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발행된 <뉴욕매거진> 커버사진. 35명의 피해여성 사진 옆에 아직 나서지 못한 피해여성을 상징하는 빈 의자가 놓여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코스비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결코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섹스를 하기 위해서 저녁을 사는 것’과 ‘같은 목적으로 약물을 먹이는 것’은 엄연히 같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신의 생각에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코스비는 “내 생각에 나는 로맨틱한 섹스와 관련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는 것 같다. 만일 여성들이 내 데이트 신청에 응했다면 그건 이미 섹스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재판은 콘스탄드가 코스비와 합의를 보면서 마무리 됐고, 이 사건은 금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아무도 브라운관 속의 ‘푸근한 아빠’가 성폭행범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10년 만에 성폭행 혐의가 다시 불거진 것은 한 편의 동영상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코미디언인 한니발 뷰레스가 코스비를 가리켜 ‘연쇄 강간범’이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이 동영상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곧 코스비가 성폭행범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피해 여성들이 하나둘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편 <뉴욕매거진>은 코스비가 60년대부터 꾸준히 주변 여성들을 성폭행했으면서도 들통이 나지 않았던 이유가 당시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바라보는 주변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보통 성폭행은 ‘낯선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지, 결코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년대와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점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성들에게 밤을 돌려달라’ ‘아니오는 아니오다’라는 성폭력 반대 운동이 일어나면서 점차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하지만 80~90%의 성폭행이 ‘아는 사람’을 통해 벌어진다는 사실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침묵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회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점차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피해 사실을 숨기기보다는 당당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성폭행에 대항하는 유일하고 강력한 무기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리고 여기에 SNS라는 나팔이 첨부되면서 이런 인식은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 피해 여성들은 용기를 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고백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둘 서로의 소식을 접하고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 코스비를 두둔했던 할리우드도 점차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조차도 “만일 누군가 여성 혹은 남성에게 동의 없이 약물을 제공한 후 성관계를 갖는다면, 그건 성폭행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