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은 장남 정몽필 씨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에도 기인한다. 왼쪽부터 ‘왕자의 난’ 당시 정몽구, 정주영, 정몽헌 3부자.
정주영 명예회장 밑에서 현대건설 및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역임한 장우주 씨(2014년 별세)는 ‘왕회장’의 장남에 대한 기억을 밝힌 적이 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에 대해 너무나도 엄격했지만 이는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식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며 1977년 왕회장이 자신에게 들려준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장 사장, 여러 명의 자식 가운데 잘난 녀석이 있고, 못난 녀석이 있어. 내 유전자의 나쁜 면을 좀 많이 가진 녀석도 있고, 내 좋은 점만 가진 녀석은 똑똑하고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어느 녀석이 잘났든 못났든 내 책임 아니겠어.”
그러면서 정 명예회장은 장 사장에게 몽필 씨를 국제적인 전문경영인으로 양성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장 사장은 그러나 바쁜 업무 때문에 정 명예회장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멘토가 없었던 몽필 씨는 아버지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 때문에 한때 술에 의지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경영을 맡긴 동서산업이 부도 직전에 이르자 영국으로 도피해 사실상의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세영 씨와 상영 씨 등 삼촌들이 중간에 나서 어렵사리 그를 귀국시켰는데, 정 명예회장은 ‘돌아온 탕아’에게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경영을 맡기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그러나 몽필 씨는 경영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82년 4월 출장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뜨고 만다.
이후 현대그룹은 정 명예회장의 동생, 아들간 경영권 갈등이 지속적으로 벌어졌고, 결국 그룹이 소그룹으로 쪼개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장남인 몽필 씨가 살아있었다면 현대가의 후계구도 또한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장자상속은 한국의 뿌리 깊은 전통이다. 한 그룹 회장 비서실 임원은 “한국의 창업주들이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유난히 강한 데다 유교적 전통이 가세해 그동안 우리 재계에서 장자상속은 아무 이의 없이 받아들여져 온 게 사실”이라면서 “최근 장자상속의 예외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1995년을 전후해 재계는 경영권 승계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경영권 승계는 장자상속이 주를 이뤘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도 상당수 나왔다. 당시 장남이 아닌 나머지 아들들 가운데 하나가 후계자로 지목된 기업은 태평양그룹·대신그룹·한솔제지그룹·삼도그룹·대웅제약 등이었다. 이들 중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들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30대 그룹에 포함되거나 적어도 그 업종에서는 선두그룹에 속하는 중견기업들이었다. 대기업 회장 비서실 출신 전직 임원은 “당시 한국의 장자상속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은 예가 상당수 나와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장남이 후계자의 자리에서 떠밀리는 배경으로는 두 가지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장남이 후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맹희 씨는 무능하다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배제됐다.
19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에 참석한 장남 이맹희(오른쪽)와 차남 이건희(가운데). 이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차남 손에 맡겼다. 우먼센스 DB
이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본인의 희망도 듣고 본인의 자질과 분수에 맞춰 승계의 범위를 정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되어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며 “본인이 자청해서 물러났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맹희 씨는 이후 자청해서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법적 다툼을 통해 주장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솟구쳐 기분이 울적하면 안양골프장(현 안양베네스트 CC)을 찾아가 골프채로 유리창을 박살냈다는 일화도 있다. 그로서는 억울한 점이 없지 않겠지만 현재의 삼성그룹이 성장한 이면에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작용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창업주의 선택도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서경배
장남이 경영권을 승계받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장남 스스로 부친의 사업을 잇기를 거부한 채 독자적인 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다. 자연스럽게 장자상속의 원칙이 배제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양재봉 대신금융그룹 회장의 차남인 양회문 회장(2004년 별세)은 형의 독립으로 후계자가 된 대표적 기업인이다. 장남인 양회천 전 광주방송 회장이 금융에는 맞지 않는다며 자기 사업을 벌였다. 1980년 양재봉 회장이 대주주인 미원과 해태로부터 지분을 인수해 대신증권의 새주인이 되면서 양회문 회장이 후계자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장자승계는 여전히 재계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의외로 창업주로부터 대권을 물려받는 2세 사이에서 간택을 받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이는 회사를 키우기 위해 집안을 챙기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에 가족을 지켜야 하고, 또한 아버지를 도와 회사 일을 봐야 하면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등 친인척, 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슈퍼맨’에 버금가는 능력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압감을 이겨낸 장자들이 많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황태자이면서도 기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장남이 기업을 물려받는 것이나 다른 나머지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나 족벌경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의 정착이 아직까지는 요원한 것으로 보이는 재계 풍토에서 같은 아들이기는 하지만 능력이 가장 뛰어난 아들이 기업을 책임지는 것은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가치 있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