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게 유키오 씨는 관광명소이자 자살명소인 도진보 절벽에서 11년간 한결같이 자살방지 활동을 벌여 왔다.
“혹시 말동무가 필요하진 않습니까?” 11년을 한결같이 도진보 절벽으로 출근해 자살방지 활동을 벌여온 남성이 있어 화제다. 올해 70세인 시게 유키오 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순찰하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곧바로 다가가 말을 건네고 안전한 곳으로 내려오게 한다. 이렇게 해서 시게 씨가 살린 사람은 무려 5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잠깐만 기다려! 아저씨’로 불리는 70대 남성의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한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몰이 보이는 곳에서 죽고 싶어 도진보 절벽을 찾았었죠.”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부모를 잃고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된 히로 씨는 ‘자살명소’로 유명한 도진보 절벽에 올라가,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남성이 “혹시 말동무가 필요하냐”며 말을 걸어왔다. 마치 여기에 온 이유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어느 순간 히로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놓기 시작했다. 차분히 듣고 있던 남성은 “내가 도와줄 테니 안심하시오”라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설움이 복받쳤는지, 안도감 때문인지 그 한마디에 히로 씨는 ‘왈칵’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것이 시게 유키오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절대 허울뿐인 위로가 아니었다. 시게 씨는 재정 상담 전문가를 소개해주고, 삶의 희망도 안겨주었다.
25m 높이의 아찔한 주상절리 돌기둥이 장관인 도진보 절벽. 하지만 이곳은 자살의 명소이기도 하다. 해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도진보에서 바다로 몸을 던진다. 시게 유키오 씨는 11년째 이곳에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그가 자비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정년퇴직을 앞둔 2003년 어느 날 절벽에서 우연히 만난 부부가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도진보 관할 경찰서 부서장이었던 시게 씨는 순찰 중 노부부와 만났다. 부부의 사연을 들어보니,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목숨을 끊으려고 도진보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시게 씨는 노부부를 간신히 설득해 시당국 복지과에 인계했다. 헤어질 때 재기를 약속했던 터라, 시게 씨는 막연히 ‘이제 별 탈 없겠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노부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일전에 목숨을 구해줘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관공서에 상담했지만 방법이 없었고 ‘자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두 사람의 유서였다. 수차례 행정기관 창구를 전전한 끝에 노부부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끝내 거짓말을 한 셈이 된 시게 씨는 “그때만큼 무력함을 통감한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노부부의 편지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먼저 퇴직금을 바탕으로 자살방지 활동을 시작했다. 신문광고를 냈으며, 자살 위험을 극복한 사람들의 작문을 모집했다. <마음을 울리는 문집>은 이렇게 탄생한 책이다.
도진보 절벽에 설치된 ‘구원의 전화’ 부스. 공중전화 옆에는 전화카드나 동전이 놓여 있어 죽음을 선택하려는 순간 누군가에게 상담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다. 시게 씨는 자살로부터 구한 사람들을 자립시키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서려면 수입이 필요하고, 사는 곳도 확보돼야 한다. 방 6개짜리 아파트를 빌려 그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물론 여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지역 관광협회에서 “도진보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맹렬히 반대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찬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원봉사자만 100명 가까이 된다. 더욱이 자살 미수자들의 재취업 알선을 해주고, 주거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나타났다. 11년간 시게 씨가 보호한 이들은 약 500명. 노력이 통했는지 최근 몇 년 동안 자살자의 수도 감소하는 추세다.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3만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특히 2008년 제조업체들이 파견 근로자들을 대량 해고하는 사태가 발생, 15만 명이 실직하면서 그 여파가 도진보 절벽에도 불어닥쳤다. 두 달 사이 15명이 절벽 아래로 투신해 숨졌고, 이 가운데 6명은 해고된 파견 직원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시게 씨는 NPO(비영리단체) 법인을 구성해 봉사자들과 함께 매일 도진보 절벽을 샅샅이 누볐다. 그는 “자살 금지 경고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사회적으로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자살 기도자를 살리기 위한 전국 네트워크 마련에도 애를 썼는데, 이러한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잠깐만 기다려! 아저씨’로 불리게 됐다. 그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잠깐만 기다리라”며 다가가기 때문이다.
또한 시게 씨의 이야기는 해외 언론에서도 관심이 높아 지금까지 15개국에서 취재를 해갔다. 올해 들어서는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 영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끝으로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시게 씨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라 옮겨 적는다.
“자살을 하려고 도진보 절벽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창한 날씨에 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죽으려고 왔어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줬으면…’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은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죽고 싶은 만큼 괴로운 것일 뿐입니다. 만약 당신 주변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리고 꼭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