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가 사람들을 만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익숙하고, 안전한 카드를 고르던 지상파 관계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예능 환경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뉴 페이스’를 찾기 위한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백종원 효과’다.
최고 예능스타로 등극한 백종원. ‘백주부’라는 애칭을 얻으며 방송가를 종횡무진 중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잠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떠난 백종원의 빈자리를 메우는 인물 역시 의외의 얼굴이다. 1990년대 일명 ‘종이접기 아저씨’로 불리며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향수를 자극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포맷의 승리’를 넘어 ‘섭외의 승리’라 불리는 이유다.
이 외에도 이 프로그램은 마술사 이은결, 방송인 레이디제인 등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메인 패널 자리에 앉기 어려운 인물을 내세워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제작진은 이미 남다른 성교육으로 주목받았던 구성애 씨를 차기 주자로 선택하고 섭외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섭외의 힘이 프로그램의 절반을 차지하는 예능은 또 있다. MBC <일밤> ‘복면가왕’이 대표적이다. 정통파 가수부터 각종 편견에 발목 잡힌 아이돌, 가창력으로 평가받지 않는 배우나 예능인들이 한 무대에 서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프로그램은 그동안 없었다. ‘복면가왕’은 복면이라는 소재 하나를 가지고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초대 가왕을 지낸 에프엑스의 루나를 비롯해 비투비의 육성재, 틴탑의 천지, EXID 솔지, B1A4 산들 등이 ‘복면가왕’을 통해 가창력을 인정받았고 많은 연예인 패널과 시청자들이 그들이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커다란 선입견을 갖고 바라봤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화제의 중심에 선 후 ‘복면가왕’을 둘러싼 섭외 전쟁 또한 시작됐다. 노래깨나 한다는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줄을 대기 시작했고, 제작진은 스포일러를 극도로 경계하며 섭외를 위한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복면가왕’ 시청률 26.2%의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오른쪽은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
‘복면가왕’의 섭외는 어떤 프로그램보다 조용히 진행된다. 시청자들과 함께 가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 추리해가고, 그가 가면을 벗는 순간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출연진이 미리 알려지면 프로그램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가장 오랜 기간 가왕 자리에 머문 클레오파트라가 가수 김연우라는 것을 전 국민이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미덕이다. 제작진이 방청객들에게 “스포일러를 하면 한 회 제작비를 책임지라”는 조항을 넣은 서약서를 쓰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방송사 주변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가요 매니저들은 정보 교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서로 품앗이하며 섭외를 돕고 도움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복면가왕’ 출연에 대한 질문은 실례다. 자칫 소문이 흘러나와 스포일러의 장본인이 되면 제작진과 크게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수 기획사 실장은 “통상 예능 프로그램 제작팀에는 자신이 보유한 가수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매니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지만 ‘복면가왕’만은 다르다”며 “공개적으로 특정 매니저가 제작진을 만나는 것이 목격되면 스포일러의 소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극소수만이 출연 사실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눈을 내부로 돌리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 중에서도 의외의 예능감을 가진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스타가 된 대표적 인물이 유병재다. tvN <SNL코리아>의 ‘극한직업’ 코너에 고정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그는 MBC <무한도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후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까지 맺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시 백종원의 코너에서 맛을 보고 평가를 내리는 ‘기미 작가’를 비롯해 솔지가 진행하는 코너에서 상대역을 해주는 일명 ‘모르모트 PD’를 배치하며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내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는 “간간이 얼굴을 비치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삼시세끼>의 나영석 PD 역시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누군가 인기를 얻으면 그를 영입하려는 쏠림 현상이 강한데 이를 탈피하기 위한 전방위 섭외가 예능가의 트렌드가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무늬만 전문가’들의 득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종편 채널에 자주 출연하는 몇몇 의사들은 대중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으며 일명 ‘쇼 닥터’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또한 각종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이들 중 방송 감각은 좋지만 실제로 업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PD는 “종편 채널에서 인기를 얻는 전문가 중 지상파에도 출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지상파의 섭외 기준이 엄격하다는 의미”라며 “참신한 얼굴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가진 진정성과 실력을 제대로 파악해 의미를 부여해야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