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비즈니스에서 이룬 아메리칸 드림을 공직에서도 이뤄보겠다는 최초의 아메리칸 드리머(Dreamer)다. 그러나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상하원 의원이나 주지사, 시장, 군인 등의 공직을 거치든 변호사라도 해야 한다. 미국처럼 공직에 대한 신뢰가 큰 사회에서 공직 경험이 전무한 채 스캔들로 점철된 삶을 산 그의 대통령 도전은 흑인 대통령, 여성 대통령 되기보다 결코 쉽지 않다.
그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의 진원(震源)은 그의 거친 입이다. 그는 경쟁자에게 막말 공격을 예사로 한다. 인접국 멕시코의 이민자를 강간범 또는 마약과 범죄 관련자라고 한 발언은 히스패닉을 비롯한 이민자들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백인 보수층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 측면은 있지만 모욕적이고 인종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또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이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미쳤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 관계를 오인한 망발이다. 이처럼 사람과 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험한 말을 쏟아내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여긴다면 무모하다. 트럼프 발언 중에 대다수 미국인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바른말’도 있다. ‘미국에 부시와 클린턴 집안밖에 없나?’ ‘부자의 돈을 받아 부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기성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염증을 대변하는 발언이다.
힐러리가 꿈꾸는 것이 여성대통령이지만 그녀는 남편 클린턴 대통령의 후광으로 퍼스트레이디를 거쳐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한 뒤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두 번째 출마했다. 부시 후보는 아버지와 형이 누린 대통령직을 이어 받으려한다는 점에서 더 왕조적이다.
<타임>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처럼 힐러리와 부시의 대결은 ‘왕좌의 게임’이다. 권력세습 귀족정치는 아메리칸 드림의 반대어라는 측면에서 ‘미국에 두 집안밖에 없나’는 트럼프의 외침은 울림이 크다. 트럼프는 “내 재산이 110억 달러”라며 “남의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내 돈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했고, 미국인들은 ‘역시나!’로 반응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되더라도 민주당 후보와의 결선은 더 높은 산이다. 트럼프의 출마는 1992년 한국의 대선 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출마와 여러모로 닮았다.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으나 유권자들은 믿지 않았다. 카드 게임에서 으뜸패가 트럼프다. 트럼프의 트럼프가 막말이어서는 이기기 어렵다. 이제부턴 바른말을 많이 해야 한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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