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제안으로 야권뿐만 아니라 친박계 내부도 뒤숭숭하다. 박은숙 기자
판은 커졌다. 오픈프라이머리 논쟁으로 물꼬를 튼 20대 총선 룰 전쟁은 ▲선거구 획정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의원 정수 증원 문제로 이어졌다. 하나같이 휘발성이 큰 사안들이다.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어디서 얼마만큼 폭발할지 가늠키 어렵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를 “디테일 싸움의 신호탄”으로 규정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방심한 사이 김 대표와 문 대표 둘 중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룰 전쟁 제1라운드 승자는 ‘무대’(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별명·김무성+대장 줄임말)”라고 덧붙였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김 대표의 승부수에 옴짝달싹 못 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 늪’에 빠졌다. 룰 전쟁의 제1라운드는 ‘꽃놀이패를 쥔 김무성’과 ‘룰 딜레마에 빠진 문재인’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선공을 날린 것은 김 대표였다. 그는 취임 1주년을 맞은 7월 13일 “야당에서 일부는 전략공천을 하고 나머지는 상향식 공천을 한다는데, 그렇게 해서는 국민이 바라는 공천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며 “여야가 같은 날 동시에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할 것을 야당에 다시 한 번 제안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사퇴한 지 5일 만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김 대표 측근은 이와 관련해 “내년 총선에서 상향식 공천제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공천개혁 등 정치혁신안을 선점하지 않고는 총선을 이길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것”이라며 “일단 룰 전쟁 전반전에서 김 대표가 선점효과를 누렸다”고 분석했다. ‘김무성 체제’로 치를 수밖에 없는 총선에서 ‘혁신’ 어젠다를 확보, 선거의 핵심 변수인 수도권·40대·중도층을 포섭하려는 전략적 행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는 얘기다.
더 구체적인 분석도 나왔다. 여권 한 관계자는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제안에 대해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배운 정치적 승부수”라고 평했다. 명분만 쌓이면 앞뒤 재지 않고 과감히 던지는, 상도동계 특유의 정치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체제의 시대정신이 상생과 통합의 어젠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대표가 ‘명분’(상향식 공천제) 싸움에서 비교우위를 점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와 함께 국회선진화법 개정 등을 내놓은 것을 놓고선 일종의 ‘무대식 이슈 파이팅’ 전략이라는 반응도 뒤따르고 있다.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제안으로 야권만 긴장한 것은 아니었다. 친박(친박근혜)계 내부도 뒤숭숭했다. 살아있는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개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가 제안한 오픈프라이머리가 국민담론으로 형성된다면 박 대통령의 총선 영향력은 일거에 싹이 잘린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복귀할 예정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도 ‘상향식 공천’ 앞에 무릎을 꿇지 말란 법이 없다. 김 대표로선 오픈프라이머리가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 경쟁에서도 명분과 실익을 모두 거머쥐는 ‘일거양득’인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오픈프라이머리의 여야 동시 제안’이 야권 갈라치기용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 친노(친노무현)계에 반발해 탈당한 박준영 전 전남지사와 ‘신당파’인 새정치연합 박주선 의원, 정대철 상임고문 등이 야권 외곽에 진지구축을 할 경우 제1야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오픈프라이머리 전선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김 대표의 승부수는 야권발 정계개편의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실시된다면 김 대표는 ‘개혁의 상징’으로 급부상한다. 반대로 무산되더라도 정치혁신 실패의 책임론에서는 자유로운 상황이 된다. 오픈프라이머리가 김 대표에게 ‘꽃놀이패’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는 김무성 대표의 승부수에 옴짝달싹 못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 늪에 빠졌다. 박은숙 기자
김상곤 혁신위도 문 대표를 거들었다. 정채웅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제안한 오픈프라이머리는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고착화시키기 위해 경쟁을 가장한 독과점 체제일 뿐”이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친노 진영이 우려하는 부분은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 이슈를 선점하면서 문 대표가 ‘반대세력’ 포지션으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국민 다수가 특정 계파의 공천 장사, 즉 ‘사천’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표가 ‘상향식 공천제’에 반대하는 이미지에 갇힐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범친노계 관계자는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제안하자 “허를 찔린 느낌”이라고 전했다. 야권 호재 이슈를 뺏긴 데 대한 극한 불안감이 당 내부를 엄습한 것이다.
친노 내부에선 ‘전략공천 20%’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반대하지는 않되 일종의 보완재인 ‘전략공천’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공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 여야 동시 실시’를 제안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훈인 ‘참여주권론’과 ‘시민주권론’의 조화를 꾀하려는 전략에 금이 간 것이다. 문 대표로선 선점당한 오픈프라이머리를 찬성할 수도, 무턱대고 반(反)개혁 세력에 서 있을 수도 없게 됐다. 야권 한 관계자는 “문 대표가 딜레마에 빠진 꼴”이라며 “존재감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당의 중심을 잡아줄 컨트롤타워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의원 정수 확대 등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자 문 대표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7월 27일 하루 동안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세비 절반 삭감을 전제로 비례대표 증원 및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찬반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를 한 결과, 응답자의 57.6%가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찬성 비율은 27.3%에 그쳤다.
야권에선 김상곤 혁신안 369명(246명+123명·단 세비동결)을 비롯해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안 390명(260명+130명), 심상정 정의당 대표 안 360명(240명+120명) 등 각종 안이 난무하고 있다. 문 대표도 한때 400명으로 증원을 주장한 바 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반개혁적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정치평론가는 “의원 정수 확대의 수혜자는 야권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안을 밀어붙일 동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2012년과 마찬가지로 일부 선거구 획정만 조정한 채 룰 싸움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꽃놀이패를 쥔 김 대표의 승리로 총선 룰 전쟁이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