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티샷. 2013년 11월 미즈노 클래식 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펜실베이니아 하이랜드 메도우스 골프클럽(파71, 6512야드)에서 열린 마라톤 클래식 최종 4라운드. 최운정은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기록하는 플레이로 5타를 줄여 최종합계 14언더파 270타로 장하나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LPGA투어 데뷔 후 7년 만의 첫 승이다.
최운정이 7월 20일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 LPGA 데뷔 7년 만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제공=볼빅골프단
“최 프로는 5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 대회에 나갔어요. 초등학교에 골프연습장이 있었고, 그 덕분에 학교에서 골프를 배울 수 있었죠. 첫 대회에 출전해선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 정도 됐나 봐요. 당시 아버지가 대회 현장에 가서 딸이 라운딩하는 걸 지켜보셨는데, 마지막 홀을 돌고 나면 학부모들이 그 앞에 기다렸다가 학생들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심지어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 프로에게 골프를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거죠. 이런 골프 문화 속에선 최 프로가 인성적으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고, 강하게 골프하는 걸 만류하셨는데 최 프로가 골프가 재미있다며 조금만 더 해보고 영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때 그만두겠다고 졸랐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 딸의 골프를 반대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경찰공무원의 연봉으로 골프 뒷바라지를 한다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최지연 씨는 차마 딸한테는 ‘돈 때문’이란 이유를 대지 못하고 학부모들의 과열된 골프 문화에 대한 불만을 내세웠지만, 아버지의 속사정을 모르는 어린 딸은 무조건 골프를 하고 싶다고 졸랐던 것이다.
최운정은 고등학교 2학년인 2007년 7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골프를 배워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진출하기 위함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경제적인 부분은 아버지의 경찰공무원 퇴직금이 ‘희생양’이 됐다. 아버지 최지연 씨는 딸이 풍족한 환경에서 골프에만 전념하는 딸의 친구들(유소연, 최혜용)과 달리 월 270만 원이나 드는 레슨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레슨을 포기하고 거듭 성적이 떨어지는 딸을 보다 못해 자신의 근무지인 혜화경찰서에 휴직계를 내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휴직계가 결국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퇴직 처리가 됐지만, 최 씨한테는 퇴직금마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최운정의 부친 최지연 씨는 7년간 딸의 캐디백을 멨다. 사진제공=볼빅골프단
“아버님 말씀으로는 퇴직금의 원래 용도가 어머님 선물이었다고 해요. 경찰공무원 남편을 둔 아내의 고생과 희생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퇴직금만이라도 어머님께 모두 드리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해주려 하셨다는데, 딸이 계속 골프를 하고 싶어 하니 결국 그 돈을 딸에게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경찰공무원을 그만두면서까지 뛰어든 LPGA 도전이라 최 프로의 부담이 굉장히 컸을 겁니다. 실제로 그랬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최운정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이크 밴드 스윙 코치를 만나 3개월가량 집중 레슨을 받게 된다. 한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골프 천국’에서 최운정은 3개월 사이에 실력이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 해 LPGA 2부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3등으로 통과하고, 2008년 2부투어를 뛰다가 2008년 말 1부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한다.
2009시즌 루키 신분으로 맞이한 LPGA 1부투어는 2부투어와 또 달랐다. 데뷔 이후 첫 4개 대회에서 연속 컷 탈락 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데뷔 시즌 가장 좋은 성적은 시즌 최종전이었던 LPGA투어 챔피언십에서 거둔 공동 20위였다. 이후에도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했던 최운정은 2012년 6월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클래식 준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톱10’ 4회 등극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탈 수 있었다.
2013년 2월 볼빅 RACV 호주 여자 마스터스 대회에서 티샷하는 최운정. 사진제공=볼빅골프단
하지만 우승은 쉽지 않았다. 2013년 11월 미즈노 클래식, 2014년 2월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승은 없었지만 최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LPGA에서 연습량 많기로 소문난 ‘독종’답게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볼빅 골프단의 최종욱 대리는 “최 프로와 아버님은 고생을 많이 하셨음에도 정작 주위에 대한 불평불만이 거의 없었다”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선수 스스로 108배를 하고 참선하면서 정신수양을 하는 편이다. 여러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최 프로 가족들처럼 조용하고 내면을 돌보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운정이 라운드를 마칠 때마다 2시간씩 따로 남아서 연습을 하는 건 유명한 스토리다. 7년의 LPGA 투어 생활 중 경기 후 연습을 거른 건 이번 마라톤 클래식 우승 이후가 처음이라고.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바람에 연습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최 프로의 아버지가 골프백을 멘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어요. 캐디비를 아끼려다 보니 7년간 딸의 골프백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버님은 딸이 우승만 하면 최 프로를 독립시키겠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만 7년째 반복하고 계셨는데 이제야 그 바람을 이루게 되신 거예요. 브리티시오픈(7월 30일 개막)까지 아버지와 함께하고, 그 후에는 최 프로가 새 캐디를 구해 아버지 없이 투어 생활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7년간 20㎏이 넘는 골프백을 메고 딸과 동고동락했던 아버지 최지연 씨. 그는 곧 있을 ‘골프 대디’의 은퇴식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156전 157기를 이룬 딸의 우승 스토리가 기쁘고 감격스럽지만 앞으로 딸이 혼자 걸어가야 할 길이 더 험난하고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딸한테서 멀어지는 ‘은퇴’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아버지 최 씨는 볼빅 골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왔다.
