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고위 당정청회의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당청 지지도 동반상승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오른쪽은 황교안 국무총리, 왼쪽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 공동취재단
18대 국회 말미 박근혜 대통령(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랬듯 김무성 대표는 ‘대표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그 지위를 ‘유력 대권주자’로서 쓰고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 들여다보면 본인의 대권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대권행의 첫 카드는 ‘오픈프라이머리’로 보인다. 김 대표는 18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했고 19대 총선에서는 미리 기권하면서 공천을 받지 않았다. 18대엔 공천학살을 당했고, 19대엔 학살을 당할 바에야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천에 관한 한 김 대표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도 새누리당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는 명분이 있다. 자신같이 비참한 꼴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데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그런데 친박계는 이 오픈프라이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박 대통령 몫으로 공천을 확답 받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은데 불필요한 경쟁에 나서야 할 판으로 짜여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박 대통령의 친위대 친박은 그 프리미엄을 완전히 잃기도 했다.
그 와중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김무성의) 오픈프라이머리를 받을 테니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으라”며 김 대표에게 빅딜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논의는 해보겠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렇게 봤다.
“이 딜을 만지작거릴수록 친박계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명분이 너무 좋다. 국민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다. 그런데 친박계가 김 대표를 밀어내려 한다면 오픈프라이머리 탓으로 읽힐 것이고 친박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김 대표의 보루는 오픈프라이머리다.”
‘노동개혁’은 김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던진 두 번째 카드로 보인다. 알려진 바로는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내준 숙제지만 실제로는 김 대표가 스스로 풀겠다고 선언한 분야가 바로 노동이라 한다. 한 정보통은 “김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다음으로 노동개혁을 던지자 오히려 청와대가 ‘얼씨구나’ 했다고 한다. 박근혜표 성과가 없었는데 이번 노동개혁만 성공하면 공무원연금 개혁에 이어 ‘개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청와대가 판단한 것”이라며 “청와대 OOO 수석이 ‘아이고 형님 고맙습니다’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는 전언이 있다”고 전했다.
노동개혁이 성공하면 박 대통령 덕으로만 쌓일까. 요즘 김 대표는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석상에서 단 한 번도 이 노동개혁을 빼지 않는다. 자신의 치적으로 쌓으려는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사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달리 노동개혁은 국회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면서 “노동 관련 법안만 처리하면 된다. 나머지는 노사정위원회가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노동개혁은 김 대표에게 꽃놀이패라는 얘기가 도는 것이 이런 이유다.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법, 기간제법, 파견법 등 관련 법안은 당론으로 처리하면 된다. 본회의에서 통과가 되지 않으면 야당 탓이고 국회선진화법 탓이고, 통과되면 본인 덕이다. 앞서의 의원은 “김 대표가 왜 양대 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촉구하겠는가. 거기서 해결하라는 얘기”라며 “게다가 그 숙제를 이인제 최고위원(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에게 맡겼다. 성공한다면 김 대표의 용인술 또한 평가받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의 숙제는 노사정위 밖으로 나간 한국노총을 다시 불러들이고, 민주노총까지 가세하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대권 스케줄에 있었던 하나는 ‘방미’였다고 한다. 지난 수년간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 대표의 미국행은 거의 없었다. 미국 정부에서조차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가깝다는 말이 나왔다던 이때, 김 대표는 전격 ‘미국 순방’을 결정하고 수십 개 언론사를 대동하면서 그 어느 대표보다 많은 미국 정부 인사들을 만났다. 그리고 ‘큰절외교’의 구설에 올랐고, ‘좌파 집권을 막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다수가 외교에 서툰 김 대표의 실수로 해석했지만 정작 김 대표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전언이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김 대표가 ‘맹방’ 미국을 외치고, 보수적인 발언을 연일 이어가고,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앞에서 큰절을 한 이유는 딱 하나, 보수의 무기인 ‘안보’는 자신에게 맡겨보라는 의도였을 것”이라며 “실제 정통보수층은 김 대표의 방미 이후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김 대표는 방미 중 차기 주자로 타천에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조우했다. 수십분간의 독대 속에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만 믿는 이가 많지 않다. 정가 사정에 밝은 전직 원내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반 총장의 그릇이 얼마만한지 보려 했을 것이고, 반 총장은 김 대표가 차기로 어떤지 살폈을 시간이 됐을 것”이라며 “당 대표라는 자리를 통해 유력한 잠재적 주자의 면목을 서로 확인하고 온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아웃시킨 친박계는 요즘 김 대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대표의 ‘빅딜’ 제안이 있은 직후 청와대 정무특보이기도 한 친박계 윤상현 의원은 자신과 친한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리고 “오픈프라이머리는 공천방법이고 권역별 비례대표는 선거제도인데 뒤섞어 정치적 딜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라고 공세를 폈다. 같은 정무특보인 김재원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려면 조금 일찍 준비했었어야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라고 했다.
문 대표의 딜도 받지 말고 오픈프라이머리도 하지 말라는 것이 마치 대통령의 뜻이라고 피력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요즘 김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재벌개혁(롯데 파문)에는 입을 닫고 오로지 오픈프라이머리와 노동개혁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자기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무주공산에서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