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이 7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해킹 프로그램 시연 및 악성코드 감염검사’에서 해킹되는 자신의 스마트 폰을 보여주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정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탈리아의 소프트웨어 업체 ‘해킹팀’에서 개발한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도·감청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의혹제기 과정에서 해킹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국정원 직원 임 아무개 과장이 자살하면서 더욱 의혹은 커지고 있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지난 7월 15일 안 위원장을 내세워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를 즉각 구성했다. 안 위원장이 컴퓨터 바이러스 전용백신을 만드는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을 지난 1995년에 세운 자타공인 ‘사이버보안 IT전문가’인 만큼 그의 역량에 기대를 모았다.
안 위원장은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구성 직후, 국회차원의 특위와 나아가 국정조사를 주장하는 등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국정원이 구입한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인 RCS(Remote Control System)의 사용내역 △해킹프로그램 구입 및 운영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사유 △대통령 또는 법원의 감청영장 개수 및 내역 △내부 감찰 보고서 등 국정원의 해킹의혹과 관련해 진상규명에 필요한 30가지 자료제출을 요구하며 국정원을 더욱 압박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로 인해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자, 안 위원장은 급기야 전현직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고발을 강행했다. 또한 그는 여당에서 국정원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안 위원장을 국회 정보위원회로 옮길 것으로 요구하자, 요청한 자료 제출을 ‘조건’으로 내걸며 국회 정보위 보임을 수용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국정원과 SK텔레콤에 요구한 자료 33건 제출 △진상규명에 최소 5명 이상 보안 등 전문가 참여 △전문가 로그분석 기간 1개월 이상 확보 등을 언급하며 “선결조건 3가지가 충족된다면 정보위에 들어가겠다. 필요하다면 주식 백지신탁도 할 것”이라고 강하게 국정원을 압박했다.
이에 국정원은 자료 제출 거부 ‘버티기’에 들어갔고, 여당 역시 ‘안보’를 내세우며 안 위원장의 국정원 자료 제출 요구를 ‘국가기밀을 유출하라는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결국 안 위원장과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의 자료 미제출로 인해 6일 여야 합의로 국정원을 상대로 한 전문가 기술 간담회를 ‘보이콧’한 상태다.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뚜렷한 증거자료나 정황이 나오지 않고 여론의 힘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안 위원장의 다음 스텝이 어정쩡해져 버렸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국정원 해킹 의혹이 문제인 건 맞지만 국정원이 자료를 내지 않으면 야당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를 제어할 수 없는 야당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서 안 위원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해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무기력’하게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위를 맡아서 처음에 해킹 시연도 하고 전문가들 불러놓고 기자회견도 연일 하면서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며 “국정원이 자료를 안내놓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뭐 하나 물고 늘어지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선주자로서 이미지에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안 의원실 측에서도 특위를 맡는 데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지도부가 요청을 하고 안 의원이 어쨌든 당내에서는 보안전문가이니까 이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겠나. 하지만 국정원을 상대로 한 의혹을 파헤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 역시 할 말은 있다. 현재 굵직한 정국이슈들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어 국정원 해킹의혹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도부 관계자는 “국정원이 자료를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특위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도부는 전체 정국현안을 신경써야하지 않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이나 노동개혁도 엄청난 이슈들인데 이런 거에 대한 대책이나 당의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국가 안보상 ‘기밀’이 들어있는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는 야당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찾아내는 패기를 원하는 당 밖 시선들 사이에서 새정치연합이나 안 위원장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기술간담회 참석 여부를 놓고 “자료를 안 받고 가는 경우, 자료를 안 받고 안 가는 경우. 둘 중에 어디로 가도 욕은 먹는다”고 털어놓은 신경민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간사의 고민이 이를 웅변한다.
이제 국정원 해킹의혹의 시선은 임 아무개 과장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다룰 10일 국회 안전행정위 현안보고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안행위가 임 과장의 자살사건을 수사한 경찰을 상대로 국정원의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할지, 여전히 국정원의 ‘철벽’에 가로막힐지 주목된다.
김종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