“LPGA 무대는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우승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동안 딸에게 투어 프로로서의 직업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프로골퍼가 직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며, 직업으로서 프로골퍼를 사랑하라고 말해줬다. 운정이가 멋지게 홀로서기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골프대디로 산다는 것 ‘우승 못한 게 내 탓인가 싶어 미안해지고…’ “전문 캐디가 아니라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마다 아빠가 많이 미안해하고 힘들어 하셨다.” 박준철-박세리 부녀(왼쪽)과 안재형-안병훈 부자. 최운정이 LPGA 마라톤 클래식 우승 후 아버지 최지연 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낸 인터뷰 내용이다. ‘골프 대디’의 원조 격인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가 LPGA를 누빌 때만 해도 선수 옆에 아버지가 붙어 있는 건 당연시됐다. 이후 김미현, 박지은도 골프 대디와 함께 투어 생활을 했고, 박인비, 지은희, 신지애, 최나연 등 LPGA 우승자들의 옆에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아버지로부터 독립했다. 올해는 남자 선수의 골프 대디도 주목받았다. 지난 5월 유러피언골프투어 메이저급 BMW PGA 챔피언십 대회에서 안병훈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며 안병훈의 아버지 안재형 탁구대표팀 코치가 아들을 위해 뒷바라지했던 사연이 큰 관심을 모은 것. 지난 2005년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난 아들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자 안 코치는 대한항공 탁구단 감독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날아가 아들의 매니저, 운전기사, 캐디 등 1인 다역을 맡아 뒷바라지했다. 그러다 안재형 코치는 탁구대표팀 지도자 제안을 받고 아들을 혼자 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안 코치는 아들과 헤어진 데 대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병훈이가 유러피언골프투어 2부에서 생활할 때 비용을 아끼려고 내가 골프백을 메고 캐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들의 성장을 위해선 내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역량이 전문 캐디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운전기사, 호텔이나 비행기 예약, 스케줄 관리 등 매니저 역할이 다였다. 병훈이도 아버지가 캐디를 맡다 보니 골프에 집중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실수할까봐 더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귀국을 놓고 고민 중에 있다가 대한탁구협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차피 1부투어는 병훈이가 홀로서기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아들 옆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안병훈도 지난 6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탁구대표팀 코치로 돌아가며 자신의 곁을 떠난 데 대해 “아버지의 본업으로 돌아가신 게 오히려 더 마음이 편했다”라고 털어놨다. 아들로선 아버지가 자신의 직업을 내려놓고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 상황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고, 투어를 다니다 보면 종종 의견 대립을 벌이며 마찰을 빚었는데 막상 떨어져 지내니까 부자 관계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안재형 코치처럼 자신의 직업이 확실한 골프 대디는 예외이지만, 대부분은 딸한테서 ‘은퇴’ 후 적잖은 상실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일본 JLPGA에서 활동 중인 안선주의 아버지 안병길 씨는 딸을 일본으로 보낸 후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했지만, 안선주가 결혼하기 전까진 일본 매니저에게 모든 걸 일임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근거리에서 딸을 챙길 수 없었다. 안선주가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며 자연스레 은퇴 수순을 밟은 그는 한동안 딸을 직접 챙기지 못하는 데 대해 큰 상실감을 맛봐야만 했다.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 씨도 “지금은 딸한테서 은퇴했지만, 가끔 세리가 ‘아버지가 내 스윙 좀 봐줘야겠어요’라며 SOS를 치며 미국으로 와 달라고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골프 대디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설명했다. 딸이 골프 선수로 뛰는 한 자신이 어디에 있든 골프 대디의 역할은 저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식의 성적에 자신의 인생을 건 부모들. 이게 비단 골프 대디일 뿐일까. ‘야구 대디’, ‘축구 대디’ 등등, 셀 수도 없다. 부모의 헌식적인 뒷바라지는.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