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이 불가피해 보이는 가운데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간 후계전쟁이 치열하다. 양측이 실력으로 붙는다면 1차 대결의 전장은 롯데홀딩스가 분명하다. 하지만 복잡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와 아직도 베일에 싸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실력’을 감안할 때 롯데홀딩스만으로 승부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최대 주력사인 롯데쇼핑과 롯데제과에서도 양측의 지분은 대결구조를 이루고 있다. 승부가 치열해진다면 일본을 넘어 국내에서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상 가능한 양측의 표 대결 구도를 살펴봤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벌어진 무대인 도쿄 신주쿠구의 일본 롯데 본사 사옥에 7월 29일 오후 인근 건물이 반사돼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1전장, 롯데홀딩스=이번 분쟁의 첫 실력 대결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이다. 현재 이사회를 장악한 신동빈 회장 쪽에서는 신격호 이사의 해임을, 신동주 전 부회장 쪽에서는 신 회장 측 이사진의 해임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은 지난 7월 27일 이사회에서 면직됐지만, 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다. 이사해임은 주총 결정사항이다.
이사해임을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의 지분(주총 참석인원 기준, 발행주식수 기준 최소 3분의 1)이 필요하다. 즉 어느 쪽이 3분의 2 이상의 지분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다소 유리한 쪽은 신 회장이다.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하면 신 총괄회장이 이사직을 유지하게 되지만, 30% 이상만 지분을 갖고 있으면 신 전 부회장 측의 이사해임 결의를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신 전 부회장 쪽은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하면 신 회장이 장악한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정확히 외부에 공개된 게 없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각각 10%대 후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대주주는 광윤사(27.65%)라는 정도만 알려졌다.
두 형제는 서로 3분의 2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3분의 2 이상 가지려면 광윤사 지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광윤사 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때 이를 신 회장 등에게 나눠줬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90세를 넘어서까지 후계를 확정하지 않은 신 총괄회장이다. 어떤 형태로든 본인이 결정권을 쥐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관측했다.
한국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호텔롯데는 롯데홀딩스가 19.07%의 1대주주다. 그런데 일본주식회사L제1투자회사부터 일본주식회사L제12투자회사까지 12개 L회사가 지분 72.65%를 소유하고 있다. 단 일본주식회사L제3투자회사는 없다. 대신 일본 주식회사L광윤사가 5.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광윤사와 이른바 L투자회사들이 비슷한 성격의 지배구조를 가졌다고 본다면 신 총괄회장이 직접 L투자회사들을 지배한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이들 L투자회사들의 소유권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대기업의 주식 담당자는 “L투자회사들의 지분은 호텔롯데의 이사진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하다. 주식회사에서 70% 이상 지분을 가지면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과 관련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전경. 일요신문DB
이들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얽혀 있다. 따라서 절차가 번거로운 주주총회보다 이사회를 통해 이들 회사가 가진 의결권을 확보하는 게 효율적이고, 중요하다. 이사회 소집은 대표이사가 할 수 있으며, 이사회 결의에는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한국 롯데그룹은 신 회장이 오랜 기간 경영을 챙겨온 만큼 이사 등 경영진에 대한 장악력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모든 인사에 대한 최종 재가를 내려왔다는 점에서 신동빈 회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사진에 대한 회유 작전도 치열하게 전개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호텔롯데 이사회는 신격호 대표이사, 신동빈·신동주·신영자 이사 등 일가와 전문경영인 3인의 대표이사 등 7명이다. 전문경영인 3인이 중요하다.
한국후지필름은 롯데쇼핑이 최대주주인 롯데상사가 지배한다. 이사회는 전원 전문경영인이다.
롯데제과는 신 회장이 대표이사여서 사실상 이사회를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또 롯데제과 1대주주는 롯데알미늄인데, 신 전 부회장은 지난 6월 이 회사 이사직에서 퇴임했다. 또 롯데알미늄의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은 신 회장이 키운 회사다. 그의 영향권일 공산이 크다.
▶기관투자자·소액주주 변수도=롯데홀딩스, 호텔롯데, 롯데알미늄, 롯데물산 등은 모두 비상장이다. 따라서 가족 간 지분 대결이면 승부가 난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은 상장사다. 이들의 롯데 내부 지분율은 각각 70.12%, 51.42%, 52.86%, 45.95%에 달한다. 외부에서 경영권 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경우 과반이나 3분의 2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부 주주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가장 큰 손은 국민연금이다. 롯데쇼핑에서는 최근 5% 이하로 지분율이 떨어졌지만 롯데칠성음료 12.18%, 롯데케미칼 7.38%을 보유 중이다. 롯데제과에서는 7.99%를 가진 실체스터인터내셔널이라는 영국펀드가 있다.
주총 표 대결이 이뤄질 경우 지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주총만큼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뜨거운 위임장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위임장 대결이 벌어진다면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하고, 각종 인수합병(M&A)을 주도한 경험이 많은 신 회장 쪽에 좀 더 유리한 환경일 수는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