는 약 180만 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영화로 만들어질 경우 판권 역시 수억 원에 이를 것이라 하니, 마타요시는 그야말로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벼락 작가가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며 실력을 쌓아온 준비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인은 “마타요시가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쓰지만, 3년 전까지는 핸드폰으로 ‘따각따각’ 문장을 만들곤 했다. 문학계에서 엄지손가락에 건초염이 생긴 건 그가 처음이지 싶다”고 전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아쿠타가와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